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 | 고정현 기자] 정치는 타이밍의 예술이다. 시기와 명분이 무르익었을 시점에 적절한 정치적 행보는 단숨에 정치 지형을 변화시킨다. 황교안 전 총리의 입당 타이밍은 어떨까. 친박계의 주군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고, 비박계 수장은 김무성 의원이다. 하지만 친박계는 ‘탄핵’으로, 비박계는 ‘원내대표 경선 참패’로 그들의 구심점을 잃었다. 이 시점에 황 전 총리가 혜성처럼 등장했다. 당장 한국당 ‘최대 주주’ TK에 만연했던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향수는 황 전 총리에 대한 지지로 이어지는 모습이다. 자연히 의원 상당수가 TK를 지역구로 두고 있는 친박계도 ‘친황계’로 탈바꿈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비박계까지 동요하는 눈치다. 황 전 총리가 김무성계 인사를 영입하며 무주공산인 비박계에 손을 내밀면 서다. 다만 황 전 총리의 이 같은 행보를 TK가 황 전 총리에 대한 지지를 거둬들이는 ‘악수(惡手)’가 될 것이라고 평가하는 시각도 있다. 가뜩이나 TK 정서 한편엔 황 전 총리도 ‘탄핵 방조죄’에 해당한다는 기류가 깔려있다. 여기에 태극기 세력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김진태 의원이 당대표 선거 출마를 공식화했다. 황 전 총리가 탄핵 찬성파에 손을 내민 것이 소탐대실(小貪大失)일 수 있다는 지적이다.

- “전쟁통엔 숨어 있더니 본색 드러나… 朴은 없고 당권·대권만 있다”
- 입지 약해? 김진태, 3만 책임당원 확보… TK 민심 ‘요동’
자유한국당의 유력한 당권 주자인 황교안 전 국무총리가 입당 직후 급속히 세(勢) 결집에 나서고 있다. 당장 한국당 당권 접수에 있어 가장 큰 관문인 영남권 민심이 요동치고 있다.
‘친박계+잔류 비박계
vs 복당파’=필승?
영남권에는 전체 32만 8434 명의 한국당 책임당원 중 약 50%가 몰려 있다. TK에만 9만 3706 명이다. TK 인구가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10%가 채 안 되는 점을 감안하면 큰 쏠림인 셈이다. 게다가 사실상의 가중치까지 부여된다. 책임당원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선거인단과 여론조사의 반영 비율은 7 : 3이다. 여론조사로 영남 당원의 민심을 거스를 수 없는 구조로 경선 룰이 짜인 셈이다.
때문에 실제 선거에선 영남권 당원들의 표심과 일반 여론, 지역 소속 국회의원들의 지지 성향과 이른바 ‘오더(투표 지시)’가 결정적으로 작용한다. 원내에서 TK, PK 소속 의원들의 머릿수를 먼저 채우는 사람이 당권을 쥘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황 전 총리가 유리해 보이는 지점이다. 현재 TK 지역 의원의 상당수는 친박계다. 대구의 경우 정종섭(동갑)·곽상도(중·남구) 의원 등은 같은 박근혜 정부 관료 출신으로 각각 행안부 장관과 청와대 민정수석 등을 역임했다. 황 전 총리의 지지 기반인 통합과 전진 소속 의원들의 절반 이상도 영남권 소속이다.
친박의 조직 기반이 영남권에서 탄탄한 데 더해 일반 여론조사마저 황 전 총리가 압도적으로 나타났다. 1월 16일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황 전 총리의 정계 진출에 대한 지지 여부를 묻는 여론조사를 발표한 결과(오마이뉴스 의뢰, 1월 15일 조사, 성인 500명 대상,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4.4%포인트, 자세한 개요는 리얼미터 홈페이지 참조) TK에서 ‘지지’ 응답이 50.2%로, ‘반대’(38.2%)를 압도했다.
