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2~3세들, 31세에 이사 2년만에 승진
재벌2~3세들, 31세에 이사 2년만에 승진
  • 이지영 기자
  • 입력 2011-01-11 14:50
  • 승인 2011.01.11 14:50
  • 호수 872
  • 20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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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재벌가 자제들의 연이은 초고속 승진
(왼쪽상단부터 시계방향) 이서현·이부진·설윤석·박세창·조현민·양홍석

요즘 재계의 화두는 ‘젊은 경영’이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이 말을 꺼내기가 무섭게 기업인사에 젊은 층이 대거 등용되고 있다. 특히 오너가의 자제들이 최근 급속도로 승진하면서 말들이 무성하다. 이들의 경우 입사 2~4년 만에 임원으로 승진함에 따라 경영능력이 검증되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들려온다. 일반사원이 입사 이후 임원이 되기까지 22.4년. 이런 것을 감안할 때 이들의 초고속 승진에 대한 반발도 크다. 오너가 자제들의 경우 오너의 말 한마디면 임원이 아니라 대표이사가 되는 것도 시간문제다. 사실 이들이 일반 직원, 중견 간부를 거치는 것 자체도 하나의 ‘맛보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비아냥도 나온다. 대표적인 기업으로는 삼성, 금호, 한진, 동양, 대한전선, 세아, 대신증권 등이 있다. 특히 삼성그룹은 지난해 12월 3일 연말 정기인사를 통해 이건희 회장의 세 자녀인 이재용(43), 이부진(41·여), 이서현(38·여)을 각각 삼성전자 사장, 호텔신라·삼성에버랜드 사장 겸 삼성물산 상사부문 고문, 제일모직·제일기획 부사장으로 나란히 승진시키면서 3세 경영의 포문을 열었다. 30대에 회사 CEO가 된 경우도 있다. 바로 대신증권이다. 과연 초고속 승진한 이들이 회사 내에서 어떤 모습을 보일지 궁금하다.

사례1 직장인 A차장(41). 입사한 지 10년차이지만 이번 인사에서도 승진을 하지 못했다. 만년 차장이라는 꼬리표가 붙어 후배들 앞에 나서기조차 껄끄럽다. 함께 입사한 동기들은 부장 승진을 코앞에 두고 있거나 이미 승진을 했는데 왠일인지 A차장은 쉽지가 않다.

사례2 2007년 스카우트 되어 입사한 모 기업 B부장. 동종업계에서는 이름이 알려질 정도로 유명세를 탄 인물이다. 그런데 함께 입사한 동기 C부장이 현재는 부사장이 되었다. 동기처럼 지냈던 그가 오너의 자제였던 것. C부장이 있는 자리에서 회장의 험담을 했던 과거사가 기억나 자신도 모르게 땀이 흐른다.

최근 일부 대기업에 종사하는 직원들의 이야기다. 함께 일하던 젊은 직원들이 임원으로 승진하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 그런데 이들의 승진에는 뒷배경이 있었다. 알고보니 오너의 자제들이었던 것.

지난해 12월 9일 재벌닷컴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대기업 총수 자녀들은 사원으로 입사한 뒤 4년이 채 안 돼 임원으로 승진한 것으로 나타났다.

현직 임원으로 재직 중인 대기업 총수 직계 자녀 51명(아들 34명, 딸 10명, 사위 7명)을 대상으로 승진 현황을 조사한 결과 상무보(이사 대우) 이상의 임원급으로 선임된 나이는 평균 31.8세였다. 이들이 회사에 입사한 나이가 평균 28세인 점을 감안하면, 입사 후 3.8년 만에 임원으로 승진한 셈이다. 게다가 임원이 된 후 상위 직급으로 승진한 기간은 평균 2.2년으로 나타났다.


29세 최연소 부회장, 30세 최연소 CEO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지난해 12월 30일 박삼구 회장의 장남인 박세창(36) 금호타이어 상무를 전무로 승진시켰다. 2년만의 승진이다. 박 전무는 연세대와 미국 MIT를 나와 2002년 아시아나 항공 재무팀으로 입사한 뒤 2005년 금호타이어 기획팀과 금호아시아나그룹 전략경영본부 이사를 거쳐 2008년 상무로 진급했다.

앞선 29일 실시된 대한항공 정기인사에서는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세 자녀가 승진 또는 전보를 통해 오너 경영의 입지를 굳혔다. 조 회장의 막내딸 조현민(28·여) 대한항공 통합커뮤니케이션실 IMC팀장은 마케팅능력을 인정받아 상무보로 승진했다. 지난해 초 부장으로 진급한지 1년도 안 돼 이뤄진 승진이다. 장남 조원태(35) 전무는 여객사업본부장에서 경영전략본부장으로 옮겼고, 장녀 조현아(37·여) 전무는 기내식사업본부장겸 호텔 사업본부장에서 객실승부본부장까지 겸하게 됐다.

같은 날 동양그룹에서 이뤄진 정기인사에서도 현재현 회장의 맏딸 현정담(34·여) 동양매직 상무보가 상무로 한 단계 올라섰다. 현 상무는 2006년 10월 동양매직 차장으로 입사한 뒤 1년여 만에 부장을 달았고 2009년 1월 상무보에 올랐다.

이보다 더 앞선 28일에는 이운형 세아제강 회장 장남 이태성(33) 세아홀딩스 부장이 전략담당 이사보로 승진했다. 세아홀딩스는 세아그룹의 지주회사다. 이 이사보는 지난해 말 세아홀딩스 전략개발팀으로 세아그룹에 입사한 후 자원개발 CFO로 급승진한 사례도 있다.

