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 2년 만에 다시 또 법정에 가나
한 시민단체가 재판부의 공무집행을 방해하며 법을 위반했다는 혐의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을 검찰에 고발했다. 이 회장이 삼성에버랜드와 삼성SDS 주식의 헐값 증여 혐의로 재판을 받을 당시 자신에게 유리한 자료만 제출해 법원을 속였다는 것. 경제개혁연대(소장 김상조·한성대교수)는 “이 회장이 지난 2008년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와 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를 헐값에 증여한 혐의로 기소되자, 이들 회사에 손해액 전부를 지급했다는 서면을 제출하고 유죄로 인정되지 않는 금액을 나중에 돌려받기로 한 세부약정서는 내지 않았다”며 “(이 회장이) 세부약정서를 첨부하지 않아 피해액을 전액 지급한 것처럼 재판부를 속여 형사 재판의 공무를 방해했다”고 주장했다.
2년 만에 다시 검찰에 고발된 전후 사정을 알아본다.
서울중앙지검 형사7부(김창희 부장검사)는 지난달 26일 경제개혁연대 관계자를 고발인 신분으로 불러 조사했다. 이 관계자는 검찰에 이 회장의 ‘법원기망’ 의혹을 뒷받침한다는 관련 자료를 제출함과 동시에 구체적인 고발 배경을 밝혔다.
향후 검찰은 두 회사(에버랜드, SDS)의 재무 담당 직원도 소환해 의혹의 사실 관계를 확인할 계획이다.
이건희 회장 ‘위계’ 혐의 고소
지난 2008년 삼성특검에 의해 기소된 뒤, 1심 재판과정에서 이건희 회장은 “사회적으로 물의를 빚은 데 대해 깊은 책임감을 느낀다”며 “유무죄 판결 결과와는 관계없이 공소장에 기재된 에버랜드의 손해액 970억 원과 SDS 손해액 1540억 원을 각 회사에 지급했다”는 내용을 담은 ‘공소장 기재 금원 지급 관련 서면’(이하 서면) 문서를 포함한 양형 참고자료를 재판부에 제출했다.
이후 삼성특검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고인 이건희가 피해자인 SDS가 입은 손해액 227억 원 이상을 납부해 그 피해가 회복됐다”는 점을 집행유예 선고의 양형 참작 사유로 삼아 SDS 신주인수권부사채건에 대해서는 일부 유죄판결, 에버랜드 전환사채 발행건은 무죄를 선고했다.
하지만 확정 판결 후 이 회장은 무죄가 선고된 에버랜드 경우 지급한 금액 전부를 돌려받았다는 것이 경제 개혁연대의 주장이다. 개혁연대에 따르면 유죄가 선고된 SDS 또한 재판부가 회사의 손해로 인정한 금액과 이자 120억 원을 합친 347억 원을 제외한 나머지 돈 1193억 원을 돌려받았다. 이는 이들 회사와 이 회장 측의 실무자 선에서 작성된 ‘공소장 기재 금원 지급 관련 세부약성서’(이하 약정서)에 따라 이뤄진 것이라는 주장이다.
경제개혁연대가 문제로 삼은 것은 유죄로 인정되지 않은 금액을 나중에 돌려받기로 한 이 약정의 내용을 이 회장 측에서 재판부에 알리지 않고 서면만 제출, 법원으로부터 유리한 양형판단을 받는 자료로 사용됐다는 점이다.
이에 경제개혁연대는 “이건희 회장이 약정서를 첨부하지 않고 서면만 법원에 제출해, 재판부로 하여금 피해 회복에 필요한 금액 이상이 확정적으로 지급돼 범죄행위로 인한 비난가능성이 소멸되었다고 믿게 한 것”이고 “이는 형법 제137조(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의 ‘위계’에 해당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경제개혁연대는 지난 4월 이 두 회사가 이 회장에게서 지급받은 2000억 원대의 자금을 도로 반환해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며 양사 경영진들을 검찰청에 고발했다.
경제개혁연대는 “삼성특검 1심 재판 당시 에버랜드와 SDS가 이 회장에게서 받은 금액을 회사 수익으로 계상하지 않거나 일부만 계상하고 돌려줬다”며 “에버렌드와 SDS 전·현직 대표이사인 박노빈, 최주현, 김인 등 세 사람이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배임 및 주식회사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 위반(분식회계) 혐의가 명백히 있다”고 주장했다.
법원, 분식회계도 무혐의 처리
에버랜드가 수익으로 인식하지 않았던 970억 원은 2008년 당시 당기순이익 1736억 원의 56%에 해당했다. SDS의 1540억 원은 2008년 이익 2330억 원의 66%에 해당되는 금액이다. 경제개혁연대는 “이런 거액을 누락한 것은 당기순이익을 조작한 것”이라며 “이는 명백한 분식회계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검찰은 당시 이 회장 측이 법원에 내지 않은 세부약정서 내용을 근거로 사건을 무혐의 처리했다.
검찰은 “문제의 자금을 확정자산으로 보기 어렵다”며 “분식회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해 이 사건을 종결지었다.
비리폭로 3년, 변한 건 없어
김용철 변호사가 양심선언을 한지 3년이 지났다. 지난 10월 29일은 김용철 변호사가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을 통해 삼성그룹의 불법비리를 고발한 지 3년째 되는 날이었다.
삼성특검 수사결과 발표 직후 이건희 회장은 대국민사과를 통해 “경영에서 물러날 것”이라는 뜻을 밝히며 “(비리의 중심이었던) 전략기획실을 해체한다”는 약속을 했다.
하지만 지난 3월 이 회장은 삼성의 위기를 명분으로 특별사면을 거쳐 경영전면에 복귀했다. 이 회장이 퇴진을 선언한 지 2년 반 만에 일이다.
2008년 7월 해체됐던 삼성그룹의 컨트롤타워인 전략기획실도 ‘미래전략실’로 이름을 바꿔 공식적으로 2년 4개월 만에 부활했다. 이로서 삼성은 다시 과거로 완벽하게 회귀했다. 비리가 폭로됐지만 변한 것은 없는 것이다.
이에 경제개혁연대는 “이건희 회장과 삼성그룹의 행보를 자연스러운 귀결로 여기거나 그들의 불법행위를 과거의 잘못으로 덮고 넘어갈 수 없다”며 “삼성의 불법행위의 근본적 원인은 조금도 개선되지 않았으므로, 삼성계열사들과 국가경제를 위태롭게 할 수 있는 문제가 언제든 다시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를 표명했다.
또한 경제개혁연대는 해결책으로 “재벌의 불법행위에 대한 사전 예방 및 사후적 책임추궁 수단의 정비가 절실하다”며 “‘회사기회유용’을 금지하는 정부의 상법 개정안이 빨리 통과되어 제도가 정비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주리 기자] park4721@dailypot.co.kr
박주리 기자 park4721@dailyp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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