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진동수 금융위원장이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한 발언이다. 현대건설 매각 과정에서 가격 뿐 아니라 인수기업의 지속가능성 등을 반영하겠다는 의미다.
현대건설 지분 11.12%를 보유해 최대 주주인 한국정책금융공사 역시 인수기업의 지속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유재한 정책금융공사 사장은 이달 초 미국 워싱턴에서 기자들을 만나 “현대건설 매각에는 가격이 가장 중요하겠지만 인수 주체의 자금조달능력, 경영비전 등도 따져 볼 것”이라고 말했다.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적통성을 잇기 위해 현대건설을 인수하려는 현대자동차그룹과 현대그룹 간 팽팽한 신경전이 본격화하고 있다.
현재까지는 인수가격과 인수 후 미래 성장비전을 제시한 현대차그룹이 미세하게 앞서는 분위기다. 현대그룹은 공격적인 광고를 통한 국민정서에 기대고 있다.
◇신 성장동력 확보, 車산업 변동성 보완
약 1조5000억원인 현대그룹과 달리 11조원 가량의 현금성 자산을 보유한 현대차그룹은 이를 활용해 현대건설을 한 단계 더 끌어올리겠다는 계획을 이미 발표했다. 자동차에 집중된 그룹 포트폴리오를 다각화, 제2의 도약을 위한 새로운 성장 축으로 삼겠다는 게 주요 내용이다.
2009년 자동차 생산기준 세계 5위 자동차 메이커인 현대차 그룹은 주력 계열사들이 대부분 자동차 제조와 관련 있는 기업들이다. 그러다보니 그룹의 성과가 자동차산업의 부침에 따라 좌우되고 있다.
특히 전 세계 자동차 생산능력 과잉(생산능력 9000만대, 수요 6000만대)과 각종 안전규제 강화, 소비자 영향력 증대로 인해 최근 자동차 산업의 변동성이 높아지고 있다.
자동차산업에 부정적인 유가상승 역시 국내 건설산업에서는 중동 지역의 오일머니 축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건설업은 자동차 산업의 변동성을 완화시켜줄 최적의 대안인 셈이다.
전 세계적 추세인 녹색성장 분야에서도 현대건설 인수로 에코 벨류 체인(ECO VALUE CHAIN, 친환경 가치사슬)을 완성해 그룹의 새로운 이미지를 갖춘다는 전략이다.
구체적으로 보면 친환경 전기차와 고속철도사업으로 온실가스를 최소화하고, 고품질 철강제품을 생산하는 철강산업의 친환경화와 건설분야(친환경 빌딩, 원전 사업 등) 확보로 에코 벨류 체인을 형성할 수 있게 된다.
특히 E&C(엔지니어링&건설) 사업의 진입은 또 다른 신성장사업(담수플랜트, 해외자원개발 등)의 플랫폼 역할을 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현대건설 인수 후 글로벌 선도업체로 육성시켜 국가의 위상을 높이고 국부창출과 고용창출에 기여할 것이라고 자신하고 있다. 벡텔 같은 세계적인 건설기업으로 키우겠다는 것이다.
◇현대건설 매력 포인트는 ‘성장성’
현대건설은 사실 대한민국 경제부흥의 상징인 경부고속도로와 국내 첫 원전 수출 등 ‘대한민국의 건설역사’와 궤를 같이 하고 있다. 최근 기업 경영환경 불확실성이 늘고 있는 상황에서 현대건설의 ‘성장성’이 무게를 갖는 이유다.
현대건설은 워크아웃 이후 2005년을 기점으로 급속하게 성장해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다른 업체의 두 배인 최근 5년간 매년 20% 이상의 성장률을 기록하며 국내 1위를 고수하고 있다.
전 세계 순위에서도 2007년 59위에서 2009년 23위로 껑충 뛰어 올랐다. 올해는 단일 기업으로 해외수주 100억 달러를 기록했다.
더욱이 현대건설은 토목사업 뿐 아니라 세계 시장에서 성장성이 예견되고 있는 플랜트 분야에 있어서도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해외 원전플랜트 수주는 물론 오일&가스 등 에너지 관련 플랜트도 다양한 경험과 실적을 보유하고 있다.
최근 사업의 약 50%가 플랜트로 채워질 만큼 시장흐름을 잘 반영하고 있다. 하지만 그동안 현대건설은 워크아웃 이후 자금이 소요되는 대규모 개발사업 추진에 소극적이었다. 글로벌 인재영입 등을 통한 성장, M&A에서도 타사만큼 원활하지 못했다.
제약적 상황에서 자력으로 기술력을 쌓으며 성장했지만 고부가가치 엔지니어링 기술력 부족, 중동에 편향된 해외 수주 등 해결 과제가 남아 있다.
현대차그룹은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구축할 수 있는 비즈니스 파트너로서 적절한 역할을 할 것이라 자신하고 있다.
