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시리즈] 오너家 이야기 제2화
[기획 시리즈] 오너家 이야기 제2화
  • 산업경제부 기자
  • 입력 2011-04-26 15:06
  • 승인 2011.04.26 15:06
  • 호수 886
  • 24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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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 기업가 자녀들 교육, 이렇게 챙긴다
이병철 - 이건희(윗줄) 구인회 - 구본무(가운데줄) 최종현 - 최태원

대한민국 1%로 꼽히는 재벌들의 삶은 우리와 어떻게 다를까. 연예인과 재벌들의 일상은 쉽게 노출되지 않는다. 그래서 더 궁금하고 끌리는 법이다. 재벌들은 최근 인기리에 종영됐던 드라마 ‘시크릿 가든’이나, 현재 방영되고 있는 ‘로열패밀리’처럼 화려하게 살지도 모른다. 동시에 평범한 우리네들과 별반 다르지 않을 수도 있다. 이에 [일요서울]에서 연속기획으로 재계 오너가의 삶을 조명해봤다. 다르지만 같은 그들의 일상을 살펴보자. <편집자 주>

기업의 총수라고 하면 흔히 바쁜 경영 활동으로 자녀교육에는 신경 쓰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대부분의 대기업 총수들은 일반인이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다정다감하게 자녀들과 지낸다. 물론 철두철미하게 자녀들을 가르치는 것도 잊지 않는다. 대를 이어 가업을 이끌어야 하는 명문 기업가인 만큼, 자식 교육이 기업 경영만큼이나 중요하기 때문. 이에 이번 오너가 이야기에선 각 오너일가의 자녀교육법에 대해 살펴봤다.


삼성家
스스로 찾아 배우게 하라

초일류 기업을 일군 고 이병철 삼성 초대 회장에서 이건희 회장으로, 다시 차세대 경영자로 주목받는 3세 자녀들에게까지 이어지는 삼성가의 핵심적인 자녀 교육방법은 ‘가르치지 말고 스스로 찾아 배우게 하라’는 것이다. 상황변화에 대처하는 ‘어떻게(How)’의 개념으로 접근하도록 한 것이다. 이 회장 역시 선친의 교육방법을 “매우 난감한 퍼즐과도 같았다”고 밝힌 바 있다. 이어 이 회장은 “처음에는 답답하기도 하고 이해되지 않을 때도 많았다. 그렇다고 회장실을 박차고 들어가 따져 물을 처지도 아니었다”며 “속절없이 속만 태우며 스스로 풀어나가야만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선친은 이 회장의 마음과는 아랑곳없이 현장에서 부딪치며 스스로 익히는 방식을 묵묵히 지도해 나갔다.

20년에 가까운 시간이 흐르면서 “가르치기보다는 스스로 배우고 익히게 만든다”는 독특한 수업방식은 점차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이 회장은 훗날 “어느덧 현장을 통해 경영을 생각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됐다”고 회고했다. 주어지는 여건에 따라 수시로 변화하는 것이 경영 현장이므로 해결하는 방법도 그만큼 다양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이 회장은 선친으로부터 ‘경영은 이론이 아닌 실제이며 감(感)’이라는 체험적 교훈을 배울 수 있었다. 직접 보고, 만지고, 해결하는 현장 중심의 훈련을 통해 경영 일선에서 발견되는 각종 문제점을 느끼고 반사적으로 대처하는 ‘감’의 지혜를 터득한 것이다.

이처럼 선친의 엄격하면서도 독특한 교육은 이 회장이 삼성그룹을 지금의 재계 1위 기업으로 성장시키는 초석이 되었다.


LG家
사람 다스리기가 만사의 근본이다

구본무 LG회장 일가의 자녀 교육을 한마디로 말하면 가족 간의 인화다.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유교적 가풍이 녹아 있는 자녀 교육은 매우 엄격하기로 유명하다.