지난해 12월 23일 대한전선 정기인사에서 고 설원량 회장의 장남인 설윤석 부사장이 29세의 젊은 나이에 부회장 자리에 올랐다. 대한전선 창업주인 고 설경동 회장의 손자이자 고 설원량 회장의 아들인 그는 지난 2004년 부장으로 입사한 뒤 2008년 상무, 2009년 전무를 거쳐 올해 1월 부사장으로 초고속 승진한 후 1년 만에 또다시 2단계 뛰어올랐다. 이로써 설 부회장은 재계 최연소 부회장이 됐다.

고 양회문 대신증권 회장의 아들인 양홍석(30) 대신증권 부사장도 최단기간내에 CEO의 반년에 올랐다. 양 부사장은 2006년 대신증권 공채로 입사한 뒤 1년 만인 2007년 대신투자신탁운용상무로 임원이 됐다.

이어 같은 해 10월 전무, 2008년 3월 부사장에 올랐다. 평균 승진기간은 0.3년이다. 대기업 총수 자녀들 중 승진이 가장 빠르다며 재계 최연소 CEO다.


외국서는 긍정적 시각도 존재

이에따라 젊은 경영인들의 경영능력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교차되고 있다.

재벌닷컴에 따르면 평균적으로 일반사원이 입사 이후 임원이 되기까지 22.4년이 걸리는 것을 감안할 때 이들의 승진은 그야말로 초고속이라고 볼 수 있다.

이 같은 재계 자녀들의 고속 승진을 놓고 누리꾼들 사이에서는 ‘경영권 이양을 위한 무리한 승진’이라는 지적과 함께 ‘책임 경영을 강화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오너 일가들의 초고속 승진은 자칫 권한만 있고 책임은 지지 않는 경영의 모럴 해저드를 유발할 수 있다”고 보는 한편 “책임경영을 강화할 수 있고 대규모 투자 등에 대한 빠른 결단이 가능하다”는 상반된 평가가 나오고 있다.

한국기업지배구조 개선지원센터 원장을 지낸 정관선 중앙대 교수(경영학)는 평소 “재벌 총수 일가의 초고속 승진과 조급한 경영승계는 경영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 만큼 충분한 경영수업과 경영능력에 대한 객관적 검증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의 한 관계자도 “경제가 어려울수록 세습경영이 아닌 전문경영인의 기업 경영이 우선돼야 한다”며 “게다가 경영능력이 검증되지 않는 재계 총수의 자녀가 손쉽게 고위 임원직에 오른다면 이는 방만 경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서 “재벌의 창업 1세대는 기업가 정신이 뛰어났고, 2세대는 부친에 대한 콤플렉스를 극복하기 위해 사업 확장에 매진했던 사람들”이라면서 “하지만 재벌 3세들은 지분승계의 사회적 정당성도 못 갖추고, 도전적 기업가 정신도 없어 1~2세대의 성공을 재현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의 사정과는 달리 외국에서는 오너 경영십에 대한 평가가 상대적으로 예전보다 긍정적이다. 벨렌 빌라롱가 하버드대 경영대학 교수는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의 논문을 통해 “가족 기업들은 침체기에 경쟁사보다 더 나은 실적을 냈고 많은 경우 세계 경제가 회복되면서 더 나은 위치로 부상했다”고 밝혔다. 벨렌 교수는 “미국과 유럽 4000여 개 기업의 성과를 비교해, 가족 경영 기업들이 비가족 경영 기업보다 2% 빠른 매출 증가를 보였고, 시장 가치도 경쟁사 대비 6%가량 높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가족 기업이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부채가 적고 현금 보유량이 많아 신용시장이 경색됐을 때 자금 조달이 원활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일반인 73%가 ‘위화감’ ‘족벌 경영’ 지적

한편 재계 자녀들의 빠른 임원 승진은 상대적으로 다른 직원들에게 박탈감을 준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이 주장을 뒷받침 하듯 한 여론조사에서는 평직원들이 재계 자녀들의 빠른 임원승진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취업·인사포털 인크루트(ww w.incruit.com 대표 이광석)가 전국의 직장인 496명에게 재벌가 자제의 이른 임원승진에 대한 의견을 조사해본 바에 따르면 ‘비정상적인 현상이며 사회적으로 문제가 된다’는 의견이 73.4%, ‘크게 문제될 것 없다’는 의견은 26.6%로 나타났다.

특히 부정적 견해는 40대 이상(87.4%)의 나이 든 직장인에게서 특히 높았으며 20대(71.3%), 30대(67.6%)의 순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대다수의 직장인들은 재벌가 자제의 이른 임원승진이 문제 있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른 임원승진이 문제가 되는 이유로는 ‘일반 사원들에게 박탈감이나 위화감을 줄 수 있어서’(48.4%)가 가장 높은 응답률을 보였다. 또한 ‘기업들의 족벌경영 체제를 더욱 공고히 할 수 있어서’(34.9%) 부정적이라는 의견도 많았고, ‘제대로 된 경영수업 및 능력검증 절차가 없다고 생각되어서’(13.7%)라는 직장인도 있었다.

실제로 대다수의 직장인은 임원승진 뉴스를 접할 때마다 상대적 박탈감이나 우울 감을 느낀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일반적으로 기업에 사원으로 입사하여 임원이 되는데 걸리는 기간은 어느 정도가 적당하다고 여길까.

대체로 ‘10년 이상~15년 미만’(36.3%)이나 ‘15년 이상~20년 미만’(34.1%)을 꼽은 직장인이 많았고 뒤이어 ‘20년 이상’(15.9%) ‘5년 이상~10년 미만’(10.5%) ‘5년 미만도 상관없다’(3.2%) 등의 의견을 내놨다.

[이지영 기자] sky1377@dailypot.co.kr





이지영 기자 sky1377@dailyp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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