풍부한 자금력으로 지속적이고 공격적인 투자(사업 및 인재)와 글로벌 경영노하우(해외 수주 가속화 및 이익극대화) 등 다양한 성장의 토대를 마련하게 된다는 것이다.
◇‘친환경 사업’ 최적의 파트너
현대차그룹의 미래 사업전략의 키워드는 ‘친환경사업’이다. 건설과 기존사업과의 시너지 창출을 통해 미래 친환경 사업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다는 의의가 있다.
대표적 사례가 교통, 건설, 산업 분야가 총 망라된 스마트 시티(Smart City) 다. 스마트 시티는 그린주택·빌딩, 친환경 교통수단, 친환경 플랜트, 스마트 그리드(지능형 전력망) 등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미래 스마트 시티에서는 현재와 같이 교통수단, 건물 등이 별개가 아니라 하나로 통합돼 최적화된다.
이미 미래 교통시스템과 관련된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현대차그룹은 현대건설을 인수해 새로운 사업영역 개척을 추진할 계획이다.
또한 현대건설은 시공 위주가 아닌 시스템 전체에 대한 종합 엔지니어링 기업으로 전환할 수 있게 된다.
또 세계 150여 국가에 8000여 곳의 글로벌 생산 설비와 판매거점을 확보하고 있는 현대차그룹의 해외 네트워크를 활용할 수 있게 된다. 이는 선진국 시장뿐만 아니라 아프리카, 중남미 등 신흥시장 공략을 강화할 수 있게 된다는 뜻이다.
◇M&A 핵심은 ‘지속성장’
앞서 잘 알려진대로 최근 금호그룹의 대우건설 인수 사례처럼 기업인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수 그 자체가 아니다. 인수 이후 얼마나 기업 가치를 창출해 지속적인 성장을 이룰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ADL이 1985년 이후 전 세계 M&A 딜을 분석한 결과 성공률은 15~50%였다. 실패의 가장 큰 원인 역시 인수 이후 인수기업의 경영능력으로 지적됐다.
현대차그룹의 경쟁사 대비 가장 큰 강점이 여기에 있다. 최근 10여년 간 다양한 M&A를 통해 피인수 기업을 성공적으로 탈바꿈 시킨 경험이다.
99년 기아차를 시작으로 10건 이상의 M&A를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반면 같은 기간 현대그룹의 M&A 사례는 2003년 동해해운 한 건 뿐이다.
기아차 인수 당시 대규모 적자에 시달리는 법정관리 기업이었다. 국내·외 전문가들 및 자동차업계에서 경영정상화에 최소 5년 이상 걸릴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인수 1년만에 1824억원 흑자를 냈다. 지난해 기준 당기순이익은 1조4500억원에 달한다.
인수 당시 카드업계 점유율 3%로 업계 꼴찌였던 현대카드는 현재 점유율 16.9%, 업계 2위로 환골탈태했다. 2004년 인수한 현대제철은 6조2300억원을 투자해 친환경제철소로 재탄생했다. 약 17만명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지역과 국가경제 발전에 도움이 되고 있다.
최근 10년 간 연평균 10.9%의 고성장(현대그룹은 연평균 1.8% 성장)을 현대차그룹이 이룰 수 있었던 것은 M&A를 성공으로 이끈 경영능력에서 찾을 수 있다.
이번 현대건설 인수 자금도 내부에서 충당할 방침이다. 이미 관련 계열사의 양호한 재무실적을 바탕으로 M&A 및 신규 투자 확대를 위한 11조원의 현금성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전략적 투자자 또는 재무적 투자자 참여로 인한 과도한 경영권 및 수익률 요구 부담이 전혀 없다.
이른바 ‘승자의 저주’에 빠지지 않고 현대건설을 그룹의 새로운 성장축으로 육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외부자금 유치가 불가피한 현대그룹과도 차별화되는 부분이다.
또 하나 글로벌사업이나 글로벌기업을 보유하고 있지 않는 경쟁사와 달리 글로벌사업에 기반을 두고, 글로벌 기업을 보유하고 있는 현대차그룹과의 변별성이다.
글로벌기업 도약을 목표로 하는 현대건설에게 글로벌기업 배출경험, 글로벌 인맥 및 네트워크, 글로벌 경영 노하우는 필수요소이기 때문이다.
현대건설 인수와 관련된 업계 관계자는 “현대차그룹의 경우 향후 신성장 동력으로 현대건설을 전략적으로 키우려는 뜻과 계획이 구체적이지만, 감정에 호소하는 현대그룹은 아직 제대로 된 성장 계획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며 “M&A에서는 인수의지도 중요하나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구체적인 경영 계획과 안정적인 자금력이 승부를 가른다”고 말했다.
김훈기 기자 bom@newsis.com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