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주’‘HOLDINGS’(홀딩스) 다른가 같은가

회사명을 놓고 대성지주 김영대(장남) 회장과 대성홀딩스 김영훈(3남) 회장 형제 간 법정 다툼이 길어질 전망이다. 지난 4일 법원이 대성홀딩스 측이 낸 가처분 신청을 받아 들여 ‘대성지주’라는 상호에 대한 사용 금지를 내리며 공방전이 일단락되는 듯 했다. 하지만 대성지주 측은 “대성지주라는 사명은 회사의 정통성과 실체에 관한 중요한 사항이다”며 “본안소송 등을 통해 강력하게 대응해 나갈 방침”이라고 밝혔다. 대성家 형제들은 이미 창업주 고 김수근 명예회장 타계 후 경영권 분쟁 소용돌이에 휩싸였고, 그룹명을 두고 다투는 진풍경을 펼친 바 있다. 두 형제의 다툼 2라운드 속으로 들어가 본다.
지난 6월 김영대 대성 회장이 대표로 있는 대성산업은 “당사는 2010년 6월 29일을 기준일로 해 존속회사로서 지주회사로 전환하여 상호를 대성산업(주)에서 (주)대성지주로 변경했다”고 밝혔다.
이에 앞선 지난해 10월 삼남 김영훈 대성그룹 회장이 대표인 대구도시가스는 지주회사로의 전환을 실시하며 ‘대성홀딩스주식회사’로 회사상호를 변경했다. 또한 영문으로 ‘DAESUNG HOL DINGS CO.,LTD.(약호DSH)’라고 표기했다.
대성산업이 ‘주식회사 대성지주’라는 이름으로 상장을 추진하자 대성홀딩스측은 “대성지주와 대성홀딩스는 같은 의미이다”며 법원에 상장금지가처분 신청을 냈다 철회하고 상호사용 금지 가처분 신청을 제기한 것이다.
대성홀딩스는 “대성지주의 영문명칭이 ‘Daesung Group Hold ings Co.,Ltd(대성그룹홀딩스)다”며 “대성홀딩스의 영문이름과 유사해 투자자들에게 혼동을 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국문으로 보면 ‘대성’이 같고 영문 일 땐 ‘Group’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로 동일한 표현으로 본다”며 “더욱이 영업내용도 비슷해 투자자들이 서로 다른 회사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오해할 여지가 있다”고 설명하며 대성홀딩스의 손을 들어줬다.
그룹명 가지고도 다툼 일어
대성지주 측은 대성홀딩스 측의 이런 행동에 내심 섭섭함을 감추지 않았다. 3남인 김영훈 회장이 ‘대성그룹’이란 이름을 사용할 당시 가계의 정통성을 지닌 장남 김영대 회장이 이를 양보해줬다는 이유에서다.
처음 3남 김영훈 회장 측이 대성그룹 간판을 사용했을 때도 형제간에 신경전이 벌어졌었다. 서로 ‘대성그룹 대표’라는 명칭을 고집해 일반인들이 헷갈려 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사명과 관련해 장남인 김영대 회장이 한 발을 뒤로 빼 그룹명으로 ‘대성’을 사용하면서 진정 국면에 들어서는 듯 했다. 2007년, 대성그룹 창립 60주년을 맞아 회사 명칭을 ‘대성’으로 변경했던 것이다. 김영대 회장은 사명으로 인해 형제간 우애가 흠집 나서 세간에 떠들썩한 소문이 나는 것을 우려해 양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대성산업은 대성으로, 차남 김영민이 맡고 있는 서울도시가스는 SCG(Seoul City Gas)그룹으로, 대성홀딩스는 대성그룹으로 각각 계열사를 두고 사업 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경영권으로 인한 갈등이 시초
대성그룹은 창업주 고 해강 김수근 명예회장이 1947년 대성산업공사를 설립, 연탄 제조와 판매를 시작으로 석유, 도시가스, 유전개발 등을 갖추며 중견그룹으로 이름을 다지기 시작, 국내 대표적인 종합에너지사업을 대표하는 그룹으로 발돋음한 기업이다. 이런 안정된 에너지사업을 기반으로 건설, 정보통신분야로 영역을 확대하게 된다.
김수근 명예회장은 생존 당시 “1남은 대성산업(현 대성지주)을, 2남은 서울도시가스(현 SCG)를, 3남은 대구도시가스(현 대성지주)를 준다”며 대성그룹 3개 주력사를 세 아들이 각각 나누어 맡을 수 있도록 형제간 교통정리를 마쳤다. 김 명예회장은 형제간 그룹 경영권 분쟁을 미연에 방지하려고 노력하는 등 형제간 우애를 중요시 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우려는 현실로 다가왔다. 형제들은 경영권 분쟁의 소용돌이에 휩싸였다. 지난 2001년 2월 김수근 명예회장이 타계한 뒤 계열 분리를 거쳐 3형제가 각기 맡은 회사는 독립 경영 체제로 전환했다. 하지만 이 과정마저 깔끔하지 못해 첨예한 갈등을 보였다.