이런 상황에서 황 전 총리는 비박계에까지 손을 내밀었다. 그는 최근 김무성 당대표 시절 활동했던 정성일 전 한국당 부대변인, 작년 6.13 지방선거에서 남경필 전 경기지사를 도왔던 김우식 전 캠프 대변인을 언론 담당으로 영입했다. 황 전 총리는 입당 전날에도 김무성 전 대표 등 비박계 의원들에게 협조를 요청했었다. 전당대회가 ‘친박계+잔류 비박계 vs 복당파’ 구도로 치러진다면 ‘필승’할 것이라는 생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정치권의 시각은 다르다. 앞서 언급했듯이 TK는 한국당 당권 접수에 있어 가장 큰 관문이다. 적어도 한국당 전당대회에서 만큼은 TK 민심을 얻느냐 얻지 못하느냐 가 당선을 좌지우지한다.
탄핵 찬성파 품는 黃,
지지 거두는 TK
이 지점에서 황 전 초리가 비박계에게 손을 내민 것은 ‘최악의 악수(惡手)’가 될 공산이 높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후폭풍이 일 당시 황 전 총리는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 있었다. 지난 5.9 대선과 6.13 지방선거에서도 황 전 총리는 벼랑 끝에 몰린 보수층의 절규를 무시했다. 김진태 의원, 조원진 의원, 김문수 전 경기지사 등이 태극기 집회에 참석해 살신성인(殺身成仁) 박 전 대통령을 지키려 한 것과 대조된다.
이런 상황에서 황 전 총리가 탄핵 찬성파에까지 손을 내미는 것은 자신에 대한 TK의 지지를 스스로 걷어차는 꼴이라는 게 정치권의 평가인 것이다. 이와 관련해 TK 지역 인사는 “전쟁 중엔 숨어 있더니 전쟁이 끝나고 나서 공(功)을 가로채려 하고 있다”라며 “그가 비박계에 손을 내민 것이야말로 그의 ‘본색’이 드러난 것이다. 결국 박근혜 전 대통령이야 어찌 되든 당권과 대권밖에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힐난했다.
한국당 친박계 A 의원 역시 “유튜브 한 채널에선 옥중에 계신 박 전 대통령에게 편히 앉을 수 있는 의자 하나 놔드리자는 말이 있었는데 이마저도 황 전 총리가 거부했다는 말이 있다”고 말했다.
한편 비슷한 시기에 태극기 세력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김진태 의원이 출마를 선언한 것은 황 전 총리에 더욱 뼈아프다. 지난 1월 23일, 김 의원의 기자회견이 열린 국회 본청 앞은 그의 지지자들로 발 디딜 틈조차 없었다. 김 의원실 측에 따르면 이날 모인 지지자들은 5000명을 넘겼다.
김 의원은 그간 당내에서 ‘입지가 약하다’는 평을 받아 왔다. 그러나 이날의 회견은 이 같은 기존 평가를 무색하게 했다. 김 의원의 달라진 위상은 책임당원 입당원서 전달식에서 수치로 증명됐다.
지지자들은 김 의원에게 3만 명에 달하는 책임당원 입당서를 전달하며 지지 의사를 표했다. 이 자리에서 일부 지지자들이 “감옥에 있는 박 전 대통령을 구해달라”고 하자 김 의원은 “당연히 그렇게 하겠다”고 답하기도 했다. 한국당 책임당원은 전체 32만 8434명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지지자들이 김 의원실에 전달한 3만 명의 책임당원 입당원서는 한국당 전체 책임당원의 10%에 육박하는 수치다.
나아가 김 의원은 황 전 총리와 정우택 의원 등 친박계 당권주자들과 ‘교통정리’가 이뤄질 것이란 일각의 관측을 두고도 “1등 하려고 나온 것이다. 슬금슬금 빠지는 것은 제 스타일이 아니다”고 일축했다.
고정현 기자 jh0704@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