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라미드 [뉴시스]](/news/photo/201901/283997_203998_1353.jpg)
[일요서울 | 오두환 기자] 국립외교원 외교사연구센터에서 ‘외교’라는 렌즈를 통해 우리 현대사를 조명하기 위해 오럴히스토리사업 ‘한국 외교와 외교관’ 도서 출판을 진행해 왔다. 지금까지 총 16권의 책이 발간됐다. 일요서울은 그중 정태익 전 주러대사의 이야기가 담긴 책의 내용 중 일부를 지면으로 옮겼다.
장승길 대사 망명 전조…‘대사관으로 직접 전화’ 둘째 아들 장철민 망명 사건
‘수교 1주년 기념’ 앙드레 김 패션쇼 피라미드 앞 특설무대서 열려
- 북한과의 문제로 외교관계 수립이 쉽지 않았는데 전략적으로 잘 접근해서 수교를 이루어 냈다. 아내께서도 당시 역할을 많이 했다고 들었는데?
▲ 공관원 전원이 동원돼 수교 활동을 전개했다. 아내도 외교관에 뒤지지 않는 활동을 했다. 아내는 대통령 부인의 측근을 통해 무바라크 영부인을 직접 찾아가 면담을 하는 수교 활동 솜씨를 보였다. 수교 전에 한국총영사 부인이주재국 대통령 부인을 만난 전례가 없었기 때문에 외교가의 화제가 됐었다.
- 이집트 힐튼호텔에서 열린 앙드레 김 패션쇼는 어땠나?
▲ 앙드레 김은 외교에 센스가 있는 사람이다. 앙드레 김은 1994년 이집트 힐튼호텔에서 패션쇼를 한 후, 수익금 전액을 무바라크 영부인이 운영하는 어린이 독서 캠페인 재단에 기증했다. 영부인이 참관할 예정이었으나 마지막 순간에 몸이 아파서 쇼에 참석을 못했다. 그러나 앙드레 김의 활동에 감동을 해서 영부인은 만약에 앙드레 김 패션쇼가 다시 한 번 열리면 직접 참석을 하겠다는 서신을 보내와 기부에 고마움을 표시했다. 앙드레 김의 기부 행위는 아내가 무바라크 영부인을 직접 면담하는 데도 기여를 했다.
무바라크 영부인은 아내가 선물한 칠보 찻잔에 감탄하면서 좋아했다. 무바라크 영부인은 거실에 있던 다른 장식품을 치우고 한국 칠보 찻잔 세트를 거실에 비치할 정도였다. 한승수 당시 주미대사 사모님이 미국 상원의원들 부인들과 이집트를 방문해 무바라크 영부인을 예방했을 때 영부인이 칠보 찻잔을 자랑했다고 했다.
수교 1주년 기념행사로 앙드레 김 패션쇼가 피라미드 앞 특설무대 위에서 열렸는데, 무바라크 영부인이 2년 전에 한 약속을 지켜 참석했다. 대통령 부인이 참석하는 성대한 패션쇼가 거행될 수 있었다. 수교 1주년 기념행사는 앙드레 김의 일생에서도 처음인 특별한 일이고, 한·이집트 관계사에도 뜻깊은 이벤트였다. 영부인 참석하에 피라미드 아래 설치된 특설무대에서 열린 패션쇼는 동양인으로는 앙드레 김 쇼가 최초이자 마지막인 기념비적 행사도 기록될 것이다.
- 정말 대단한 행사였던 것 같다?
▲ 피라미드 특설무대에서 문화행사를 한다는 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프랭크 시나트라가 피라미드 앞에서 처음 노래를 불렀는데, 그 공연이 정치적으로 화근이 되어 회교 원리주의자들의 반감을 사서 사다트 대통령 암살사건으로 이어졌다. 사다트는 전쟁과 평화의 영웅이자 위대한 이집트 대통령으로 평가를 받고 있다. 사다트는 4차 중동전쟁을 치르면서 사태의 추이를 잘 살펴 주도면밀한 방법으로 외교적 협상을 펼쳐 전쟁에서 빼앗긴 시나이반도를 다시 찾아내는 지도력을 발휘했다.
미국의 캠프데이비드협정 체결을 통해서 이스라엘과 수교해 시나이반도 반환을 교환하는 외교적 거래를 성공적으로 성사시켜 시나이반도를 돌려 받았다. 전쟁 초기에 포획한 이스라엘 포로들에게 학대 대신 관용을 베풀어 추후 외교 협상의 발판을 마련하는 선견지명의 조치를 취했다. 포로에서 풀려 귀국한 이스라엘 사람들이 친이집트 세력이 되어 캠프데이비드협정에서 이집트가 결국 시나이반도를 반환 받게 하는 초석을 만들었다.
