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他 대권주자들과 차별화…시정 해결능력 보여야"
박원순, 경제 올인 계획…어떤 결과 나올지 주목
박원순계, 내년 총선 공천 얼마나 받을지도 관건

[일요서울ㅣ장휘경 기자] 박원순 서울시장에게 2019년은 정치적 명운이 걸린 한 해라고 할 수 있다. 오는 2020년 총선거 등 향후 정치일정 등을 감안하면 박 시장이 대권을 바라보는 여권내 여러 잠룡들 중 한사람에 불과할지, 아니면 유력 대권주자로 입지를 확실하게 굳힐 수 있을지가 판가름나는 한해가 될 가능성이 높다.
박 시장이 여권내 대선후보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무엇보다 올해 서울시정에서 눈에 띄는 성과를 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성공한 행정가'라는 평가를 바탕으로 '대권 가능성이 보이는 정치인'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선 지난 2011년 10월 재보궐 선거 당시 수염이 덥수룩한 모습으로 안철수 전 대표와 포옹했던 때의 신선한 충격을 줄 수 있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2018년, 상고하저 롤러코스터 탔던 박원순
박 시장에게 지난해는 그야말로 영욕의 시기였다.
초반은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박 시장은 지난해 6월 시장 선거에서 역대 최초 3선 서울시장에 당선되며 정치인으로서 전인미답의 경지에 올랐다. 박 시장 본인이 야전사령관 역할을 수행했던 구청장·시의원·구의원 선거에서도 소속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지방선거 역사에서 손에 꼽을 정도의 압승을 거뒀다.
이어 박 시장은 폭염의 기세가 대단했던 여름에는 서울의 대표적인 낙후지역인 강북구 삼양동 현지에서 약 1개월간 살며 현장행정의 본보기가 됐다. 삼양동 옥탑방 생활을 통해 발표된 강남북 균형발전 계획은 보수야당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다수 서울시민의 호응을 얻었다.
이 과정에서 박 시장은 여권내 대권주자들 중 지지율 1위를 상당기간 유지하는 등 순풍을 탔다.
그러나 박 시장이 7월 싱가포르 출장길에 한 발언이 문제가 됐다. "여의도를 통으로 개발해 뉴욕 맨해튼에 버금가는 곳으로 만들겠다"는 박 시장의 발언이 부동산 큰손들과 부동산시장을 자극했던 것이다. 멀리 내다보는 도시계획을 통해 서울을 더 고급스럽게 만들겠다는 박 시장의 취지가 왜곡됐다. 투기수요는 박 시장의 발언을 호재로 여기며 서울 집값 급등세를 부추겼다. 결국 박 시장은 이른바 여의도·용산 마스터플랜을 보류하겠다며 백기를 들어야 했다.
이 와중에 친(親) 문재인계 인사인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과의 갈등이 불거졌다. 김 장관은 박 시장을 서울 집값 급등의 원인제공자로 사실상 지목했다. 두 사람은 서울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 해제를 놓고서도 신경전을 벌였다. 이를 계기로 더불어민주당내 친문세력과 문재인 대통령 열성 지지자들은 박 시장에 대해 물음표를 던지기 시작했다.
10월에 불거진 서울교통공사 채용비리 의혹은 결정타였다. 박 시장이 비리에 직접 연루되지 않았음에도 보수야당의 공세가 집중됐다. 서울시 공기업에서 비롯된 사건이란 점에서 박 시장은 포괄적·도의적 책임에서 벗어나기 어려웠다.
이 같이 뚜렷한 상고하저 흐름은 박 시장 지지율에 직접 반영됐다. 이낙연 국무총리 지지율이 박 시장 지지율을 넘어섰다. 친노무현계 적통인 유시민 전 의원도 현재 박 시장을 위협하고 있다.
◇2019년 "박원순만의 성과물 내놓을 때"…경제분야 주목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선 박 시장이 올해 가시적인 성과물을 내놓을 필요가 있다는 게 서울시 안팎의 중론이다.
