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4개 시민사회단체가 모인 ‘용산참사 10주기 범국민추모위원회(추모위)’가 서울 종로구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진=추모위 제공]](/news/photo/201901/283937_203948_325.jpg)
[일요서울 | 조택영 기자] 지난 2009년 발생한 ‘용산 참사’가 10주기를 맞은 가운데 사건을 재조사 중인 검찰과거사위원회(이하 과거사위)가 진상 규명에 난항을 겪고 있다.
사건 선정 6개월 지나···조사 기간 한 달도 안 남았는데 ‘차질 불가피’
최근 법조계에 따르면 법무부 검찰과거사위원회 산하 진상조사단 내 용산 참사 사건 조사팀은 최근 외부단원들이 잇따라 사의를 표하거나 사실상 조사에 참여하지 않는 것으로 전해졌다. 또 조사팀은 외부단원 4명의 전원교체 절차를 밟고 있는 상황이다.
남일당에서 무슨 일이?
용산 참사는 경찰이 지난 2009년 1월 20일 서울 용산구 재개발구역에서 생계 대책을 요구하며 옥상에서 농성을 벌이던 상가 세입자들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다.
백화점식 재개발이 성황이던 당시 상가 세입자들은 권리금과 시설투자비에 못 미치는 휴업보상금으로는 생계를 유지할 수 없다고 저항했다. 서울시가 발간한 ‘2017 용산참사 백서’에 따르면 문제가 된 용산4구역은 2년 만에 관리처분계획이 인가됐다. 재개발사업에 평균 39개월이 소요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빠른 속도다.
백서를 보면 참사로 사망한 고 양회성 씨는 초기 시설투자 비용으로 약 1억9000만 원을 썼지만 6100만 원을 보상액으로 제시받았다. 고 이상림 씨도 업종 전환을 위한 인테리어에 1억8000만 원을 투자했으나 보상액은 1억300만 원으로 정해졌다.
강제퇴거에 내몰린 이들은 남일당 건물 옥상에서 쇠파이프로 4층짜리 망루를 만들고 그 안에서 지내는 ‘망루농성’을 최후의 수단으로 택했다. 농성 장소로는 한강로에 위치한 남일당 건물 옥상으로 확정됐다.
망루를 설치할 때부터 경찰이 물대포를 쏘고 농성자들은 화염병을 던지는 등 갈등은 극으로 치달았다.
농성자들이 망루에 오른 지 하루 만인 오전 6시 30분 경찰이 진압에 돌입했다. 특히 테러 진압을 주요 임무로 맡는 서울경찰청 경찰특공대가 투입됐다.
이후 화재 원인을 둘러싸고 갑론을박이 아직도 이어지는 상황이다. 재판부는 “농성자들이 불붙은 화염병을 던져 3층 계단 부근에 뿌려진 (인화물질) 세녹스에 불이 붙어 화재가 발생했다”고 봤다. 세녹스는 휘발유와 유사한 물질이다.
오전 7시 20분경 망루에서 일어난 불길이 전체로 번지자 농성자들이 세녹스 통을 밖으로 버렸고 이 중 일부가 건물 옥상 바닥에 떨어지면서 폭발했다. 망루 1층에 있던 LPG통으로 불길이 옮겨 붙으면서 대형화재로 번졌다. 기름이 섞여 물만으로는 진압이 불가능했지만 현장에는 유화제(액체를 섞이게 하는 물질)가 없어 어려움을 겪었다.
결국 철거민 이상림, 양회성, 한대성, 윤용헌, 이성수 씨와 특공대원 김남훈 경사가 숨진 채 발견됐다.
당시 경찰은 진압에 나선 이유에 대해 “시위대가 화염병, 새총, 골프공을 무차별로 투척하는 등 테러라고 할 만큼 과격한 행동을 했다”고 주장했다.
철거민 농성 하루 만에 벌어진 대대적인 진압 작전으로 희생자 6명이 발생하자 사회적 파장이 컸다.