그러나 굴욕을 영광으로 만든 사다트 대통령은 1981년에 암살당했다. 피라미드 특설무대에서 프랑크 시나트라가 공연한 것이 그 암살 원인 중 하나다.
피라미드 특설무대에서는 입생로랑이 서양의상을 앙드레 김이 동양의상을 선보였다. 앙드레 김은 이집트 행사를 위해서 엄청난 노력을 기울여 이집트문명을 모티브로 한 특별한 의상을 선보여 관중을 매료시켰다. 이집트 대통령 영부인이 참석하니 총리 부인 이하 전 각료 부인과 문화부장관이 참석했다. 수익금은 전액 무바라크 영부인의 재단에 기증을 했다. 수교 1주기 행사가 차관보가 되어 귀국하는 내게는 값진 이임 전야제가 됐다.
- 수교 이외에도 이집트에서 외교 활동을 할 때 장승길 주이집트 북한대사의 아들이 망명하는 사건이 있었다. 그 사건에 대해 말해 달라.
▲ 지금까지 북한에서 탈출한 사건 중에서 황장엽 망명 사건을 제외하고는 최고위 외교관인 장승길 대사의 망명 사건이 유명할 거다. 장승길 대사 망명이 실제로 발생한 것은 1996년 내가 귀국해서 차관보로 재직할 때 일이다.
재직 시 장승길 대사 망명의 전조가 되는 사건이 있었다. 장승길 대사의 둘째 아들 장철민이 망명한 사건이었다. 장승길 대사는 큰아들을 평양에 남겨두었고 작은 아들만 카이로에 데리고 있었다.
재정 형편상 미국 학교에 보낼 수가 없어서 장철민은 학비가 싼 브리티시 카운슬 스쿨에 다니고 있었다. 장철민은 학교에서 필리핀 여학생과 연애를 했다. 연애를 하느라고 매일 늦게 집에 들어오자 장승길 대사가 화가 나서 방에 가둔 모양이다. 18살 사춘기인 장철민이 반발해 우리 대사관 관저로 전화를 걸었고, 그 전화를 내가 받았다. 북한 억양의 젊은이 목소리를 듣자 곧바로 장승길의 아들이라는 걸 눈치 챘다. 그는 이집트에 머물고 있는 학생인데 한국에 유학을 하고 싶은데 갈 수 있는냐고 물었다. 그래서 내가 “그런 민감한 얘기를 전화로 하기는 어려우니, 이 번호로 전화하라”고 말하며 파견관 번호를 알려줬다.
파견관이 만나서 사연을 들어보니 가정불화로 인한 사건이었다. 그는 한국에 데려가달라고 했다. 그러나 북한대사 아들을 한국으로 데려오면 납치를 했다며 난리를 쳐 수교를 방해할 수도 있다고 판단해서, 제3국으로 보내는 것이 좋겠다고 결론을 내리고 건의를 했다. 결국 장철민은 미국대사관을 통해서 캐나다로 이민갔다. 장철민의 망명이 다음해 장승길 대사 망명의 원인이 됐다고 본다. 정철민 때문에 장승길 일가가 미국으로 망명을 한 거다.
- 북한 정부로서는 굉장히 큰 충격이었을 것 같은데?
▲ 북한 주재 이집트대사가 한국과 이집트의 수교를 북한 외무성에 통보한 데 대한 북한의 반응을 보고한 내용이 재미있다. 북한 정부가 이집트가 남한이 제공한 돈에 팔려 수교를 맺게 됐다고 비난했다는 것이다. 당시 이집트에는 두 번째 도시인 알렉산드리아에 약 20억 달러 규모의 석유화학공장을 세울 계획을 발표했는데, 사업을 LG화학이 수주했다는 언론보도가 있었다. 북한은 한국이 20억 달러짜리 화학공장을 지어주고 수교를 했다고 오인하고 억지 주장을 했다.
1995년 수교 당시에는 김일성 주석이 사망한 후 김영남 조선인민대위원회 상임위원장이 국가주석 대행으로 있었기 때문에 그의 반응이 곧 북한의 공식적인 반응으로 평가된다. “한국과 이집트가 수교를 맺게 된 사실을 보고받고 김영남 상임위원장이 너무 낙망하여 큰 피해를 낸 대홍수의 빗물보다 더 많은 눈물을 흘렸다”고 하면서 “우리와 이집트의 수교 사실에 북한 최고 당국자가 큰 실망을 표출했다”고 표현했다. 이집트 외무성 당국자가 북한 주재 이집트대사관이 보고한 내용을 내게 알려준 내용이다.
정태익 ilyo@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