박 시장의 성향상 시민의 눈을 사로잡는 화려하고 거대한 성과물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박 시장은 과거 청계천 복원 등 대형사업으로 대권 발판을 마련한 이명박 전 대통령식 '토건시장'을 거부해 왔다. 하드웨어보다는 소프트웨어를 중시하며 시민 삶의 변화를 이끌어내야 한다는 게 박 시장의 소신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 같은 소신으로 인해 시민들이 박 시장의 성과를 잘 체감하지 못하는 데 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1일 "일단 가시적인 업적이 미흡하지 않느냐"고 반문하면서 "이명박 전 대통령은 과거 서울시장 때 지지율이 매우 높았는데 박 시장은 현직 서울시장임에도 신기할 정도로 높지가 않다. 이슈 메이킹에 성공하지 못하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은 "서울시장은 원래 대권 0순위다. 그리고 서울시장이 대권으로 가기 위해서는 서울시 안에서의 업적이 필요하다. 이명박 전 대통령도 대통령직에 대한 평가는 높지 않았지만 청계천 복원과 버스중앙차로 시행 등 시장직에 대한 평가는 높았다"며 "이 전 대통령은 서울시 문제로 승부수를 던진 것이다. 그러므로 올해 박 시장 행보의 핵심 역시 '서울에 승부수를 던져라'이다"라고 강조했다.
배 본부장은 "박 시장 입장에서는 문 대통령 집권 3년차인 올해 다른 대권주자와 차별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시정 문제에서 해결능력을 보여준다면 문 대통령과도 차별화될 수 있다"면서 "(여권 내에서 차기 대권주자로)임종석, 이낙연, 이재명 등을 얘기하는데 결국 안정감은 박원순이라는 평을 얻을 수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박 시장과 가까운 정치권 인사들 역시 이런 지적에 동의한다.
박 시장 측근인 더불어민주당 박홍근 의원은 "올해가 3선 시장으로서 박원순표 정책과 성과를 공고히 할 수 있는 사실상 마지막 해라 여기며 역점을 둘 수밖에 없다"면서 "시정을 혁신적으로 운영해야 당으로부터 평가를 받고 서울시민으로부터 인정을 받을 수 있다. 정치적인 포석을 염두에 두기보다는 3기 시정 성과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워낙 본인이 실무에 강하다보니 서울시의 각종 정책을 다 (직접) 챙겨왔지만 앞으로는 과감하게 부시장과 국·과장에게 업무를 위임하고 본인은 반드시 직접 챙겨야할 정책 3~4개에 집중해 성과를 내야 한다"고 조언했다.
박 시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경제정책에 집중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박 시장은 신년사에서 "문재인 정부는 이러한 우리 경제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고자 소득주도성장, 혁신성장, 공정경제 등 사람중심 경제로의 패러다임 전환을 모색하고 있다"며 "그동안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망가진 경제시스템이 점차 정상화되고 활력을 찾아갈 것이라고 우리는 기대하고 있다. 정부의 이러한 노력에 서울도 적극 협력하고 상생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마곡 융복합 연구개발 단지 ▲상암 미디어시티 프로젝트 ▲홍릉 바이오·메디컬 클러스터 ▲창동 음악산업 단지 ▲개포 디지털 클러스터 ▲양재 R&CD 클러스터 ▲영동국제교류복합지구 등 서울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을 혁신성장 6대 거점별 계획을 발표했다.
박 시장은 또 창업기업 지원을 위한 1조2000억원 규모 서울미래성장펀드를 조성하고, 저소득노동자 대상 유급병가제를 도입하며, 소상공인 카드결제 수수료를 줄이기 위한 '제로페이'를 정착시키겠다고 했다.
