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기업의 문어발 확장,이대로 괜찮나
재벌기업의 문어발 확장,이대로 괜찮나
  • 이지영 기자
  • 입력 2011-01-25 17:26
  • 승인 2011.01.25 17:26
  • 호수 874
  • 20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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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어나는 대기업 계열사에 중소기업은 죽을 맛
재계는 2011년 신묘년 새해를 맞아 새해 화두로 ‘상생’을 꼽았다. 대통령부터 대기업 총수까지 나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동반 성장’과 ‘상생’을 외치며 더 좋은 미래를 만들어 나가자고 약속했다. 그러나 정작 대기업은 입으로만 ‘상생’을 외칠 뿐 상생이라는 단어가 무색할 만큼 문어발식 계열사 확장에 나선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월 17일 재벌닷컴이 30대 그룹의 계열사 현황을 조사한 결과, 작년 말 기준으로 계열사가 1069개를 기록해 사상 처음으로 1천 개를 넘어선 것으로 드러났다. 이같은 대기업들의 무분별한 계열사 확장에 문제는 없는지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지난 3일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삼성 신년하례회에서 “나는 20년 전부터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을 말해왔다”며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은 단순히 대기업만을 위한 것이 아닌 한국경제의 근간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삼성을 비롯한 우리나라 30대 그룹의 계열사가 지난 5년 새 1.5배나 폭증한 것으로 나타나 이 회장의 말이 무색해 졌다. 특히 대기업들이 계열사 확장으로 서비스업 등 중소기업 영역을 대거 잠식한 것으로 나타나 중소기업의 입지는 더욱 줄어들고 있는 실정이다.


5년간 계열사 367개 폭풍 증가

지난 17일 재벌닷컴이 총수가 있는 자산 순위 30대 그룹의 계열사 현황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작년 말 기준으로 계열사가 1069개를 기록해 사상 처음으로 1천 개를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30대 그룹 계열사는 2005년 말 702개에서 2006년 말 764개, 2007년 말 847개, 2008년 말 969개, 2009년 말 991개에 이어 지난해 1069개를 기록하는 등 한 해 평균 73개씩 증가했다. 특히 10대 그룹 계열사가 2005년 말 350개에서 작년 말 538개로 188개나 늘어나, 같은 기간 30대 그룹 전체 증가분의 절반이 넘는 51.2%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 5년간 계열사가 가장 많이 늘어난 곳은 SK와 롯데였다. SK는 2005년 말 54개였던 계열사가 작년 말 84개로 30개나 늘어나면서 최다 계열사를 거느리게 됐으며, 롯데는 2005년 말 44개에서 작년 말 74개로 불어나 SK와 GS에 이어 세 번째로 계열사가 많은 그룹이 됐다. 특히 롯데는 지난해 12월 신격호 회장의 외손녀인 장선윤씨가 대주주로 참여한 식료품 회사 ‘블리스’를 설립하는 등 지난 한 해에만 16개 계열사를 신설한 것으로 밝혀졌다.

또 LG그룹에서 분리한 LS도 2005년 말 18개에서 작년 말 46개로 지난 5년 동안 28개가 불었고, GS도 계열 분리 직후인 2005년 말 49개에서 작년 말 76개로 27개가 증가했다.

효성이 25개(16→41), LG가 24개(36→60), 금호아시아나가 22개(23→45), 한화가 20개(32→52)식 증가했으며, 극동건설 인수 등 대형 M&A를 통해 사업 확장에 나선 웅진도 5년 동안 계열사가 19개(11→30)나 늘었다.

이밖에 한진 17개(22→39), 코오롱 16개(23→39), 현대중공업 14개(7→21), 동양 14개(15→29), 삼성 12개(59→71), 대한전선 11개(13→24) 등 순으로 많이 증가했다.

반면 영풍은 2005년 말 26개였던 계열사가 작년 말 24개로 2개가 감소한 것을 비롯해 신세계, OCI, 동국제강은 5년 사이에 계열사가 1개씩 줄어들었다.


계열사 확장, 그들만의 잔치

이처럼 계열사가 급증한 것은 2005년 이후 대형 인수합병(M&A)이 봇물을 이룬 데다 정부가 중소기업 고유업종 제도를 폐지하면서 재벌그룹들이 무차별적으로 사업 확장에 나섰기 때문으로 분석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재벌 2세, 3세 빠르면 4세로 경영권을 승계하고 형제들 간의 계열분리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계열사가 늘어난 요인도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신세계 그룹의 이마트 피자를 들 수 있다. 신세계 이마트에 피자를 독점공급하고 내부 입점해서 빵을 판매하는 조선호텔베이커리는 원래 신세계 계열사인 조선호텔에 속해 있었으나 분사를 해 별개의 회사로 독립했다. 이 과정을 통해 정용진 부회장의 동생인 정유경 신세계 부사장이 45%의 지분을 가진 개인회사가 됐다.

