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진단] 의사 폭행‧살해 막을 수 없나
[긴급진단] 의사 폭행‧살해 막을 수 없나
  • 조택영 기자
  • 입력 2019-01-04 17:35
  • 승인 2019.01.04 17:52
  • 호수 1288
  • 20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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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법 통과됐더라면...”
지난 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적십자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임세원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의 빈소에 화환이 들어가고 있다. [뉴시스]
지난 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적십자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임세원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의 빈소에 화환이 들어가고 있다. [뉴시스]

[일요서울 | 조택영 기자] 임세원(47)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가 진료 중이던 환자에 의해 목숨을 잃은 사건이 발생했다. 의료진 안전 보장을 위해 병원 내 보안검색대를 설치하고 응급실 뿐 아니라 의료인 전체에 대해 폭력 시 처벌을 강화해 예방 효과를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여론은 물론이고 정치권과 의료계를 중심으로 터져 나오고 있는 형국이다.

-피의자 머리에 소형폭탄 심은 것 논쟁하다가 범행횡설수설

-‘의료진 폭행 처벌 강화청와대 청원 빗발

-금속 탐지기 도입 및 청원경찰경찰 인력 배치 의견도

-법안 정비하겠다는 정치권폭행 예방 가능할까

자신의 정신과 진료를 담당한 의사를 흉기로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 박모(30)씨가 구속됐다.

박 씨는 지난달 31일 오후 544분경 서울 종로구 강북삼성병원에서 진료 상담 중이던 임세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의 가슴 부위를 흉기로 수차례 찔러 사망에 이르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임 교수는 응급실에서 심폐소생술을 받은 뒤 곧바로 수술을 받았으나 흉부를 크게 다친 탓에 같은 날 오후 730분경 결국 숨졌다.

간호사의 신고로 출동한 경찰은 현장에서 박 씨를 긴급 체포했다. 사건을 담당하는 서울 종로경찰서에 따르면 박 씨는 경찰 조사에서 범행은 시인했으나 범행 동기에 대해서는 줄곧 횡설수설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 씨는 조울증 환자로 수년 전 임 교수에게 진료를 받은 적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지난 1일 박 씨를 상대로 구속영장을 신청했으며, 검찰도 같은 날 영장을 청구했다.

지난 2일 오후 2시경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위해 서울중앙지법에 도착한 박 씨는 범행 동기 등에 대한 질문에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앞서 오후 129분경 서울 종로경찰서를 나서면서도 취재진의 질문에 일절 대답을 하지 않고 호송차에 몸을 실었다.

이후 서울 종로경찰서에 따르면 박 씨는 경찰 조사에서 머리에 소형폭탄을 심은 것에 대해 논쟁을 하다가 이렇게 됐다. 폭탄을 제거해 달라고 했는데 경비를 불러서 (범행을 저질렀다)”라고 진술했다. 경찰은 박 씨의 진술이 신빙성이 없다고 보고, 압수수색으로 확보한 진료기록을 분석하며 정확한 범행동기를 파악하고 있다.

한편 경찰에 따르면 임 교수는 박 씨가 위협을 가하자 복도로 대피하면서 간호사들에게 도망쳐” “112 신고해등의 이야기를 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도망치는 와중에도 멈춰 서서 간호사 쪽을 바라보며 제대로 대피했는지 여부를 살피는 모습이 CCTV에 담겼다.

응급의료법 개정안만

국회 통과

이번 사건을 계기로 응급실뿐만 아니라 병원 전체에서 의료진 폭행을 막을 수 있는 법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최근 정치권과 의료계에 따르면 지난해 1227일 응급의료 종사자에 대한 폭행 처벌을 강화하는 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그러나 당시 의료인 전체에 대한 폭행 처벌 강화법(의료법 개정안)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보류됐다. 이후 일주일이 채 지나지 않아 비극적인 참사가 벌어진 것이다.

지난해 심의 보류된 박인숙 의원 등이 발의한 7개 법안에는 의료인 폭행에 대해 징역형(벌금형 삭제)만으로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 등이 담겨있었다.

그러나 당시 응급실에서 대부분의 폭력이 발생한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지면서 응급의료 종사자에 대한 폭행 처벌 강화법(응급의료법 개정안)만 통과됐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입법조사관은 의료법 보류 이유에 대해 환자의 생명이나 건강에 좀 더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게 응급실이고 그동안 사고도 응급실에서 일어났기 때문에 먼저 응급실 폭행에 대해서 처벌을 좀 더 강화하는 쪽으로 하고 일반 의료기관 전체에 대해서는 순차적으로 논의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당시 보건복지부도 의료법 내 징역형만 내릴 수 있도록 규정한 사례가 없어 형량이 과도하고 법관의 양형판단권을 과도하게 제한할 우려가 있다면서 사실상 반대 의견을 낸 바 있다.

