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부갈등·맞고소’ 혼돈의 현대건설 인수전

현대건설 인수전이 난항을 거듭하고 있다.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던 현대그룹(회장 현정은)측이 제시한 나티시스은행 1조2000억 원과 관련한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채권단인 외환은행도 이 자금에 대한 소명자료를 제출하지 못하면 우선협상대상자 자격을 박탈하겠다고 밝혀 파문이 예상된다. 아울러 경쟁사였던 현대차그룹(회장 정몽구)측도 소명자료는 물론 주채권단인 외환은행을 압박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현대건설 인수전이 또 다시 진흙탕 싸움으로 비화될 전망이다. 양사 역시 서로를 고발해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현대그룹측은 소명할 이유가 없다고 버티고 있고 현대차는 의혹이 많다고 꼬집고 있다.
지난달 16일 올해 M&A최대어로 떠올랐던 현대건설이 현대그룹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면서 마무리되는 듯했다. 현 회장도 다음날 현대그룹의 비전을 이야기하며 청사진을 밝히기도 했다.
현대차그룹도 패배를 인정했고 현대그룹의 청사진 발표에 박수를 보냈다. 하지만 인수결과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현대건설 채권단의 심상찮은 조짐과 현대차그룹의 끊임없는 의혹제기 때문에 또 다시 파행으로 치달았다. 특히 현대그룹의 인수자금 출처가 불투명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그 논란은 일파만파로 확산됐다.
금융권의 국제신용 등급도 없는 현대상선 프랑스 법인이 신용만으로 1조2000억 원을 빌렸다는 주장이 납득할 수 없다는 것이다. 현대상선의 자본금이 33억 원에 불과한데 많은 돈을 빌렸다는 것은 어렵다는 설명이다.
진흙탕 싸움으로 변질
채권단인 외환은행측도 이와 관련 MOU에 근거해 합리적 범위에서 요구되는 해명 및 증빙자료 제출에 성실히 응할 것을 요구하고 나선 상태다. 외환은행 관계자는 “현대그룹이 자료를 제출하지 않으면 법률 의견을 받는 대로 자료 제출을 재요청할 것”이며 “현대그룹이 요구에 불응하거나 자금조달에 불법성이 있다고 판단되면 주주협의회의 의결을 거쳐 MOU를 해지할 것”이라고 압박을 가했다. 우선협상 대상자 선정과 MOU체결에는 하자가 없다고 밝혀왔던 기존 태도와는 크게 달라진 것이다.
이 같은 기조변화는 현대차그룹이 이날 1조 원 상당의 예금을 인출하고 거래 중단 가능성까지 시사하면서 압박을 가한데 따른 것으로 분석되기도 한다. 속전속결로 처리된 입찰 과정의 문제와 자금 출처 의혹에 대한 정책금융공사 등의 문제제기에 부담을 느낀 데다 우선협상대상에서 떨어진 현대차그룹의 예금 인출 압박까지 받으면서 태도를 바꿀 수밖에 없었다는 해석이다.
또한 현대차그룹도 외환은행이 다른 채권단과의 회의 없이 단독으로 MOU를 체결한 것은 대주주로서의 의무를 위반한 것이라며 비난하고 나선 것도 한 몫 한 것으로 알려진다.
내부갈등을 노출했던 현대건설 채권단도 팔을 걷었다. 현대그룹의 자료 제출을 함께 압박하며 공동보조를 취했다.
채권단뿐 아니라 외부에서도 자금 출처를 검증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고려대 장하성 교수는 “현대그룹이 인수할 현대건설이나 기존 현대그룹 계열사의 주식 또는 자산을 담보로 1조2000억 원을 대출받았을 경우 관련 회사 소액주주의 권리가 침해받을 수 있기 때문에 반드시 검증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현대그룹 측은 지난 3일 ‘대출 확인서'를 제출, 재반격에 나섰다.
현대그룹에 따르면 이 확인서에는 ‘계좌에 들어있는 자금은 대출금이며 현대건설 주식을 비롯해 현대그룹 계열사 주식이 담보로 제공되지 않았고, 현대그룹 계열사가 대출에 대해 보증하지 않았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공증된 문서라는 점도 강조했다. 이에 따라 채권단도 문서의 진위여부를 놓고 조사에 착수 했다.
MK 인수 사활 재점화되나
이번 사태와 관련 현대차그룹이 M&A인수전을 원점으로 돌리기 위해 초강수를 띄운 것이란 주장도 있다. 현대그룹의 현대건설 인수가 불발로 끝난다면 큰 이변이 없는 한 현대차그룹이 인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대건설 인수에 나선 기업도 이 두 기업이었고, 다른 대기업들은 현대가의 적통성 문제로 인해 참여를 고사한 바 있다. 때문에 현대차그룹측은 표정 관리를 하면서 이번 사태를 예의주시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현대가 집안사정에 밝은 재계관계자는 “현대그룹이 고 정주영 명예회장을 거론하며 뿌리 운운하고 있지만 그 얘기를 하고 싶은 사람은 누구보다 정몽구 회장일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현대건설 인수전은 현대차그룹과 현대그룹의 법정공방으로 비화되고 있어 또다른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다.
현대그룹은 지난 2일 현대차그룹을 상대로 현대건설 인수와 관련한 이의제기 금지 등을 요구하는 가처분 신청을 서울중앙지법에 냈다. 지난달 25일 현대차그룹이 현대그룹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형사 고소했고, 29일에는 현대차그룹을 상대로 500억 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에 이은 세 번째다. 범위도 한결 넓어졌다. 이번 가처분 신청에는 이의제기 금지, 허위사실 유포 등 명예 및 신용 훼손행위 금지, 주식매매계약 체결 방해 행위 금지 등이 포함됐다.
현대그룹은 현대차그룹이 입찰을 방해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현대그룹 관계자는 “현대차그룹이 매각주관사인 외환은행의 예금을 일방적으로 인출하고, 일부 언론이 보도한 대로 현대그룹의 재무적 투자자인 동양종합금융증권에 거래 단절을 위협하는 등의 방법으로 압력을 가한 것이 사실이라면 이는 입찰 방해 행위에 해당한다"며 “현대차그룹은 이러한 행위를 즉각 중단하라"고 말했다. 이어 “적법하게 체결한 양해각서(MOU)의 효력을 부인하는 현대차그룹의 예비협상대상자 자격은 박탈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대차그룹도 지난달 30일 현대상선과 현대증권을 상대로 무고 및 명예훼손 혐의로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고소장을 제출했다.
[이창환 기자] hojj@dailypot.co.kr
이창환 기자 hojj@dailyp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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