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 풀려나거나 감형받거나
대부분 풀려나거나 감형받거나
  • 김현진 
  • 입력 2004-10-08 09:00
  • 승인 2004.10.08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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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소심 법원이 지난달 22일 불법대선자금 수수혐의로 기소된 안희정·최돈웅씨에게 각각 징역 1년씩을 선고함으로써 대선자금 관련 정치인 재판이 일단락됐다. 이날까지 판결 선고된 정치인과 기업인들 대부분은 풀려나거나 벌금형을 받는 등 감형됐다. 검찰수사 초기, 정치개혁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가 재판을 거치면서 무색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노무현 대통령 측근들은 1심과 항소심 과정에서 대부분 석방된 반면 야권 인사들에 대해서는 중형이 선고돼 ‘유권무죄 무권유죄’라는 비난도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해 검찰이 서릿발 같은 기세로 대선자금 수사에 나섰을 때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고 깨끗한 선거풍토를 정착시킬 것이라고 기대하며 국민들은 지지의 목소리를 보냈다. 그러나 온정적 판결로 검찰 수사의 의미는 퇴색됐고 겨우 자리잡은 듯한 투명한 정치풍토가 언제 다시 더럽혀질지 알 수 없게 됐다.거물급 정치인과 기업인들이 대선자금 관련 비리 등으로 서울구치소에 무더기로 수감되면서 그들의 처벌수위에 주목해왔다. 결국 감형과 벌금형으로 마무리지어졌고 사법부는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이미지를 면치 못하게 됐다. 법원은 올해 항소심에서 정치 자금법 위반 정치인들을 감형한 이유에 대해 “범죄를 반성하고 있고 개인 유용은 하지 않았다. 오랫동안 공직을 성실히 수행한 점, 정치자금법의 최고형이 3년 이하 징역이라는 점등 때문이다”라고 이유를 밝혔다.

이번 불법 대선 자금 재판은 검찰 수사만 요란했을 뿐, 사건이 법원으로 넘어온 뒤에는 1심과 항소심을 거치면서 흐지부지 끝나는 결과를 가져왔다. 지난달 22일 서울고법은 노 대통령의 측근인 안희정씨와 최돈웅 전 한나라당 의원에게 각각 징역 1년을 선고했다. 징역 2년6월과 징역 3년의 1심 형량과 비교하면 관대한 판결이다.불법 대선자금 사건과 관련해 현재 수감돼 있는 정치인은 6명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대부분 석방된 상태다. 한나라당 김영일·최돈웅 전의원과 서정우 변호사, 노 대통령 측근중에서는 안희정·최도술씨 정도가 한가위를 구치소에서 보냈다.

노무현 캠프 관대한 법 적용

불법 정치자금 25억여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된 정대철 전민주당대표는 2002년 윤창열씨에게서 4억원을 받는 등 25억2,000만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1심에서 징역 6년에 추징금 4억원을 선고받았다. 이어 항소심에서 ‘경성수뢰사건’과 병합돼 징역 8년에 추징금 4억4,000만원을 구형 받았다. 또 정 전 대표는 최근 고혈압 등으로 건강이 악화돼 지난달 21일부터 나흘간 세브란스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뒤 다시 서울구치소에 수감된 상태다.반면, 정치사범들 중 1,500만~3,000만원의 벌금형을 받은 정치인, 기업인이 수두룩하다. 불법자금 수억원을 주고 받은 죄값이 고작 수천만원에 불과한 셈이다.

지난 7월 한화에서 채권 10억원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열린우리당 이재정 전의원이 벌금 3,000만원으로 첫 테이프를 끊었다. 그는 1심에서 징역 1년형을 선고받았다. 20여일 뒤 열린우리당 이광재 의원도 썬앤문 그룹에서 1억원을 받은 혐의로 기소됐으나 벌금 3,000만원이라는 ‘면죄부’를 받고 의원직을 유지했다. 롯데그룹에서 3억원의 불법자금을 받은 혐의로 1심에서 징역 1년을 선고받은 여택수 전 대통령제1부속실 행정관에 대해서도 항소심은 지난달 9일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 석방했다. 검찰은 항소심에서 여씨에게 징역 3년을 구형한 바 있다. 불법자금(1억5,000만원) 수수 혐의를 받아온 신상우 전 민주평통 수석부의장은 1심에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풀려났다. 검찰은 신 전부의장에게 징역 1년6월의 실형을 구형했었다. 이어 강금원, 선봉술, 박연차씨 등 노 대통령 측근들도 모두 실형에서 벗어났다.

지난해 일반 형사사건의 항소심 재판에서 원심 파기(대부분 형량 경감)된 비율이 54.6%인 것과 비교하면 너무 큰 차이가 난다. 그만큼 법원이 정치인들에게 특혜를 베풀고 있는 셈이다. 특히 노 대통령 측근의 감형은 한나라당의 반발을 샀다.야권 인사 엄격한 법 적용노 대통령 측근 인사들에 대해서는 대부분 실형을 면하는 판결이 내려진 반면 과거 한나라당이나 민주당 소속 정치인들에 대해서는 엄격하게 법이 적용돼 형평성 논란이 일고 있다. DJ(김대중 전대통령)의 최측근으로 통했던 박지원 전청와대비서실장은 1심에 이어 항소심에서도 징역 12년에 추징금 148억원의 중형을 선고받았다. 항소심은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과 대북송금 과정에서 직권남용, 외국환거래법 위반, 그리고 남북교류협력법 위반 혐의 등 검찰 기소내용을 모두 인정한 것이다.

DJ의 또 다른 핵심측근이었던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도 항소심에서 징역 5년에 추징금 150억원을 선고받았다. 이 두 사람 외에도 현대비자금 사건에 연루된 혐의를 받고 있는 정치인 대부분이 1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았다. 김용채 전 건교부 장관과 박주천 전의원은 징역 5년을, 3,000만원을 수수한 혐의를 받고 있는 박주선 전 의원과 박광태 광주시장은 징역 2년6월, 제3자 뇌물수수 혐의를 받고 있는 이훈평 전의원은 징역 1년을 각각 선고받았다. 임진출 전의원(2,000만원 수수 혐의)만 징역 2년6월에 집유 4년으로 실형을 면했다.

법조계 관계자들은 “대선 자금이 성격상 개인 유용이 어렵고 정계를 은퇴하는 것도 타의에 의한 불가피한 상황인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 감형 이유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공직을 오랫동안 수행한 것이 중형의 이유가 됐으면 됐지 왜 선처의 배경이 되는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참여연대도 “법원이 정치부패와 관련한 정치인과 기업인에 대해 잇따라 감형을 해주고 있다”면서 “사법부가 사회정의를 세우는 기관으로 기여하는 것인지 아니면 사회지도층의 비리를 선처해 같은 사건의 재발을 조장하는 것은 아닌지 뒤돌아봐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현진  kideye1@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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