의료단체들은 지난해 말 의료인 전체에 대한 폭행 처벌 강화법이 통과됐더라면 예방 효과가 있어 이러한 비극이 일어나지 않았을 수 있다며 안타까워 하고 있다.

대한의사협회의 한 관계자는 응급실뿐 아니라 전체 의료기관 내의 폭행을 근절해야 한다며 의료법, 응급의료법을 다 주장했는데 응급의료법만 통과가 됐던 것이라며 의료법이 통과됐더라면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았을지 모른다고 말했다.

의료계의 한 관계자도 지난해 응급의료법을 통과시켜 놓고 추이를 본 다음에 의료법을 논의하자고 해서 계류를 시키는 바람에 의료법은 국회 복지위에 잠들어 있다면서 의료법도 같이 통과가 됐더라면 예방 효과가 있지 않았겠느냐라고 강조했다.

이번 사건 직후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에는 의료진 폭력에 대한 처벌 강화를 요구하는 청원이 올라와 많은 공감을 받고 있다.

지난달 31일 시작된 이 청원에는 54000(4일 오전 기준)이 넘는 국민들이 청원에 동의했다. 이 같은 여론 탓인지 보건복지부의 입장도 작년 국회 심사 때와 많이 달라졌다.

호신용 스프레이만 있었어도...”

보건복지부는 지난 2일 배포한 참고자료를 통해 응급실 내 의료인 폭행 방지를 위한 응급의료법 개정안이 지난달 27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바 있으며 일반 진료현장에서의 폭행 방지를 위한 의료법 개정안이 국회에 계류 중이라며 징역형만 규정(벌금형 삭제), 형량하한제, 심신미약자 형감경 면제 등 법적 장치 마련 방안에 대해서도 의료계와 함께 논의해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올해는 의료인 폭행 처벌 강화법이 본격적으로 심의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국회 보건복지위의 한 관계자는 논의 안 하겠다는 것이 아니고 일단 계류하기로 한 것이라며 상황이 이렇다 보니 다시 논의가 되지 않겠느냐라고 전했다.

그러나 처벌 강화가 사고를 막는 근본적인 대안이 될 수 없다고 의료인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급기야 의료계에서는 자체적으로 가스총이나 호신용 스프레이, 방탄조끼를 구매해 스스로를 보호하는 수밖에 없다는 하소연까지 나오고 있다.

서울의 한 종합병원에서 일하는 의사 A씨는 호신용 스프레이 하나만 있었어도 이렇게 허무하게 사망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당장은 의사 스스로 자체 무장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병원 내 금속 탐지기 도입, 청원경찰이나 경찰 인력 배치 등 사전에 예방하기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다른 병원 의사 B씨는 흉기는 아예 소지를 못하도록 금속탐지기를 설치하는 방법이 그나마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또 고인이 활동했던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위급상황 시 의사들이 진료실에서 대피할 수 있는 뒷문 같은 안전장치를 두는 등의 대안이 포함된 법 제정도 추진하고 있다.

정신질환자 모두가

잠재적 공격자 아냐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적십자병원에 차려진 임 교수의 빈소를 찾아 조문했다.

박 장관은 조문 후 최대집 대한의사협회 회장 등 의료계 관계자들과 약 20여분 간담회를 갖고 “(의료인 폭행 등에 대한) 처벌도 강화하겠다면서 그 전, 사전에 어떻게 예방할 수 있고 그 비용은 어떻게 분담해 나갈 것인지에 대해 빠른 시일 내에 실태 파악에 나서겠다고 말했다.

박 장관은 응급의료법 외 국회 계류 중인 법안들은 모두 사후 처벌의 내용을 담고 있다면서 “(사고에 대한) 예방(대안)은 부족한 것이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번 일은 종합병원뿐만 아니라 개인병원에서도 일어날 수 있기에 제도적인 장치를 만들기 위해서는 의료계 전반에서 이런 일이 일어날 가능성 등을 체계적으로 조사하겠다처벌 강화는 국회에 맡기고 우리는 예방을 강조해 미리 막을 수 있는 방법에 최선을 다했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신호철 강북삼성병원장은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 특히 의료인들의 고충은 이루 말할 수 없다면서 병원이 환자를 위해 존재하는 공간이기에 우리가 항상 양보하지만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어느 정도 도가 넘어섰다는 느낌이라고 전했다.