경남 진주 지수면에 위치한 구 회장 가문의 집성촌인 승산마을을 찾아가면 이런 유교적 규범을 느낄 수 있는 곳이 여러 군데 있다. 이곳엔 구 회장의 고조부인 만회공이 ‘선비들 간의 학문 교류장’으로 활용하기 위해 지은 창강재, 후손들이 학문을 닦던 양정재, 또 만회공을 추모 기념하기 위해 세운 방산정이 자리하고 있다.

또 증조부인 춘강 재서공을 추모하기 위한 모춘당도 세워져 있다. 이 모춘당은 구씨 가문이 자녀를 가르침에 있어서 최고의 규범으로 치는 인화교육의 발원지라 할 수 있다.

구인회 LG그룹 창업주의 자녀는 6남 4녀, 장남인 구자경 LG그룹 2대 회장은 슬하에 4남 2녀를 둔만큼 자손이 많다보니 가족 구성권 간의 화합과 인화가 필수 교육이 되었던 것.

구 회장의 가족 역시 그 같은 가르침을 매우 엄하게 받았다. 딸만 둘인 구 회장의 장자승계 문제로 구자경 명예회장 등이 참석한 가족회의가 열렸는데, 이 자리에서 구 회장의 첫째 동생인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의 아들 광모씨를 양자로 입적했다. 이는 구씨 일가가 유교적 가풍을 얼마나 중시하는지를 알 수 있는 대표적인 사례로 회자된다. 현재도 동생이 잘못하면 그 윗사람을 불러 잘못을 지적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2005년 그룹 분리 당시에도 잡음이 없었던 것 역시 유교적 가풍이 오래 지속된 결과로 평가받는다.

한편 요즘 같은 시대에 웬 구닥다리 같은 유교적 규범이냐고 반문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명예회장에 이은 구 회장도 이런 10계의 덕목들이 다손(多孫)인 구씨 가문을 이제까지 별다른 말썽 없이 화합하게 한 단단한 울타리로 보고 있다.


SK家
과학적인 탐구 정신을 가르친다

SK는 할아버지-아버지-손자로 이어지는 3대 체제가 아니라 형-동생-조카로 이어지는 이른바 2.5세 체제다. 1998년 8월에 작고한 최종현 회장은 1976년 SK창업주이자 형인 고 최정건 회장의 뒤를 이었고, 그 뒤를 최태원 회장이 물려받았다.

최 회장이 회고하는 선친의 가르침 가운데 ‘자연과학’과 더불어 ‘유학’의 중요성을 빼놓을 수 없다. 최 회장이 대학을 졸업하기도 전에 유학을 간 것도 선친의 강력한 권고 때문이었다. 더욱이 최 회장은 미국 유학 시절 자식들이 결코 풍족하게 살 수 있도록 하지 않았다. 용돈이 항상 부족해 가정교사로, 학교 식당 접시닦이로 아르바이트를 전전하게 했다. 주변에서 재벌가의 자제라고 믿기 어려워할 정도였다.

또한 최 회장은 자녀들에게 훌륭한 경영자는 경제를 잘 알아야 하지만, 경제를 잘 알려면 먼저 물리나 화학 등의 자연과학을 공부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자신이 화학을 전공하면서 얻은 경험 때문인 것으로 알려진다.

최 회장은 자녀들에게 언제나 과학적이며 합리적인 사고 능력을 키우기를 독려했다. 그는 “철학은 그릇된 경험을 통해 쌓은 편견, 선입관이기 쉽다. 따라서 기업가가 철학을 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기 쉽다”고 주장했다. 자서전 ‘나는 한없이 살았다’에서 “기업가는 항상 신선한 사고력과 투시력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백지에 새로운 그림을 그려 나간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최 회장은 자녀들이 어떤 일에 의문을 가지면 그것을 합리적으로 납득할 수 있을 때까지 철저하게 파고들도록 훈련시켰다. 끝까지 문제를 쫓아 결국 스스로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탐구하는 과학적 사고와 호기심을 키운 것이다.


