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 지은 사람 따로 있다” 그는 누구
지난 12일 서울남부지검 형사6부 수사관들이 금호석유화학(회장 박찬구)을 압수수색했다. 이 시각 박 회장은 서울 하얏트호텔에서 열린 IISRP(세계합성고무생산자협회)에 참석하고 있었다. 행사를 주관하는 호스트로 박 회장이 외국손님을 맞이하며 대규모 행사를 진행 중이었다. 박 회장은 경영복귀 후 첫 행사라 많은 준비를 했지만, 본사의 압수수색으로 표정이 밝지 못했다. 박 회장은 현장에서 기자들에게 “(압수수색)전혀 문제없다”는 입장을 밝혔음에도 세간의 시선은 달랐다. 금호가의 경우 형제간의 다툼이 빈번했고, 현재도 형제간의 경쟁 비화가 알려지기 때문. 일각에선 이번 압수수색 역시 오너일가의 복잡한 가족사에서 시작되었을 것이란 추측성 소문이 무성하다. 검찰 관계자는 금호석유화학의 압수수색과 관련 “현재 비자금을 빼돌린 차명 계좌를 찾는데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고 했다.
검찰은 금호석유화학이 협력업체와 거래할 때 비용을 부풀려 지급한 다음 차액을 돌려받거나 허위 세금계산서를 발행하는 수법으로 수백억 원의 비자금을 조성한 단서를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검찰은 이날 오전 9시부터 검사와 수사관 20여 명을 보내 회장부속실, 자금팀 사무실 등을 압수수색하고 회계자료가 담긴 컴퓨터 하드디스크와 회계장부 13박스 분량의 내부 자료를 확보했다. 동시에 협력업체 4군데에서도 매출 관련 내역 등을 압수했다. 4군데 협력업체는 박 회장과 개인친분이 있는 곳으로 알려진다.
남부지법은 “검찰이 제시한 증거를 살펴볼 때 비자금 조성 혐의가 상당 부분 인정되는 것으로 추정돼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박 회장은 기자들과 만나 “전 아무것도 모른다”며 완강히 부인했다.
오히려 지난 11일부터 한국 업체 최초로 세계합성고무생산자협회(IISRP) 총회를 유치해 세계 합성고무 산업 관계자들을 서울로 불러 모아 행사를 치르고 있다. 압수수색 당일은 물론 그 이튿날에도 행사에 참석해 모든 일정을 예정대로 소화했다. 당당했다. 그러나 세간의 이목은 달랐다.
복잡한 가족사가 압수수색으로 이어졌나
금호가의 복잡한 가족사 분쟁이 이번에 검찰수사로 또 다시 표출됐다는 시선이다. 박 회장과 그의 형인 박삼구 명예회장이 2009년 경영권 다툼을 벌인 후 계속 마찰을 빚었기 때문.
당시 박 회장은 계열분리를 목적으로 금호석유화학 지분을 대거 사들였다가 오너 일가의 가족회의를 거쳐 회장직에서 밀려났다. 그러다 그해 12월 복귀하는 굴욕을 당했다. 그리고 ‘역전’에 성공했다.
금호타이어·금호산업이 대우건설을 무리하게 사들였다가 유동성 위기로 워크아웃(기업구조개선작업)에 들어간 것. 이를 계기로 박 회장은 채권단에서 금호석유화학의 경영권을 얻어냈다.
박 회장 복귀 후 금호석유화학은 지난해 사상 최대의 영업이익(3635억 원)을 냈다.
이후 박 회장은 겉으로는 ‘독자 경영’으로 형인 박삼구 그룹 명예회장과 화해한 듯한 모양새를 취하면서도 그룹과의 거리를 유지했다. 그러나 박 회장은 지난달 공정거래위원회에 “(금호석유화학을) 그룹(기업집단)에서 계열분리해 달라”는 신청서를 내며, 금호그룹과의 사실상 ‘결별’을 선언했다.
현재 금호석유화학은 ‘빨간 날개’ 모양의 그룹 통합이미지(CI)와 그룹 서버 등을 사용하지 않고 있다. 이로 인해 그룹 계열사인 아시아나아이디티(IDT)가 금호석유화학을 상대로 “(독자 서버 구축을 위해) 전산 전문 인력을 빼가지 말라”며 법원에 가처분신청을 내는 등 금호그룹과 금호석유화학은 지속적인 갈등을 겪고 있다.
최근 한 달 새 박 회장이 금호석유화학 주식을 더 사들여 지분율(아들 지분 포함)을 14.53%로 늘리면서, 형과의 마찰이 예견됐다. 2세들의 후계경영구도에서도 지분이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마찰은 극에 달했을 것이란 후문도 들렸다.
박 회장이 세계합성고무생산자협회의 초청 연설 강연회에 앞서 기자들과 만나 “죄 지은 사람은 따로 있을 것”이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한 것도 오너가의 불협화음을 의심하게 했다. 박 회장 본인은 그가 누구냐는 질문에 “누구겠냐. 알아서 판단하시라”고 했다.
이에 재계는 “형제간의 분쟁에서 이번 비자금 의혹이 불거져 나온 것 아니냐”는 눈초리를 보낸다.
금호석유화학 관계자는 “회장이 호스트가 돼 국제적인 행사를 치르는 중에 발생한 압수수색 사태로 회사의 이미지나 입지에 문제가 생길까 우려된다”며 “검찰수사가 진행 중이라 더 이상 말하기는 곤란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공시를 통해서도 “검찰의 압수수색 조사가 있었지만, 현재까지 관련 사항에 대해 구체적으로 확인된 사실이 없다”며 답변을 회피했다.
[이범희 기자] skycros@dailypot.co.kr
이범희 기자 skycros@dailyp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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