신 원장은 보안요원을 과마다 배치했다면 이번 사고를 막을 수 있었을까 생각했지만 그럴 수 없었을 것이라며 급한 대로 외래에 전부 전기충격기 등을 가져놓는다고 해도 모두 미봉책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지난 사건이 있은 후 정신과 외래교수 등이 트라우마를 겪고 있어 환자를 정상적으로 못 봤다. 회복하는 데 꽤 걸릴 것이라며 고인의 희생을 계기로 다시는 사회 전체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면 안 된다는 것을 강력하게 요구한다고 강조했다.

이동우 인제대학교 상계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응급의료 상황에서 일어나는 폭력을 방지하는 법은 국회에서 통과가 됐지만 진료 등에서 일어나는 상황에 대한 법안은 계류돼 있다면서 최선의 방안을 도출해 힘 있게 추진해야 한다고 했다.

일각에서는 정신질환자 모두를 잠재적 공격자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서울의 한 종합병원에 근무하는 응급의학과 의사 C씨는 정신질환자의 범죄율이 정신질환이 없는 환자보다 평균적으로 낮은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이번 사건을 계기로 정신질환자 전체를 문제 삼는 것은 또 다른 폐해를 가져올 수 있다고 밝혔다.

권준수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이사장은 이번 간담회에서 이번 사건으로 자칫 정신과환자가 위험하다는 낙인이 찍힐 가능성이 있다면서 사실 정신과 환자들은 일반적으로 보통사람과 같은데 단지 급성기 환자 또는 재발 환자들이 위험한 상황이다. 이때 환자를 어떻게 적절히 빨리 조치할 수 있는가가 중요하지 격리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굉장히 위험하다고 우려를 표했다.

이에 박 장관은 전적으로 동의한다. 각종 의료기관에서 진료 과정 때 일어난 사건을 정리해 보면 여러 유형이 나올 테고 정신과에만 한정된 건 아닐 것이라며 유형별진료과목 특성별로 예방책이 모두 달라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최 회장은 기자들과 만나 “(이번 사건은) 인류의 문제, 나아가서는 국민과 환자들 생명과 건강을 기본적으로 지키고 보호하는 문제라며 이런 사태가 현장에서 발생했을 때 의료진과 대기하는 환자들의 안전을 확보하는 장치들이 이번 일을 계기로 만들어져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오늘(2) 상임이사회에서 장례식 이후 전국 13만 의사가 어떻게 추모의 뜻을 표할 것인지 등에 대해 논의했다면서 애도 기간인 장례식이 끝난 후 해외 사례를 조사해 확보한 자료를 바탕으로 집중적인 대응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손학규

임세원 법안 준비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는 지난 3일 임 교수의 빈소를 찾아 의료인과 병원의 안전장치를 강구하는 가칭 임세원 법안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손 대표는 외국의 경우를 보면 외래 환자에게 안전보호를 위해 검색대 등의 장치를 마련하고 있다면서 “(관련) 제도와 장치를 마련해 의료인들이 안심하고 진료를 볼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날 빈소를 방문한 이준석 최고위원과 함께한 손 대표는 국회에 계류 중인 의료인 폭행처벌 강화법 등에 대해 임 교수의 이런 죽음을 계기로 해서 국회에서도 각성하게 될 것이라며 의료사고 방지를 위해, 또 의료인과 병원의 안전을 위한 법적인 조치를 빠르게 강구할 것이라고 전했다.

앞선 2일 이 최고위원과 하태경 최고위원도 빈소를 찾아 의료인 안전 입법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지난해 관련 법안을 발의한 바 있는 자유한국당 박인숙 의원은 폭행은 응급실에서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병원 내 어디서든 발생할 수 있다면서 예방이 가능한 법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더불어민주당 정춘숙 의원도 응급실뿐만 아니라 진료실에서도 안전한 진료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관련 법안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자유한국당 신상진 의원 역시 처벌 강화는 물론이고 병원 진입 때부터의 안전 조치 등 예방이 중요하다이번 사건을 계기로 정부에서 의료진 안전 문제를 확실히 해결해 달라고 주문했다.

한편 임 교수의 발인식은 4일 오전 8시 빈소가 차려진 서울 종로구 적십자병원에서 열렸다. 앞서 오전 7시 강북삼성병원에서 열린 영결식에는 유족과 동료 등 추모객 350여 명이 자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택영 기자 cty@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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