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지로 공구거리 재개발 도마 위  
을지로 공구거리 재개발 도마 위  
  • 강민정 기자
  • 입력 2019-01-25 20:01
  • 승인 2019.01.25 20:07
  • 호수 1291
  • 28면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도심 재생이냐, 재개발이냐
서울시를 규탄하는 내용이 담긴 플랜카드
서울시를 규탄하는 내용이 담긴 현수막

 

[일요서울 | 강민정 기자] 청계천과 을지로 공구 거리을 대상으로 한 재개발 진행 소식에 여론이 들썩이고 있다. 철거 이후 이곳에 26층 상당의 주상복합건물이 세워진다는 말까지 더해져 역사적인 전통과 문화를 보유한 곳을 ‘도시재생사업’이라는 명목으로 망가뜨리는 것이 아니냐는 반발이 들려오고 있다.

 

서울시, 전면 재검토 입장 내놨지만 반응 ‘냉담’
쌔미 활동가 “서울 랜드마크 된 을지로 공구거리…상인들 노력 있었기 때문”

 

서울시 도시재생산업은 올해 초부터 청계천·을지로 공구 거리 일대 철거가 본격화되면서 도마에 올랐다. 이 구역은 3-1·4·5 구역으로 지난해 10월 관리처분인가가 나면서 철거 작업이 치러졌다. 시행사인 한호건설은 해당 부지에 최고 26층 높이의 주상복합건물을 세울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한 반발 의견이 거세지자 서울시도 이를 염두에 둔 듯 재개발 사업을 전면 재검토하겠단 입장을 표명했다. 강맹훈 서울시 도시재생실장은 지난 1월 23일 오전 기자회견을 개최해 “을지면옥과 양미옥 등 생활유산은 재개발로 인한 강제철거를 반대하고 있다”며 “보존하고자 하는 의사에 반해 철거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러한 태도 변화에 관해 강 실장은 “(세운재정비촉진지구 정비 사업 계획이 수립된) 2014년 이후부터 공간뿐만 아니라 산업생태계와 생활유산 등에 관한 인식과 사회 흐름이 많이 바뀌었다”며 “도시재상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시민 인식이 달라졌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세운상가지역은 낙후되고, 빈 가게도 많고, 위험한 지역도 있지만 을지로 노가리 골목도 생활유산으로 지정됐다”면서 “2014년에 생각하지 못했던 빠른 변화에 발맞추기 위해 여러 의견을 듣고 계획을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박원순 서울시장 역시 지난 1월 16일 진행된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과거의 문화나 예술, 전통과 역사를 도외시했던 개발에 성찰과 반성이 있어야 한다”며 “역사적인 부분이나 전통적으로 살려야 할 부분은 잘 고려해 개발계획안에 반영해야 한다”고 유사한 의견을 내놨다.

당시 박 시장은 “적어도 내가 시장으로 있는 동안에는 그런 것(역사와 전통)을 존중하는 도시개발이 돼야 한다”면서 “가능하면 그런 것이 보존되는 방향으로 (청계천·을지로 공구거리 일대를) 재설계하는 방안으로 요청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플라스틱 그물이 쳐진 건물
철거를 앞두고 그물망이 쳐져있는 건물

 

“서울시 ‘재검토’
실질적 움직임 없어”

 

서울시가 세운상가 정비사업을 전면 재검토하겠단 입장을 밝힘에도 불구, 이를 온전히 신뢰할 수 없다는 의견도 여전히 대두되는 실정이다. 

쌔미 맘편히장사하고픈상인모임 활동가는 “박 시장이 청계천·을지로 공구 거리 일대의 재개발을 전면 검토하겠다고 이야기했지만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다”며 2016년 서대문형무소 인근의 옥바라지 골목 사례를 들었다. 