삼성전자에서 분사한 서울통신기술과 현대·기아차그룹의 글로비스도 비슷한 과정을 거쳤다.

삼성그룹의 서울통신기술은 삼성전자에서 제작된 유무선 통신장비를 이용해 통신사업자에게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시스템 성능개선 및 운용상의 문제점 해결 등 통신망구축 사업을 하는 곳이다. 이재용 현 삼성전자 사장은 1996년 신주인수권부사채를 통해 이 회사 주식 50%를 주당 5000원에 확보했다. 이 회사는 삼성전자 등 삼성 계열사와의 거래가 매출의 51%를 차지한다.

현대·기아차그룹의 글로비스는 정몽구 현대차 회장과 정의선 부회장이 모두 50억 원을 출자해 만든 회사다. 이 회사는 현대자동차, 기아자동차, 모비스 등 관계사와의 거래가 차지하는 비중이 85%에 이른다.

이와 관련해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은 “계열사가 늘어난 게 합리적인 사업적 이유보다는 총수 일가의 불법적, 사적 이유를 위해서 늘어난 게 많다”며 “30대 그룹의 계열사 확장에는 막대한 부를 물려주기 위한 방편과도 밀접히 연관돼 있다”고 말했다. 김 소장은 또 “삼성그룹의 이재용 사장은 CB나 BW처럼 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는 유가증권을 시가나 공정한 가격보다 굉장히 싼 가격으로 넘겨받아서 부를 승계를 하지 않느냐”며 “이것은 회사기회 유용이라는, 일종의 신종 승계수법이라고 할 수가 있다”고 주장했다. 김 소장은 “일단 새로운 어떤 계열사를 마련하는데 있어 비상장 상태에서 재벌총수 일가에게 이를테면 액면가 5천 원으로 주고, 그 다음에 다른 계열사들이 이른바 일감 몰아주기를 통해 매출과 수익을 만든 방식을 통해 이익을 나누는 방법을 취한다”고 덧붙였다.

김선웅 좋은기업지배연구 소장도 “한마디로 그들만의 잔치를 벌리는 셈”이라며 “대기업의 이같은 계열사 늘리기는 사회 양극화를 심화시킨다”고 말했다.


설 곳 잃어가는 중소기업

대기업의 계열사 급증은 단순히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2006년 중소기업 고유업종 제도 폐지 이후 대기업은 공구나 가구, 학원 등 여러 분야에 진출했다. 이로 인해 중소기업은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김 소장은 “대기업이 그동안 타깃으로 삼지 않았던 시장에 진출하게 되면서 많은 중소기업들이 경쟁력 저하로 사업상 타격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재벌닷컴에 따르면 지난해 신규 편입된 계열사 160개 중 80.6%는 서비스업, 나머지는 제조업이다. 지난해 30대그룹이 신규 설립이나 지분 인수 등을 통해 계열사로 편입한 회사 가운데 제조사는 전체의 19.4%인 31개사에 불과한 반면 129개사는 서비스, 금융 등 주력산업과 무관한 비제조업체로 조사됐다.

자산 순위 1위 삼성의 경우 신규 편입된 계열사 9개 중 반도체 장비업체 ‘지이에스’만 제조업일 뿐 ‘휴먼티에스에스’(시설경비업), ‘보나비’(음식점업), ‘테크윈에코’(환경관리시설설계시공업), ‘에스원CRM’(콜센터서비스업) 등은 서비스업종에 속한다. 뿐만 아니라 GS의 ‘새한전자’, LG의 ‘한국음료’, SK의 ‘그린아이에스’(인테리어용품 업체) 등 상당수의 제조업체도 기존 하청업체였거나 주력사업과는 무관한 업종인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이처럼 급증한 비제조업은 대부분 그동안 중소기업이 담당해온 분야다. 따라서 재벌들이 그룹의 이익을 앞세원 중소기업 영역을 잠식하는 게 아니냐는 비판을 받고 있다. 경제개혁연대 김홍길 연구원은 “최근 재벌들의 계열사를 보게 되면 제조업 쪽의 계열사가 늘어나는 것으로 보이는데 사실 그렇게 많지 않다”며 “오히려 IT나 유통, 물류, 건설처럼 비제조업 분야에서 계열사들이 많이 늘어나고 있다”고 밝혔다. 김 연구원은 또 “대다수의 대기업들이 중소기업들이 차지하고 있는 새로운 분야에 회사를 비상장회사로 설립한 다음 그 주식의 대부분을 총수일가가 가져가고, 그 다음에 그 계열사에 다른 계열사들이 물량을 몰아줘 매출과 수익을 낳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라며 “이 같은 방법이 중소기업을 위기로 몰아가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이번 조사를 진행한 재벌닷컴 관계자는 “도소매업, 음식점 같은 대표적인 서민업종에도 돈이 된다 싶으면 발을 뻗고 있어 중소업체들이 설 땅이 없다”고 말했다.

[이지영 기자] sky1377@dailypot.co.kr

이지영 기자 sky1377@dailyp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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