[기획 시리즈] 오너家 이야기 제3화
[기획 시리즈] 오너家 이야기 제3화
  • 이범희 기자
  • 입력 2011-05-03 14:45
  • 승인 2011.05.03 14:45
  • 호수 887
  • 26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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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경영자들의 자녀교육, 이렇게 했다.
장영신 회장 - 채형석 부회장(윗줄) 현정은 회장 - 정지이 유엔아이 전무(가운데) 이명희 회장 - 정용진 부회장

[이범희 기자]= 대한민국 1%로 꼽히는 재벌들의 삶은 우리와 어떻게 다를까. 연예인과 재벌들의 일상은 쉽게 노출되지 않는다. 그래서 더 궁금하고 끌리는 법이다. 재벌들은 최근 인기리에 종영됐던 드라마 ‘시크릿 가든’이나, 현재 방영되고 있는 ‘로열패밀리’처럼 화려하게 살지도 모른다. 동시에 평범한 우리네들과 별반 다르지 않을 수도 있다. 이에 [일요서울]에서 연속기획으로 재계 오너가의 삶을 조명해봤다. 다르지만 같은 그들의 일상을 살펴보자. <편집자 주>

우리나라의 여성 경제활동인구가 1000만 명을 넘어섰다는 통계보고서가 나왔다. 하지만 여성 경제활동 참여율은 50%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일자리의 안정성이나 소득수준 등 여러 면에서 개선해야 할 점도 많다. 다만, 여성이 사회에 참여하는 비율과 의지가 갈수록 높아진다는 점만큼은 고무적이다. 그 최전선에서 고군분투하는 사람들이 바로 여성 경영자들이다. 여성 경영자로 성공하려면 ‘원더우먼’이 되어야 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일이면 일, 육아면 육아, 어느 한 부분도 소홀히 해서는 성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재벌가의 여성 경영인도 예외는 아니다. 대부분 가정주부로 살다가 남편의 갑작스러운 유고로 자의반 타의반으로 경영자의 길을 걷는 경우가 많다.


생활습관에서 됨됨이가 결정된다

장영신 애경그룹 회장은 1970년 남편인 고 채몽인 사장이 심장마비로 유명을 달리하면서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경영자의 길을 걷게 됐다. 당시 장 회장은 막내아들을 낳은 지 3일 밖에 안 돼 몸조리도 제대로 못한 상태였다. 무엇보다 더 큰 걱정은 3남1녀의 어머니로서 살림만 해오던 터라 사업이나 경영에 관해선 문외한이나 진배없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당시 자본금 16억 원, 매출액 49억 원의 애경유지는 평범한 가정주부였던 36세의 장 회장이 경영 일선에 나선 이후, 30여 년 만에 계열사 18개, 매출 1조8000억 원에 육박하는 중견그룹으로 성장했다. 장 회장이 불모지나 다름없던 우리나라의 기초화학공업의 발전을 선도해 온 것이다.

그 바탕에는 장 회장이 중시하는 ‘시(時)테크론’이 있다. 장 회장은 언제나 자식들에게 비즈니스 미팅에 먼저 가 있거나 절대로 늦지 말라고 가르친다. 본인 역시 약속시간보다 10여 분 일찍 나가는 습관을 갖고 있다. 약속시간보다 단 몇 분이라도 늦는 사람은 첫 대면부터 뭔가 부족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게 마련이다. 그 때문에 그는 직원들을 평가할 때도 ‘시간을 제대로 사용할 줄 아느냐’를 중요한 척도로 삼는다. “시간 하나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사람이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는가?”라는 게 장 회장의 지론이다. 자녀들에게도 철저한 ‘시테크’를 가르쳤다. 누구나 똑같이 24시간이 주어지지만 그렇다고 누구나 24시간을 활용하지는 못한다. 시간을 쪼개서 사용하려면 시간의 노예가 되어선 안 되고 시간을 지배해야만 한다고 늘 자식들에게 강조한다.

특히 장 회장은 아침 일찍 일어나 남보다 하루를 먼저 시작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여긴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도 잡는다’는 속담처럼, 아들, 딸은 물론 사위까지 아침 일찍 일어나 하루를 시작하는 소위 ‘아침형 가족’으로 꾸리고 있다.