쌔미 활동가는 “옥바라지 골목도 역사적인 가치가 있는 곳이었고, 도시 재생이라는 이름으로 여러 가지를 할 수 있는 장소였다”며 “당시 박 시장이 그곳을 방문해 ‘내가 형사고발을 당하더라도 (재개발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말했었다. 하지만 잠시 동안 중단됐을 뿐이지, 이에 대해 어떠한 대책도 마련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독립운동가들을 옥바라지한 터도 사라졌고, 결과적으로 그곳에는 아파트가 들어섰다”며 “재검토 발언 이후에도 철거는 계속 진행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실질적인 움직임 없이 재검토하겠다고 말만 하는 것은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강문원 청계천 상권수호 비상대책위원장 역시 “앞에서는 안 하겠다고 하고 뒤에서는 (철거를) 진행한다”며 “상인들은 법적으로 뭔가 해줘야 믿지, 말로만 해서는 못 믿겠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아파트 몇 채보다
수만 배 가치 있는 곳”

 

청계천·을지로 공구 거리 일대의 재개발 소식에 많은 이들이 안타까움을 드러낸 이유는 이 곳이 역사·문화적으로 가치를 지닌 장소이기 때문이다.

강 비대위원장은 “우리나라 6·25 동란 때부터 이곳에 공장이 생기기 시작했다. 대한민국 근현대 경제 발전에 이바지한 장소가 이곳”이라며 “역사적 유물로 보존하면 아파트 몇 채 짓는 것보다 수만 배의 가치가 있는 곳”이라고 정의했다.

계속해서 “‘재생’이라는 의미가 기존의 골격을 유지하되 지저분한 부분을 고쳐 새롭게 쓴다는 것인데, 지금은 재생이 아니라 전부 부수는 재개발을 하고 있다”며 “이런 것을 반대하는 것이다. 실제적인 재생사업이라면 우리도 응할 수 있지만, 이것은 재생사업이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쌔미 활동가는 이곳을 “공구거리를 포함해 일대에 많은 가게들이 있고, 이를 운영하는 상인들이 있다. 어떻게 보면 동네를 이들이 살린 것”이라며 “그 거리가 서울의 랜드마크처럼 여겨진 것도 그들의 노력이 있어서다”라고 평가했다.

그는 “재개발이라는 이름 하나로 모든 사람을 내쫓는, 몇 십 년 동안 일궈온 그 자리를 맨몸으로 나가야 하는 상황”이라며 “이에 대해 상인들을 보호해줄 수 있는 어떤 법적 장치도 없다. 행정 차원에서 무언가를 하려 해도 굉장히 소극적”이라고 설명했다.

이 밖에도 많은 이들이 이번 사태에 있어 박 시장의 미흡한 행정처리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도시건축가 김진애 박사는 지난 1월 25일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박 시장은) 청계천 주변 상인들이 지난 몇 년 동안 엄청나게 반대할 때는 안 듣고 뭐했느냐”며 “행정에서 중요한 것이 막판에 가서 이런 식으로 뒤엎어 버리는 일이 안 생기게끔 하는 것이다. 이번 일은 박 시장의 판단 미스”라고 일침을 가했다.

쌔미 활동가 역시 “(이번 재개발은) 시작 단계서부터 잘못됐다고 본다. 정말로 재개발이 필요한 상황이었다면 토지주뿐만 아니라 그곳에 자리 잡은 상인들과 주민들 모두를 모아 공청회도 몇 번씩 진행해 타당성을 검토하고, (그들을) 설득한 뒤 재개발이 진행됐어야 한다”며 “서울시가 도시재생을 거론하지만 해외 도시재생 사례만 해도 모두 이런 절차를 거친다. 도시재생사업의 모범사례로 꼽히는 영국 리버풀의 한 지역은 (사업을 진행하고 자리 잡는데) 15년이 걸렸다”고 일갈했다.

아울러 “(도시재생은) 단기간에 이뤄질 수 있는 사업이 아니다”라며 “우리나라는 일종의 성과중심주의가 팽배하다. 결과값을 도출하는 것에 집중해 과정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고 진단했다.

강민정 기자 kmj@ilyoseoul.co.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