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의원들은 당 지도부가 ‘한나라당 길들이기’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고 있다며 비판을 가했다. 지도부를 질타하는 발언을 들은 박근혜 대표는 표정이 점점 심각해졌다. 김문수 의원은 “전쟁에선 대표가 앞장서 나가 희생을 각오하고 싸워야 한다”며 골목대장도 이러진 않는다”고 박 대표를 직접 겨냥하기도 했다. 또 “대표선수로 링에 올라가 싸우지는 않고 빙빙 돌고 뒷걸음질만 칠 거라면 내려와야 한다”는 발언까지 나왔다. 비록 이 총리 발언을 놓고 대책을 논의하는 자리였지만 당 지도부를 향한 원성에는 한나라당의 복잡한 당내 구도가 엿보였다. 특히 박 대표는 외관상 차기주자군과 관련된 각종 여론조사에 1, 2위를 차지하며 차기가 순탄할 것으로 보지만, 당내에선 그의 입지가 그다지 확고하지 않음을 시사한 자리였다.
실제 당 중책을 맡고 있는 한나라당의 모 의원은 사석에서 “한나라당 차기주자군 경쟁이 불붙기 시작하면 박 대표에 올인할 의원들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라며 “비록 대표 곁에서 보좌하고 있는 의원들의 경우도 지척에서 돕기보다는 상황을 관망하는 분위기가 우세할 것”이라고 말했다.한나라당의 한 관계자도 “박정희 전대통령의 후광을 등에 업고 지금까지 순탄하게 커 왔지만 과거사 진상규명이 본격화되면 사정이 달라질 것”이라며 “민청학련사태와 인혁당 사건만 재조사돼도 박 대표가 심각한 타격을 받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국현안문제에 대한 대응 방식도 당 내에서 반발을 샀다.
특히 헌법재판소가 위헌판결을 내려 사실상 물거품이 된 수도이전 문제에서도 어정쩡한 행보를 보였던 박 대표가 얻은 것은 별로 없다는 평가다. 오히려 헌재 판결의 최대 수혜자는 당 보다 한 발 앞서 수도이전반대운동의 선봉에 섰던 이명박 서울시장이라는 게 중론이다. 이 시장은 국정감사기간 관제데모파문으로 여권의 집중공격을 받으며 궁지에 몰리기도 했지만 물러서지 않고 맞대응해 차기대권주자로서의 위치를 굳건히 세우는 계기로 만들었다. 특히 이재오, 김문수 의원 등 측근 인사들이 수도이전 반대에 적극 가담하면서 이 시장의 당내 영향력도 커졌다. 반면 박 대표는 충청권의 눈치를 보다 행정수도 위헌판결의 공을 고스란히 이 시장에게 넘겨주고 말았다. 당 관계자는 “지금까지는 박 대표가 한 발 앞서 있는 상황이었지만 헌재의 위헌판결로 이 시장이 당의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며 “박 대표와 이 시장의 피할 수 없는 한판 대결은 이제부터 본격화 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보수파의 손을 들어준 국가보안법 폐지 논란 역시 박 대표를 난처하게 만들고 있다. 11월 정기국회의 뇌관중 하나인 국가보안법 폐지 논란과 관련, 박 대표는 최근 대표연설을 통해 “여당의 국가보안법 폐지안을 반드시 막아내겠다”고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그러나 박 대표는 “정부 참칭조항과 관련, 삭제할 수도 있다”고 한발 물러선 행보를 보였다. 하지만 당 내 강경파들의 반대에 부딪히며 강경노선으로 다시 입장을 선회한 것. 이번엔 당내 소장파가 발끈하고 나섰다. 원희룡, 남경필, 정병국 의원 등 당내 개혁그룹인 ‘새정치수요모임’ 소속 의원들이 국가보안법의 찬양고무죄와 불고지죄 삭제, 정부참칭 조항 삭제까지 포함한 대폭적인 국보법 개정안을 마련키로 했다. 이같은 배경에는 박 대표가 당내 강경보수파에 밀려 당 개혁성이 후퇴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깔려있다. 박 대표로선 사실상 보수파와 소장파 양쪽 모두의 압박을 받고 있는 셈이다. 특히 여당이 이번 정기국회에서 강력히 추진하고 있는 ‘4대 개혁입법의 국회통과’는 박 대표의 지도력에 중요한 변수가 될 전망이다. 자칫 여당 안이 국회에서 전격통과될 경우 박 대표는 치명타를 받을 수밖에 없어 그녀의 향후 행보가 주목된다.
이인철 chlee@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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