특히 제로페이 정착 여부는 박 시장의 시정을 평가하는데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배종찬 본부장은 "제로페이는 전국에 있는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한 정책이라는 점에서 사실상 대권 이슈"라며 "야심차게 꺼내든 제로페이가 실제 들인 수고에 비해 성과가 없으면 박 시장이 타격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서울 부동산 시장 체질을 개선하는 작업도 주목할 만하다. 지난해 서울 집값 급등으로 곤욕을 치렀던 박 시장은 올해 간선도로 위 주택 등 과감한 실험을 통해 공공임대주택을 대폭 확충할 계획이다. 저렴한 공공임대주택을 서울 곳곳에 공급, 부동산 큰손에 휘둘리는 상황을 방지하겠다는 취지다.
이런 경제 정책들에 성공할 경우 박 시장과 다소 거리를 두고 있는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의 평가가 달라질 수 있다.
박홍근 의원은 "우선 문재인 정부에 최대한 헌신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가 성공해야 다음번 대권을 논하는 게 가능하다. 그게 전제"라며 "문 대통령 열혈 지지자들도 (유력주자들을 평가할 때) 문재인 정부에 대한 헌신과 뒷받침을 평가할 것이다. 그리고 문재인 정부의 가치를 이어갈 수 있을지도 판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원순계, 총선 공천 얼마나 받을지도 관건
정책적 성과가 매우 중요하긴 하지만 결국 정치는 숫자놀음이다. 아무리 개인 역량이 뛰어나도 국회와 당에서 우호세력을 확보하지 못하면 본선은 물론 당내 경선도 통과하지 못한다.
그런 점에서 박 시장 앞에 놓인 정치일정 중 가장 중요한 이벤트는 2020년 총선 공천이다. 올해 중순부터는 총선을 앞두고 국회의원 후보자 추천(공천) 방식을 둘러싼 각 정당 내 힘겨루기가 시작될 전망이다. 박 시장 역시 이 과정에서 손 놓고 있을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총선을 1년 정도 앞둔 시점부터 정당마다 공천규칙(공천룰)을 둘러싸고 주요 정치인과 계파별로 치열한 기싸움과 줄다리기가 벌어진다. 공천규칙이 어떻게 정해지느냐에 따라 여권내 계파별 분포가 달라지기 때문에 대권주자들 입장에선 이 문제에 예민하지 않을 수 없다. 공천규칙을 정하는 당내 기구에 대권주자나 당내 유력인사들의 대리인격 인사들이 포함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박 시장은 지자체장이라 중립의무 탓에 당내 공천 등에 직접 개입할 수는 없지만 사실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다. 박 시장으로선 과거의 전철을 밟고 싶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앞서 박 시장은 2016년 총선을 앞두고 당에 적극적으로 의견 개진을 하지 않았고 그 결과 박원순계 공천 학살이라는 처참한 결과를 떠안았다. 이 결과는 당내 입지 축소로 이어졌고 이는 결국 2017년 대선후보 경선 중도 포기라는 뼈아픈 결과를 낳았다. 대권도전을 염두에 두고 있는 박 시장으로선 이번 총선에는 다른 방식으로 대응해야만 할 절박함이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번에는 박 시장 직계라고 할 수 있는 인사들을 국회로 진출시키는 게 급선무다.
박 시장의 비서실장 출신인 천준호 민주당 강북갑 지역위원장을 비롯해 허영 강원도당위원장, 권오중 전 서울시 정무수석, 오성규 현 비서실장 등이 공천을 노릴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현 정무담당인 진성준 정무부시장과 박양숙 정무수석 등의 국회 입성 여부도 관심사다.
민주당 내 현역 국회의원들을 포섭하는 일 역시 박 시장이 게을리 할 수 없다.
일반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선거와 달리 당내 대선후보 경선은 투표 참가자의 최소 절반이 당원이다. 해당 지역위원회에 소속 당원은 정해져 있으며 이들 지역당원들의 표심을 좌지우지하는 것은 지역위원장직을 겸임하는 국회의원이다.
