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에 따르면 조 전회장은 99년 4월 한솔텔레콤이 보유한 한솔엠닷컴 주식 588만주에 대한 신주인수권을 주당 200원씩 총 11억8,000만원에 인수한 혐의를 받고 있다. 조 전부회장은 또 같은 해 10월 신주인수권을 주당 7,000원씩 400여억원에 행사한 뒤, 2000년 6월 KT에 주식을 매각, 1,909억원의 전매차익을 챙긴 혐의도 받고있다. 이와 함께 검찰은 구속사유가 됐던 조세포탈 혐의에 대해선 보강 조사를 통해 혐의 유무를 가릴 방침이다. 그러나 이번 검찰 수사에 있어 최대 관심사는 조 전 회장의 혐의사실 유무가 아니다. 오히려 검찰이 수사를 착수하게 된 배경과 감춰진 수사의 목적이 최대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는 것. 검찰은 수사 초기 조 전부회장의 탈세와 특경가법상 배임 혐의를 밝히는데 초점을 맞추는 듯 보였다.
그러나 최근 수사는 정치자금 리스트, 이른바 ‘한솔게이트’쪽으로 방향이 맞춰진 상태다. 현철씨의 20억원 비자금을 구실로 수사 방향을 슬쩍 틀어버렸다는 의혹을 사고 있는 것. 실제 정치권 일각에선 “애초부터 예정돼 있던 각본”이라는 주장까지 제기되고 있다. 실제 조 전 부회장은 지난 97년 ‘김현철 비자금 사건’ 때도 이웅렬 코오롱 회장과 함께 검찰의 조사를 받은 바 있다. 그러나 현철씨가 구속되면서 조 전회장에 대한 수사는 흐지부지 끝나고 말았다. 또 지난 2000년 10월 국정감사와 2002년 4월 임시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한나라당은 “한국통신의 한솔 M.com 인수 과정에 정권 실세의 개입 의혹이 있다”며 강력히 문제를 제기했지만, 당시 검찰은 물론 감사원 등 어떠한 기관도 이 사건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지 않았다.
따라서 지난 8월 조 전부회장에 대한 검찰의 재조사가 이루어지자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번 사건에 대한 정확한 규명을 위해서는 DJ와 그 실세들에 대한 조사가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는 주장을 제기하기도 했다. 또 통신업계에서는 지난 2000년 KT가 한솔 M.com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DJ정권의 실세 A씨가 개입돼 있다는 소문은 공공연한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KT가 한솔 M.com의 주식을 인수한 내막을 들여다보면 이 의혹은 더욱 짙어진다. KT는 지난 2000년 한솔 M.com을 인수하면서 시세보다 2배 이상 높은 가격에 인수한 것으로 알려졌다.정보통신부에 따르면 지난 2000년 한솔M.com의 지분 구조는 캐나다 통신회사인 BCI가 지분 20.97%로 1대 주주, 미국계 금융회사인 AIG가 지분 13.98%로 2대 주주, 한솔제지와 조 전부회장 등 한솔그룹 측이 12.9%로 3대 주주였다.BCI와 AIG는 지난 98년 9월부터 99년 10월까지 장외거래를 통해 한솔 측으로부터 지분을 인수했는데, 당시 이 주식의 장외 거래 가격은 3만3,000원 정도였다.
하지만 이들이 한솔로부터 사들인 가격은 주당 7,569원에 불과했다. 시세의 1/4 정도에 지분을 인수한 셈이다. 주주들은 시세보다 훨씬 싼 값에 주식을 매입한 뒤 팔 때는 시세보다 두 배 이상 비싼 값에 팔았다는 결론이다. 한국통신은 주식 인수 대금으로 현금 7,357억원과 어음 7,370억원, 그리고 한통이 보유하고 있던 SKT 주식 294만3,000주을 지급했다. SKT주식은 주식 인수 대금이 완결된 2000년 7월 25일자 종가 기준으로 정산됐다.이 대금은 다시 대주주 지분 비율에 따라 BCI에 1조569억원, AIG에 7,045억원, 한솔 측에 7,298억원이 각각 지급됐다. BCI와 AIG의 투자금은 모두 4,146억원으로 이들 두 회사는 투자 개시 1년여 사이에 1조3,000여억원의 시세 차익을 챙겼다.
이를 두고 통신 업계에서는 “BCI와 AIG의 투자 초기단계부터 한국통신에 매각하기 전 과정에 당시 정권 실세 A씨가 개입됐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또 “한솔 M.com의 주식 매입·매각 과정에 A씨가 개입해 100억원대 이상의 정치 자금이 오갔다”는 소문도 파다했다. 한편 정권실세가 개입됐다는 의혹을 제기하기에 앞서 우선 주목해야 할 부분이 있다. 그것은 다름아닌 김대중(DJ) 전대통령과 한솔 M.com의 1대 주주인 BCI의 데릭버니 회장과의 특별한 인연. 두 사람의 인연은 왜 정권의 실세가 개입됐다는 의혹이 제기됐는지 그 이유를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데릭버니 회장은 지난 78년부터 80년 사이에 주한 캐나다 대사를 지내며 80년 서울의 봄 당시 신군부에 의해 사형선고를 받았던 DJ의 구명에 적극 앞장선 인물이다. 그는 90년대 후반 캐나다 통신회사인 BCI 회장으로 취임했다.
이후 DJ가 대통령에 취임한 직후인 98년 4월, 그는 청와대에서 DJ를 만났다. 이 만남에는 조 전부회장이 배석했다는 것과 데릭버니 회장이 한국에 투자 의사를 밝혔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외관상 외자유치가 일대 과제였던 당시 데릭버니 회장이 투자 의사를 밝힌 것은 외자유치 실적을 쌓기 위해 전전긍긍하던 DJ를 두 번 구해주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재계에선 데릭버니 회장이 ‘특별한 관계’를 내세워 모종의 청탁을 한 것이라는 시각이 우세했다. 일각에선 DJ가 공기업인 한국통신을 이용, 데릭버니 회장에게 DJ가 ‘선물’을 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실례로 당시 한 외신은 “김대중 대통령이 데릭버니 회장에게 보은을 베풀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한편 이번 사건과 관련해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색다른 분석을 내놓았다.
이 관계자는 “검찰과 정부간에 시작될 파워게임의 전초전을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다”며 “따라서 그간의 상황으로 비춰 볼 때 이번 사건도 본격화되기보다 양자간의 협의가 이뤄지면 다시 흐지부지될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조심스럽게 밝혔다. 이번 수사의 초점은 검찰 개혁을 둘러싼 파워게임이라는 게 이 관계자의 주장.실제로 정부는 그간 검찰 개혁과 함께 영향력을 축소하려는 움직임을 보여왔다. 그러나 강금실 전법무부장관이 검찰 장악에 실패하는 등 고전을 면치 못한 것이 사실이다. 게다가 현재는 국가보안법 존폐 여부를 놓고 사법부와 미묘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상황이다. 때문에 정부와 검찰간의 ‘보이지 않는 줄다리기’는 ‘보이는 줄다리기’로 점차 그 양상이 변해 가고 있다고 관측된다는 것이다.
윤지환 jjd@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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