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머에 속 앓는 기업
루머에 속 앓는 기업
  • 이범희 기자
  • 입력 2010-10-19 11:32
  • 승인 2010.10.19 11:32
  • 호수 860
  • 24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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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땐 굴뚝에도 연기나더라”
“XX건설이 부도난다”, “OO증권사가 □□금융사로 인수된다”, “문어발 M&A에 △△그룹 유동성 위기”.

일부 기업들이 이같은 루머로 속앓이를 하고 있다. 특히 미국발 금융위기가 본격화됐던 시기에는 해당 기업 CEO들이 루머에 대해 해명하느라 바쁜 날을 보내야 했다. 기업들을 시달리게 만든 루머 중 어느 정도 사실로 판명된 것도 있었지만, 사실무근인 루머들이 더 많았다. 부도설에 휩싸인 기업들은 소문의 진원을 찾아 달라고 검찰에 수사의뢰를 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몇 년 전에 발생한 일이 최근에 나온 것처럼 포장돼 기업 이미지를 훼손시키기도 했다. 한 금융사는 뜬금없는 매각설에 어이없다는 반응을 나타내기도 했다. 경제와 기업을 울렸던, 루머의 실체 속으로 들어가 보자.


루머 [1] 특정종교 인수설

최근 루머로 인해 법정공방까지 벌였던 기업으로는 SPC그룹을 꼽을 수 있다. SPC는 파리바게트와 던킨도너츠 등 제빵업계에서 이름을 알린 업체다. 인기리에 종영된 ‘제빵왕 김탁구’의 팔봉선생이 SPC그룹 허영인 회장을 롤모델로 했을 정도로 소비자들에겐 친숙한 기업이다. 하지만 특정종교 인수설이 번지면서 이미지 타격 논란이 일었다.

내부 업무가 마비될 정도로 문의전화가 속출했고, 특정종교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으로 매출이 하락하는 문제가 발생했다. 일부 소비자들이 특정종교를 이단으로 단정 지어 불편한 속내를 표출한 것.

SPC관계자는 “2000년부터 특정종교와 연루됐다는 루머가 있었다. 처음에는 크게 신경쓰지 않았는데 확대·재생산되면서 피해가 속출했다”며 “루머 유포자에 대한 검찰 수사를 의뢰한 상태”라고 말했다.

초·중등 영어전문 교육기업인 ㈜아발론 교육도 특정종교에서 세운 모국제중고등학교 입학을 목적으로 특별반을 개설했다며 특정 종교와 관련된 기업이라는 소문에 시달렸다.

동서식품도 같은 유언비어 때문에 피해를 입었다. 2008년 동서식품이 특정종교 관련된 기업이라는 내용이 급속도로 퍼졌었다. 단지 특정종교가 운영하는 업체와 이름이 비슷한 사업을 진행했다는 것이 문제가 된 것이다.


루머 [2] 외국자본 유입설

하이트 진로 그룹도 일본자본설 유입 루머로 인해 곤욕을 치렀다.

2005년 초 진로가 하이트에 인수될 때 “일본자본으로 넘어간다”는 루머가 싹트기 시작했다. 2008년에는 진로의 ‘J’소주가 ‘일본(Japan)’을 상징하고, 최근에는 ‘참이슬 소주 라벨의 붉은 원은 일장기다’까지 번졌다.

롯데도 마찬가지다. 롯데는 2008년 ‘국산 쇠고기 광우병 파동’ 때, “제2롯데월드 허가를 받기 위해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총대를 메고 나섰다”는 루머에 휩싸였다. 이 루머들 역시 급속도로 퍼져 그룹 가치는 물론 수익이 떨어지는 결과를 초래했다.


루머 [3] 유동성 악화설

재계의 또 다른 유머는 ‘유동성 악화설’이다. 특히 건설업계에 주로 퍼진다. 부동산 경기침체로 인해 부도가 나는 업체들이 늘어나는 과정에서 이 같은 루머가 퍼져 불편함을 호소한다.