한화家
단맛 쓴맛 다 겪어봐라

고 김종희 한화그룹 창업주의 생전 별명은 ‘다이너마이트 김’이다. 다이너마이트 등의 화학 사업에 주력하면서 맺은 주한미군과 미 대사관 관계자들 간의 돈독한 인맥 때문이기도 하지만, 다이너마이트처럼 폭발적인 에너지를 발휘하며 기업을 성장시킨다는 의미에서 이런 별칭이 따라붙었다. 그는 자식을 가르칠 때도 다이너마이트의 특성처럼 최대의 효과를 거둘 수 있는 선택과 집중의 방식을 좋아했다. 그 때문에 자녀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챙기기보다는 향후 어떤 모습으로 성장해야 할지 본인 스스로 느끼게 하는 체험식 교육에 치중했다. 다이너마이트 김이라는 그의 별명처럼 자녀들이 엄청난 파괴력으로 대변되는 뚝심과 추진력을 배우기 바란 것은 당연지사.

특히 장남인 김승연 회장과 차남인 김호연 의원에게는 평소 특유의 ‘대장부론’을 강조했다. 그는 생존에 “남자는 술도 좀 마시고, 담배도 피워보며 단맛 쓴맛 다 맛봐야 한다”며 “어차피 무엇을 하든지 간에 나중에 훌륭한 인물이 되려면 쓸데없는 것은 하나도 없다”고 호연지기를 키울 것을 권했다. 장남인 김 회장을 당시로는 단어조차 생소했던 조기유학을 보낸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일찍이 해외 견문도 넓히고 혼자서 자립심을 키우라는 아버지의 뜻이었다. 김 회장은 고교 2학년 때 유학길에 올랐다.

그래서일까. 김승연 회장 역시 한때 ‘다이너마이트 주니어’로 통했다. 아버지의 스타일을 쏙 빼닮은 점이 크게 작용했다. 불가능할 것만 같은 비즈니스를 다이너마이트와 같은 뚝심과 추진력으로 성공시킨 것이 한두 건이 아니다.


동원家
밑바닥의 애환을 느껴라

반면 바다에서 인생을 배운 이가 있다. 그는 바다에서 몇 차례 죽을 고비를 넘겼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겸허를 배우고, 배를 탄 동료들이 고생하는 것을 보면서 이들에 대한 사랑이 생겼다. 바다를 통해 마음이 넓어지는 호연지기를 배운 이가 바로 김재철 동원그룹 회장이다. ‘마도로스 출신의 그룹 총수’, ‘21세기의 해상왕 장보고’등의 수식어로 대변되는 김 회장은 바다를 개척해 동원산업을 일궜다. 김 회장은 슬하에 2남 2녀를 두고 있다. 이중 두 아들이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김 회장의 자녀교육은 재계에서도 널리 소문날 만큼 혹독하다.

김 회장의 맏아들인 남구씨는 대학을 졸업한 후 6개월간 참치 잡이 배를 탔다. 멀리 남태평양과 베링 해까지 나가 참치를 잡았다. 하루 16시간씩 중노동을 했지만 군말 없이 아버지의 지시를 따랐다.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바다와 배를 배우지 않고는 동원을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둘째 아들인 남정씨도 밑바닥에서 시작했다. 경남 창원 참치통조림 공장에서 생산직 근로자로 일하기 시작해, 동원산업 영업부에 평사원으로 입사, 시내 백화점에 참치제품을 배달하는 일을 도맡았다. 두 딸도 예외는 아니었다. 장녀 은자씨와 차녀 은지씨는 대학 입학 후 ‘일하기 싫으면 먹지도 말라’는 교육이념으로 유명한 가나안농군학교에 들어가 ‘흙’, ‘노동’, ‘근검절약’의 중요성을 배웠다. 일부에선 혹독한 자녀교육에 대해 충고라도 하면 김 회장은 “사람은 자기가 경험한 것을 중심으로 세상을 이해하고 살아간다. 사회는 잘사는 사람과 못사는 사람, 좋은 환경과 나쁜 환경이 함께 어우러져 있다는 것을 몸으로 알게 하기 위해 그렇게 했다”고 말했다. 지도자는 조직의 밑바닥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애환을 몸으로 깨달아야 한다는 점을 김 회장은 자녀들이 배우기를 바랐던 것이다.

[산업경제부]

산업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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