장남인 형석씨의 경우 새벽 4시면 잠자리에서 일어나 아침식사를 챙겨 먹고 출근길에 오른다. 약속시간은 가족 간에도 철저하게 지키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장 회장에게 있어서 ‘시간은 돈’인 셈이다.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게 하라

불과 3년 만에 현대그룹을 평정한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도 마찬가지다. 고 정몽헌 회장이 갑작스레 유명을 달리하자 사람들은 가정주부로만 살아왔던 현 회장의 취임을 ‘걱정 반 우려 반’으로 바라봤다.

‘기업경영에 경험이 없는 주부가 암초를 만난 현대를 과연 잘 이끌 수 있을까’하는 우려가 컸다.

특히 현대그룹은 현 회장이 취임하자마자 시숙부인 정상영 KCC명예회장과의 경영권 분쟁에 휩싸였다. 대북사업 비리로 인한 김윤규 부회장의 퇴출을 놓고 북한과 한바탕 기 싸움도 벌였다. 하지만 현 회장은 소위 ‘숙부의 난’과 ‘가신의 난’을 모두 평정하며 주위의 우려를 일거에 불식시켰다.

현 회장은 취임 1년 만에 전 계열사를 흑자로 돌려놓았다. 현대상선 등 주력계열사의 실적 호조로 현대그룹은 2004년 총매출 6조6516억 원, 순이익 5780억 원을 달성했다.

현 회장은 장녀인 정지이 유엔아이 전무를 누구보다 아낀다. 공식은 물론 비공식 행사장에도 어김없이 정 전무를 데리고 다닌다. 정 전무는 ‘아버지 자살 사건’이후 현대상선에 입사해 어머니를 그림자처럼 동행하고 있다. 현 회장은 경영권 분쟁으로 시댁 어른들을 만날 때나 대북사업과 관련해 북한의 김정일 위원장을 대면할 때도 늘 큰딸 정 전무와 동행했다.

현 회장은 자녀를 키우면서 어떤 것도 강조하지 않았고 방임에 가깝게 내버려뒀다.

자칫 삐뚤어지기 쉬운 위험한 방법이기는 했지만, 고 정몽헌 회장도 아내의 자유방임 교육에 찬성했다. 현 회장은 어린이는 어린이답게, 청소년 때는 청소년답게 자라는 것이 최상의 교육이라고 여겼다. 자유롭게 뛰어 놀다보면 스스로 자기 길을 찾아갈 거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그야말로 현 회장의 자녀교육은 자녀의 의사를 존중하고 행동을 이해한다는, 신뢰를 기반으로 한 교육이었다.

또 현 회장은 자녀들이 재벌가에서 자란 티를 내지 않고 평범한 집안의 아이들과 교류하면서 자라기를 바랐다. 다른 재벌가의 아이들처럼 끼리끼리 사귀지 말고 폭넓은 교우관계를 갖도록 가르쳤다.


큰 물줄기 잡아주면 헤엄은 자녀 몫이다

반면 동양그룹 고 이양구 회장의 차녀인 이화경 오리온 사장은 시작부터 경영수업을 철저하게 받아 성공한 케이스다.

이 사장은 이화여대 사회학과를 나온 후 1975년 동양제과(현 (주)오리온)에 인턴사원으로 입사했다. “내 딸이라도 특혜는 없다”는 이양구 회장의 뜻에 따라서였다. 이 사장이 대표이사 자리에 오르기까지는 26년이나 걸렸다. 빠른 승진이라고 하기엔 ‘오너’의 자녀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긴 세월이었다. 결국 철저한 경영수업을 받으면서 경영자의 길을 걷게 된 것이다.

그녀는 ‘여장부’라는 별칭이 붙을 정도로 ‘경영자’,‘아내’,‘엄마’의 역할을 뚝심 있게 소화해내고 있다. 늘 시간에 쫓기는 생활이지만, 1남1녀의 자녀들과 함께 하는 시간만큼은 어떤 경우라도 확보하는 편이다. 이 시간만큼은 업무 스케줄을 만들어 놓지 않는다. 물론 회사의 경영책임을 맡고 있는 위치에 있는 만큼, 자녀와 함께 하는 시간을 마음대로 늘리거나 정해놓을 수는 없다. 따라서 교육의 양보다 내용의 질에 더 치중한다. 따라서 장래 직업이나 어떤 배우자와 결혼해 어떤 식으로 살아가야 하는가를 논의하기보다는 올바른 인격과 가치관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자신의 삶을 행복하고 진실되게 살아갈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데 무게중심을 뒀다.