아울러 국회의원은 구청장(서울 외 지역은 시장)-시(도)의원-구(군)의원으로 이어지는 지역권력 피라미드의 정점이라 국회의원을 포섭하는 것이 곧 당원을 장악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자유투표가 가능하긴 하지만 지역당원들은 국회의원의 의중에 따라 표를 던지는 경향이 여전히 강하다. 박 시장이 국회의원 공략을 게을리 할 수 없는 이유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박 시장이 측근 국회 입성시키기, 국회의원 포섭하기 등 대권주자로서 예상되는 행보를 거부할 것이란 관측도 있다. 이른바 '박원순 스타일'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판단에서다.
실제로 박 시장은 여전히 국회 등 기존 정치권과 거리를 두며 차별화를 꾀하고 있다. 2011년 이른바 안철수 신드롬, 새정치 신드롬 속에 정치에 입문해 일약 서울시장으로 급부상한 박 시장은 아직도 자신의 정치를 기존 정치와는 다른 '어떤 것'으로 여기고 있다고 측근들은 말한다. 국회의원 세비 인상 등 문제를 거론하며 기존 정치문법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박 시장에 대해선 측근들 사이에서도 평가가 엇갈린다. 박 시장이 박원순계를 이끄는 수장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의견과 박 시장이 정치공학을 거부하고 정치적 순수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서로 팽팽한 것이다.
박 시장의 보다 적극적 행보를 기대하는 한 측근 인사는 "박 시장이 일정 정도 위상이라든가 그런 부분들을 유지해야 시장과 가까운 사람들의 경력이 당에 어필이 된다"며 "총선에 나가려는 사람들은 각자 움직이긴 하겠지만 시장은 어느 정도 계속 자기 위치를 다져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다른 관계자는 "계보 정치의 시대는 지났다. 각자 정치적 친소관계가 어떻든 훌륭한 자원이 공천을 받을 수밖에 없고 대중적 지지나 당 기반이 탄탄한 사람들이 당의 공천을 받을 수밖에 없다"며 "당내 패권을 쥐고 있는 사람과의 인연으로 공천 받는 시기는 지났다고 본다"고 말했다.
박홍근 의원도 "박원순계로 불리는 사람들이 공천을 받아서 국회로 진입하는 것은 옛날 접근 방식이다. 공천으로 자기 사람을 심는 것은 얕은 수"라며 "지금은 의원이든 지역위원장이든 시대정신과 당선가능성, 실력, 비전을 판단해 거기에 맞는 사람을 돕는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기동민 의원 역시 "여의도(국회)는 당신(박 시장)이 잘 하면 따라가는 구조지 (박원순계 국회 진입)그런 거 필요없다"며 "(박 시장은) 여의도 쳐다보지 마시고 대중이 가장 원하는 민생경제에 집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박 시장은 당분간 더불어민주당 내 국회의원 등 주요인사들과 접촉면을 넓히며 후일을 도모할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지지율의 변동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게 측근들의 설명이다.
박홍근 의원은 "시장이 시민사회에서 시작해 3기 시정까지 관계는 넓혀왔는데 이제 깊이를 더해야 한다"며 "박 시장의 진가나 실력, 진정성, 가치, 혁신마인드를 제대로 인정하고 박 시장과 뜻을 같이하는 사람을 만나 관계의 깊이를 더하고 교감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지지율에 일희일비해선 안 된다. 국민은 선거가 다가올수록 총체적이고 종합적인 판단을 내린다. 선거 6개월 전에도 요동치는 게 선거판"이라며 "지지율 때문에 조급해져서 튀는 행동을 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 소명의식을 갖고 시정에 집중하며 어떻게 문재인정부에 헌신하고 뒷받침할지 고민하고 어떻게 하면 시정을 통해 진일보한 성과를 낼지를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휘경 기자 hwikj@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