대표적인 기업이 GS건설과 대림산업이다. 부도설로 인해 주가가 하향곡선을 그렸다.

GS건설은 “미분양 사태를 감당하지 못하고 곧 부도날 것”이라는 루머로 곤욕을 치렀다. 당시 GS건설 주가는 1/3토막 나버렸다.

대림산업은 “미분양 과잉으로 유동성 악화가 우려된다”는 루머에 시달렸다. 이에 앞선 지난해 11월에는 “대림산업이 화의를 신청했다”는 루머까지 나돌았다. 결국 1주당 6만 원대였던 주가가 루머로 인해 지난 3만1000원으로 반토막 나는 굴욕을 당했다.


루머 [4] 매각설

현재 진행중인 루머들도 있다.

하나금융지주와 미래에셋금융그룹은 여전히 매각설에 휘말리고 있다. “하나은행의 자본이 부족해질 경우 하나대투증권을 매각할 것”이라는 루머가 떠돌왔다.

김지완 하나대투증권 사장은 “매각설은 전혀 근거 없는 루머”라며 부인하고 있다.

김승유 하나금융지주 회장도 일부 언론을 통해 “하나대투증권과 하나IB증권을 통합하는 작업이 한창인데 매물로 내놓을 수 있겠는가”라며 “언론에서 언급된 증권사와 접촉한 적도 없다”고 일축했다.

하지만 여전히 M&A업계 관계자들은 하나대투증권을 언제나 나올 수 있는 매물로 보고 있다. 한 사모펀드 관계자는 “하나은행이 부실을 털어내지 못하고 수익성이 악화될 경우에는 어쩔 수 없이 매각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래에셋금융그룹에 관련된 매각설도 시장에서 솔솔 풍긴다. 자사 펀드가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 투자자들이 소송을 내고 있어, 보험 계열사를 매각하는 것 아니냐는 루머이다. 미래에셋생명 본사 사옥을 매각하는 것과 동시에 나온 것이라 신빙성은 그리 많지 않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의견이다.

한편 현실성 없는 악성 루머는 전문가들과 해당 기업의 적극적인 대응에도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일부기업들은 사이버수사대에 수사를 의뢰하기도 한다. 법정다툼을 통해서라도 문제의 심각성을 깨우치게 하기 위함이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유동성 위기설, 유상증자 등 근거없는 루머가 퍼지고 있고 이로 인해 주가가 급락, 투자자들의 피해는 물론 회사에도 직간접적인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며 “그동안 루머차단을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주주들의 피해 방지를 위해서라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어 경찰 수사 의뢰 등 다각적으로 대응하는 기업들이 많다”고 밝혔다.

[이범희 기자] skycros@dailypot.co.kr


#죽어도 ‘루머’라더니 ‘사실’도 많네

공격적인 M&A를 진행했던 그룹들이라면 한 번 정도는 루머에 휩싸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그동안 공격적인 M&A로 유명했지만 올해는 금융위기로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다. 유동성 위기설이 처음으로 나왔던 것은 금호아시아나그룹이다. 올 초 고유가로 인한 아시아나항공의 적자와 대우건설의 미분양 직격탄을 맞기 시작하고 대한통운까지 인수하자 유동성 위기설과 금호생명 매각설이 함께 흘러나왔다.

또 대우건설, 금호타이어의 풋백옵션(매도 선택권) 문제까지 겹치고 ‘직원 이탈설’, ‘세무조사 괴담’까지 나돌아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사면초가 상태였다. 내년 3~4월에 실시할 대한통운 주식의 65% 유상감자만이 금호아시아나그룹의 희망이었다. 9월 미국발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금호아시아나그룹은 내년 3월까지 기다릴 수 없게 됐다. 유동성을 즉시 확보해야 했기 때문에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서둘러 금호생명을 매각하겠다고 나설 수밖에 없었다.

이범희 기자 skycros@da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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