서울중앙지검은 1월 20일 정병두 전 검사장(당시 1차장)을 본부장으로 하는 특별수사본부를 구성했다. 검찰은 참사로 아버지를 잃은 이충연 씨를 구속했다. 부친상을 당한 이 씨에게 가혹한 조치라는 비난 여론이 일기도 했으나 김 청장 등 경찰은 전원 불기소 처분되고 철거민만 재판에 넘겨졌다.
수사를 지휘한 당시 중앙지검장과 서울경찰청장은 이후 각각 조직 수장 자리인 검찰총장, 경찰청장에 내정됐지만 모두 내정자 신분에서 자진사퇴로 끝났다. 검찰총장으로 내정된 천성관 지검장은 기업 스폰과 고가 아파트 구입자금 출처 의혹 등이 불거지자 사퇴했다. 김 청장도 “도의적인 책임을 지겠다”며 2월 내정자 자리에서 스스로 내려왔다.
이후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용산 참사를 재조사하기 시작했다.
외부단원 “외압 당해”
과거 수사팀 “사실 무근”
과거사위는 지난해 7월 용산 참사 사건을 본조사 대상 사건으로 선정했다. 당시 경찰의 과잉진압 위법성에 대해 검찰이 소극·편파적으로 수사를 한 것이 아닌지 등에 대한 진상 규명에 나선 것이다.
그러나 6개월여가 지난 현재 용산 참사 사건의 재조사는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당초 용산 참사 조사팀은 내부단원 검사 2명과 외부단원 4명(변호사 2명, 교수 2명) 등 총 6명으로 구성됐다. 그러나 최근 외부단원 3명이 사퇴했고 나머지 외부단원 1명은 연락을 받지 않는 등 조사에 사실상 참여하지 않고 있다.
조사단 총괄팀장인 김영희 변호사 등 외부단원들은 지난해 12월 기자회견을 열고 과거수사검사 일부가 조사 활동에 압박을 행사하고 있다며 외압 의혹을 주장했다. 이들은 “사건과 관련된 당시 검사들 중 일부가 조사단 조사 및 활동에 외압을 행사하고 있다고 조사단원들 중 일부가 심각하게 느끼고 있다”고 밝혔다. 그 사례로 일부 사건의 경우 민·형사 조치를 운운한 데 압박을 느끼고 (단원들이) 조사 및 보고서 작성을 중단하려는 일까지 벌어졌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용산 참사 유가족들은 이 같은 외압 의혹이 제기된 사건이 용산 참사와 관련돼 있다며 철저한 진상 규명을 요구했다. 이들은 “제보에 따르면 민·형사 조치 언급 등 폭로 사례 내용은 용산 참사 사건”이라며 “관련 검사들의 외압으로 조사가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충격”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과거 수사팀은 “외압이나 압력을 행사한 사실이 전혀 없다”고 반박했다. 수사팀은 최근 입장문을 통해 “조사단에 법과 원칙에 따른 조사와 심의를 요청하고 의견을 개진했을 뿐 외압이나 압력을 행사한 사실이 전혀 없다”며 “현직 검사 등은 조사대상자일 뿐 외압 주체가 될 수 없으며 외압 논란 자체가 수사참여자들에게 심각한 명예훼손으로 여겨진다”고 밝혔다.
한편 지난 20일 법조계에 따르면 용산 참사 조사팀 외부단원 4명을 전원 교체하기로 했다. 조사단은 약촌 오거리 살인 사건 등 조사가 끝난 다른 팀에서 외부단원 4명을 보강한다는 방침이다. 용산 참사의 새 외부 단원은 세 명의 변호사와 한 명의 교수로 꾸려질 가능성이 크다.
과거사위는 당초 조사 중인 사건의 마무리를 위해 2월 말까지 조사활동 및 최종보고를 하고 3월말까지 위원회 심의를 할 수 있도록 한다는 방침을 밝힌 바 있다. 조사 기간이 한 달 남짓 남은 상황에서 용산 참사 사건의 경우 단원들의 공석과 교체로 조사가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게 된 실정이다.
조사 등 활동을 위해서는 하루빨리 공백을 메워야 하는 상황이지만 단원 교체 후 기록을 다시 검토하고 조사를 진행하는 것이 이 기간 내 쉽지 않아 논란은 지속될 전망이다.
조택영 기자 cty@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