과거 경영자로 성공한 부모들은 자녀들에게서 큰 점수를 받는 경우가 드물었다. 일과 자녀양육을 병행하는 것이 그만큼 힘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일만큼이나 자녀교육이 매우 중요한 시대가 됐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세 사람 모두 경영자의 길을 걷게 된 배경은 달라도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며 “사업이면 사업, 자녀교육이면 자녀교육, 어느 것 하나 소홀함 없이 ‘똑’ 소리 나게 해낸다는 것이다”고 말했다.

skycros@dailypot.co.kr


#한솔家 자녀들, 이인회 고문을 경영스승으로 모셔

신세계, 글로벌 리더로서의 자질을 길러라

삼성가의 맏딸인 이인회 고문이 일궈낸 기업이 한솔그룹이다. 지난 1991년 삼성가로부터 한솔제지(옛 전주제지)를 받아 ‘홀로’선 지 15년이 지났다. 현재 이 고문의 3남인 동길씨가 그룹을 맡고 있다. 동길씨는 실무를 아는 ‘제지통’ 경영자로 통한다. 특히 외환위기 직후 신문용지 사업을 매각하고, 팬아시아페이퍼 합작법인을 주도해 이 고문으로부터 높은 점수를 받았다.

이 고문의 자녀교육은 ‘자식 잘 돼라’는 면에서 다른 한국 어머니와 별반 차이가 없다는 것이 지인의 전언이다. 국내 재계의 대표적인 여성 경영자로 평가받는 이 고문이지만 자녀를 가르칠 때는 어머니로서의 엄격함도 마다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진다.

이 고문은 한솔이 삼성에서 분리된 후 동혁, 동만, 동길 3형제와 한 지붕 아래 같이 살면서 엄격하게 경영수업을 시켰다. 3형제는 회사뿐 아니라 가정에서도 어머니 대신 ‘고문님’이라는 호칭을 사용했다. 그만큼 어머니를 ‘경영스승’으로 깍듯하게 모신다. 며느리들도 한때 어머님 대신 고문님이라고 불렀다는 일화는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이 고문이 이 같은 호칭을 굳이 강조했던 것은 자식들 앞에서 경영자로서의 위엄을 세우려는 뜻이 아니었다. 한솔의 공동 경영자로서 강한 ‘경영 마인드’를 자녀들에게 심어주려는 숨은 뜻이 있었던 것이다. 이 고문은 자녀들을 어릴 때부터 해외에 보내 외국어와 글로벌 감각을 익히도록 했다. 자녀들의 영어 테스트를 위해 수시로 영어로 대화를 나눴다.

통상적인 대화에서 벗어나 경제 정치 사회 이슈에 대한 대화가 진행되어 나중에는 토론에 가까워지곤 했다. 자녀들이 고급영어를 쓸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이 고문의 배려였다. 이 고문 역시 자녀들의 교육을 위해 영어를 독학으로 마스터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병철 회장의 막내딸인 이명희 회장도 마찬가지다. 그녀는 지난 1979년 “신세계 경영에 참가하라”는 아버지의 호출을 받고 입사했다. 이 회장은 삼성가에서 부친을 대놓고 경영스승으로 삼고 있는 오너로 유명하다. 부친의 선견지명과 직관력이 소개된 일간지를 복사해 항상 갖고 다니며 경영의 시금석으로 삼을 정도다. 또 이 회장은 신세계 사보에서 부친에 대해 “부친은 지독한 메모광이었다”면서 “그러다 보니 나도 자연스럽게 메모하는 습관을 길렀다”고 할 정도로 자신의 경영스승으로 부친을 자처한다. 또한 그녀는 자녀인 정용진·유경 남매에게도 같은 방식으로 교육하기로 유명하다. 두 사람 역시 이 회장의 가르침하에 현재도 경영 수업을 받고 있다.

이범희 기자 skycros@dailyp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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