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건설 굴욕 “그대로는 못있어”

현대그룹 현정은 회장이 자금 논란으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 현대건설 인수가 나타시스 은행과의 1조2천억 원의 자금 문제로 사실상 무산될 위기에 처한 가운데 하이닉스 손해배상 청구소송 재판에서도 480억 원의 배상 판결을 받았다. 그야말로 자금 확보가 관건인 상황에서 두 가지 논란이 겹쳐 부담이 더 크다. 게다가 인수전으로 인해 이미지 타격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현 회장이 지난 일로 발목을 잡혀 사면초가에 빠졌다. 때문에 현 회장의 경영리더십 부재는 물론 주름이 깊어졌다는 후문이다. 진흙탕 싸움에 이어 표류위기에 놓인 현대건설 인수에 대한 고민을 알아본다.
현대건설 주주협의회(채권단)가 현대그룹의 우선협상대상자 지위를 박탈하기로 사실상 결정했다. 채권단은 현대그룹의 인수자격을 박탈하더라도 예비협상대상자인 현대차그룹과 협상할지는 별도로 검토할 계획이어서 현대건설 매각작업이 상당 기간 표류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사실상 인수 무산
지난 12월 17일 채권단은 전체회의를 열고 현대그룹과의 주식매매계약(SPA) 체결 승인안과 양해각서(MOU) 해지 동의안을 함께 상정했다.
외환은행과 한국정책금융공사, 우리은행 등 채권단 운영위원회는 현대그룹이 제출한 프랑스 나티시스은행 예치금 1조2000억 원에 대한 2차 대출확인서가 그동안 제기된 자금 출처 의혹을 해소하기에는 불충분하다는 내용의 상정안을 전체회의에 제출했다.
때문에 22일까지 주식매매계약 체결 승인 안에 대해 9개 채권금융회사 중 20%(의결권 비율 기준) 이상 반대하면 현대그룹의 현대건설 인수는 무산되기 때문에 사실상 결론은 난 것이나 다름없다는 분석이 강하다.
현재 외환은행 정책금융공사 우리은행 등 채권단 운영위 3곳 모두 의결권을 각각 20% 이상 갖고 있어 한 곳만 반대해도 현대그룹의 인수는 어렵게 된다.
금융권 관계자는 “현대그룹의 인수자격을 박탈하기 위해 주식매매계약 체결 거부안을 상정할 경우 80% 이상의 표를 끌어 모아야 하지만 승인 의사를 묻게 되면 20% 이상만 반대해도 같은 효과를 누리게 된다”며 “사실상 박탈하겠다는 의미”라고 풀이했다.
MOU 해지안은 75% 이상 찬성하면 가결되지만 설령 부결되더라도 주식매매계약 체결에 20% 이상 반대하면 현대그룹과의 매각 협상은 종료된다.
채권단 관계자는 “현대그룹과 주식매매계약 체결을 맺지 않으면 거래 자체가 끝나는 것이어서 MOU 해지 여부는 큰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따라서 전체회의에서 주식매매계약 체결 승인안이 부결되면 곧바로 현대그룹과의 협상은 종료되는 셈이다.
그러나 현대그룹의 현대건설 인수가 무산되더라도 현대차가 좋아하기는 아직 이르다. 사실상 현대차 이외에 현대 건설을 인수할 대상이 나타나기는 힘들지만 현대차그룹도 이번 진흙탕 싸움을 통해 이미지를 구겼기 때문이다.
하이닉스 배상도 골치
엎친데 덮친 격으로 현 회장은 하이닉스에 480억 원을 배상하게 됐다.
그야말로 자금이 논란이 된 현대건설에 또 하나의 발목을 잡는 양상이 되고 말았다. 때문에 부담감도 크다.
서울고법 민사12부(박형남 부장판사)는 지난 15일 ㈜하이닉스반도체(옛 현대전자산업)가 고 정몽헌 회장이 비자금 조성 등으로 끼친 손해를 배상하라며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등 8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현 회장 등 6명이 하이닉스에 합계 480억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또 중간에 항소를 취하한 강 모 씨 등 2명은 1심 판결대로 4억8천여만 원을 현 회장 등 3명과 연대해 배상하라고 명했다.
재판부는 “비자금 중 상당액이 결국 현대전자산업의 이익을 위해 사용됐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고, 정 회장 등이 회사 성장에 적지 않은 공헌을 한 점, 이들의 재직기간과 의사결정 영향력 정도 등을 감안해 배상 범위를 정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현 회장이 비자금 조성이나 한라건설 지원으로 생긴 피해액의 70%를, 코리아음악방송 등 계열사 지원으로 발생한 피해의 40%를 책임지는 것이 합당하다고 산정했다.
현대전자산업 대표이사였던 정 회장은 외화매입을 가장하는 등의 방식으로 1996∼2000년 비자금 약 290억 원을 조성해 자신이 승인한 인물 등과 함께 대부분 임의로 소비했다.
또 코리아음악방송 등을 부당지원하거나 숙부인 정인영 회장이 경영하는 한라그룹 계열 한라건설의 기업어음(액면가 400억 원 상당)을 정상금리보다 낮은 이자율로 할인 매입해 공정거래위원회의 과징금 납부 명령을 받았다.
이에 하이닉스는 정 회장의 부인이자 유일한 상속인인 현 회장과 현대전자산업 전직 임직원 등 8명을 상대로 총 820억 원을 청구하는 소송을 냈으며 1심은 현 회장 등이 574억여 원을 배상하라고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했다.
현대그룹 측은 다소 억울함이 있다는 입장이지만 흘러가는 상황이 악재로 통하는 것은 인정하는 분위기다. 법원 판결에 항소할 뜻을 밝혔다. 아울러 채권단에 대해서도 서운한 감정을 드러냈다.
현대그룹 관계자는 “17일 현재 채권단의 최종 결정이 난 상황이 아니라 입장을 정리하기 어렵다”며 “(하지만) 지금까지 보여준 채권단의 태도에 실망이 크다”고 말했다.
하이닉스 소송과 관련해서도 “현 회장이 잘 알지 못했던 상황이었다. 때문에 항소를 준비 중이다”고 일축했다.
그야말로 사면초가에 빠진 현대그룹. 현 회장의 경영승부의 갈림길에 놓였다는 말이 실감나는 상황이다.
[이범희 기자] skycros@dailypot.co.kr
이범희 기자 skycros@dailyp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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