형제간 불화에서 오누이간 갈등 까지
3형제의 불화는 1남과 3녀의 분쟁까지 촉발시켰다.
형제간의 경영권 분쟁이 한창인 2001년 유럽 가죽브랜드 MCM의 사업권을 놓고 대성산업(현 대성)과 성주인터내셔널이 서로 다른 주장을 펼치며 남매 사이의 분쟁에 휘말린 것이다.
당시 김성주 회장은 기자회견을 통해 “(제조부분을 담당했던) 대성산업이 부도덕한 방법으로 유럽 가죽브랜드 MCM의 사업권을 뺏으려고 한다”고 주장했다.
성주인터내셔널은 IMF 당시 대성산업의 지급보증으로 금융기관에서 30억 원을 빌리면서 MCM사업권을 대성산업에 위임했다. 김성주 회장은 “차입금을 최근 모두 갚았다”며 “사업권을 되돌려 줄 것을 요구했지만 대성산업 측이 응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당시 김성주 회장은 형제간 상속분쟁을 지켜보면서 합리적인 설득을 통해 MCM사업을 돌려받을 수 있을지에 대한 심각한 회의를 품은 것으로 알려졌다.
대성산업과 성주인터내셔널은 같은 해 7월 16일 MCM사업의 제조 판매 및 경영권 일체를 성주인터내셔널에 넘기기로 최종 합의했다. 이에 따라 MCM사업권을 둘러싼 김영대 대성 회장과 김 회장의 막내 여동생인 김성주 성주인터내셔널 회장간의 분쟁이 종결됐다.
[박주리기자] park4721@dailypot.co.kr
#대성가 집안스토리
학벌은 최고! 형제애는 글쎄…
고 김수근 회장이 타계한 후 형제간의 갈등이 있기 전만 해도 김 명예회장은 재계에서 ‘자식농사’를 잘 지은 것으로 유명했다.
슬하에 4남 3녀를 뒀으며 4남을 제외한 3남 3녀 모두 국내외 명문대 출신으로 2개 이상의 석사 학위를 소지한 재원들이다. 무려 4명이 서울대를 졸업했으며 ‘수석’도 곧잘 했다. 다만 4남만이 일찍 세상을 떠난 것이 옥의 티다.
삼남 김영훈 회장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어머니가 신앙을 통해 자녀들에게 사랑과 절제를 직접 몸으로 실천해 보여줬다”며 모친의 남다른 자식 교육에 대해 회고하고 있다.
어머니 여귀옥 여사는 임신 중엔 태교를 위해 잡지나 신문을 보지 않고, 오직 성경만 보고 지냈다고 한다. 또 자녀를 자신의 소유물이 아닌 독립된 인격체로 대했으며, 꾸지람보다 스스로 깨우치도록 유도했다.
장남 김영대 회장은 서울대에서 법학을 전공한 뒤 동대학 경영대학원을 수석으로 졸업했다. 차남 김영민 회장, 3남 김영훈 회장, 장녀 김영주 화백도 모두 서울대를 나왔다.
특히 김영훈 회장은 법학, 경제, 경영, 신학 등 총 4개의 학위를 소지하고 있다. 그는 경기고와 서울대 법대 행정학과에 입학한데 이어 미국 미시간대에서 법학·경영학 석사를 마친 뒤 하버드대에서 신학과 국제경제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김영주 화백은 서울대 미대를 수석으로 입학해 미국 크랜브룩 아카데미오브 아트 대학원을 나왔다.
차녀 김정주 연세대 교수는 이화여대에 전체 수석으로 입학해 영문학과를 졸업 한 후, 미시간대에서 영문학을, 하버드대 신학대학원에서 신약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3녀 김성주 성주인터내셔널 대표는 연세대를 선택했다. 이화여고 2학년이던 때 형제 중 가장 친하던 넷째 오빠(김영철)가 대학 입시에 낙방한 걸 비관해 자살한 일이 벌어졌다. 이때 받은 충격이 신학과를 선택하게 된 계기가 됐다. 미국 앰허스트대 사회학과를 졸업한 뒤 영국 런던정치경제대학원(LSE)를 거쳐 하버드대학원에서 기독교윤리와 경제학을 전공했다.
2세 본인들 뿐 아니라 배우자들도 명문대를 졸업했다.
장남 김영대 회장의 부인 차정현씨는 서울대 음대에서 피아노를 전공했다. 차남은 서울대 음대 성악과를 졸업한 민영옥씨와 인연을 맺었다. 3남 김영훈 회장은 금란교회 김홍도 목사의 차녀인 김정윤와 결혼했다.
장녀 김영주 화백의 남편은 서울대 의대 출신인 내과전문의 신현정 박사다. 김정주 교수는 아직 미혼이며, 김성주 대표는 국제결혼을 한 케이스로 하버드대 동창 딘 고달드와 결혼했다.
박주리 기자 park4721@dailyp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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