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에 떨어진 농협 신뢰도
땅에 떨어진 농협 신뢰도
  • 이지영 기자
  • 입력 2011-04-26 15:23
  • 승인 2011.04.26 15:23
  • 호수 886
  • 21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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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병 회장도 피하지 못한 ‘농협 저주’
서울의 한 농협지점에 전산장애 따른 사과문이 붙여있다. photo@dailypot.co.kr

[이지영 기자] = 최원병 농협중앙회 회장이 국민 앞에 고개 숙였다. 농협 전산망이 마비된 지 거의 한 달이 다 되어감에도 사태가 해결될 조짐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사건이 왜 발생했는지, 누가 무슨 의도로 서버는 물론 백업서버까지 삭제했는지 알려진 게 없다. 특별검사를 진행 중인 금융감독원은 지난 4월 22일 “검사 기간을 책임이 규명될 때까지 무기한 연기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세간에선 “농협의 전 회장들에 이어 최 회장도 기어코 사고를 쳤다”며 “이래서야 농협이 바로 서겠냐”고 지적하고 나섰다. 이명박 대통령도 지난 3월 31일 국세청을 방문한 자리에서 “대한민국에서 역대 기관장 중 가장 감옥에 많이 가는 데가 농협중앙회장과 국세청장”이라며 “내가 이것을 직설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에 대해 많은 의미를 갖고 있음을 여러분이 이해하실 줄 안다”고 말했다. 농협 회장단의 사고 변천사를 살펴봤다.

지난 4월 14일 열린 최 회장의 전산망 마비 관련 기자 회견에서 사과하는 모습은 과거 민선 1~3기 회장들과 다를 게 없었다. 한호선 원철희 정대근 등 전 농협 회장들은 횡령과 뇌물수수 등 개인 비리를 저질러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다. 다만 최 회장은 사업 투명성 부재, 최악의 전산망 마비 사고 등 경영적인 이유로 물의를 일으켰다. 전 회장부터 현 회장까지 일으킨 사고에 농심은 물론 민심까지 떠나갈 판이다.


자리는 높고 책임감은 없다보니 문제 터져

더욱이 최 회장이 이날 가진 기자 회견에서 “비상임이어서 책임질 일이 없다”, “나도 (직원들이 정보를 안 줘서) 기자들처럼 당했다. 오히려 (기자와) 같은 입장”이라는 황당한 답변을 내놔 고객들의 분노를 샀다. 농협의 최고 수장의 이런 모습에 고객들이 격분한 것. 이미 발생한 사건에 대해서 농협이 반성하고 앞으로 더 잘하겠다는 모습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농협을 주거래 은행으로 자주 이용한다는 이모(52)씨는 “농민들을 위한 농협은 사라지고 윗분들을 위한 농협이 되다보니 수장이 저런 말을 하나보다”라며 최 회장의 발언을 강도 높게 비난했다.

유명 포털 사이트에는 최 회장을 비난하는 댓글이 봇물을 이뤘다. 아이디 leoyk***는 “농업을 위한 금융을 왜 이렇게 방만하고 크게 키웠는지 모를 일”이라며 “각 시골 읍면 단위로 조그만한 농협 지점만 개설하고 도시에 있는 농협을 폐점시켜라”고 했다. 또 다른 아이디 koye5**는 “농협이 왜 복권사업에 관여하며, 증권거래계좌는 왜 터주냐. 최 회장이 낙하산 인사라 이렇게 방만하게 경영하는거냐”며 성토하고 나섰다.

한 금융 관계자는 “최 회장이 이명박 대통령의 동지상고 후배라는 든든한 뒷배경 때문에 이러는거 아니겠냐”고 지적했다. 실제로 최 회장은 2007년 실시된 농협 회장 선거 과정에서 ‘정치성향이 뚜렷하고 권력유착형 낙하산’이라는 공격을 받았다. 이 때문에 재투표까지 가는 곤혹을 치른 적이 있다.

이처럼 책임감 없는 농협의 경영 행태는 과거 농협 수장들에게서도 쉽게 볼 수 있다.

1988년 직선제 이후 농협중앙회장(현임 제외)은 모두 비리 때문에 도중 하차하는 수모를 당했다. 한 전 회장과 원 전 회장은 수억 원을 횡령한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정 전 회장은 서울 양재동 부지를 싸게 넘기는 대가로 현대자동차로부터 뇌물을 받아 징역형을 확정 받았다.

농협의 한 관계자는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하는데 농협의 수장 자리는 책임감 없는 자리로 비춰질까 걱정이다”며 “이번 사태가 빨리 마무리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한편 이번 농협 전산망 사태 진행 과정에서 농협이 평소 금융 관리를 허술하게 한 정황도 드러났다. 금융감독원 규정에 따르면 농협은 세 달에 한 번씩 전산망 계정을 바꿔야 했다. 그러나 이를 무시하고 6년 9개월 동안 방치했다. 이 뿐만이 아니다. 세간에선 농협이 “전산망 내 비밀번호를 ‘1’ 또는 ‘0000’처럼 단순하게 만들어 화를 자초했다”고 평가했다.

sky1377@dailypot.co.kr

이지영 기자 sky1377@dailyp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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