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압작전 ‘우발적’ 사실인가
진압작전 ‘우발적’ 사실인가
  • 윤지환 
  • 입력 2004-09-13 09:00
  • 승인 2004.09.13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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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2년 모스크바 오페라극장 인질 참사의 끔찍한 잔상이 채 가시기도 전에 다시 최악의 인질 테러가 러시아에서 발생, 전세계가 충격에 휩싸이고 있다. 이번 러시아의 북오세티야 공화국 참사는 인질의 수 700여명, 사망자 300여명 정도였던 오페라극장 인질 참사보다 규모가 훨씬 커 그 충격을 더하고 있다.이번 사건의 인질 수는 무려 1,500여명에 달하고 사망 및 부상자 수가 1,000여명에 이르는 것으로 드러나 사상 최악의 인질극으로 기록될 전망이다. 또 테러 전문가들은 이번 사건이 그동안 테러리스트들의 주요 표적에서 예외로 여겨졌던 어린이와 학교를 대상으로 발생했다는 점에서 최악중의 최악이라고 평하고 있다. 최악으로 평가되는 부분은 진압작전도 마찬가지였다. 세계 언론들은 인질은 안중에도 없고 테러에 대한 응징만 생각한 채 무리한 진압작전을 감행, 수많은 어린 생명을 죽게 했다며 러시아 당국을 맹비난하고 있다. 이에 러시아 정부는 적극 해명에 나섰지만 이번 사태에서 남는 의문은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의문 1 우발적 진압작전?

우선 러시아 정부는 유혈 진압이 우발적 상황에서 비롯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건이 발생하자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험난한 협상과정을 각오하고 있다”며 인질범들과 적극적으로 협상해 인질들을 구출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이러한 당국이 왜 돌연 무력진압에 나섰을까.러시아가 대외적으로는 인질의 안전에 무게를 두고 있는 것처럼 하면서 실제로는 무력진압을 통해 사태를 해결한다는 이중전략을 취했을 가능성이다.러시아 당국은 “작전은 전혀 계획된 것이 아니었으며 현장을 빠져 나오려던 일부 인질을 보호하려던 과정에서 우발적으로 촉발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현지 소식통에 의하면 이번 사건의 시발은 시신 인도과정에서 인질범들의 선제 공격에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외신을 비롯한 다른 러시아 언론들도 여기에는 아무런 의문을 제기하지 않고 있다.이번 진압작전은 반군들의 의도된 탈출 작전에서 비롯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러시아 최대 언론 프라브다에 따르면 인질범들은 시신이 인도돼 나가는 순간을 틈타 도망치던 아이들의 등을 향해 무차별 총격을 퍼부었고, 진압부대는 인질 구출을 위해 인질범들을 향해 응사했다. 이어 체육관 두 곳의 농구대에 설치됐던 TNT 10㎏의 폭발물을 폭파시킨 것으로 전해졌는데, 이로 인해 일대 혼란이 빚어졌다. 즉, 이때 폭발에 놀란 인질들이 밖으로 뛰쳐나오자 테러범들은 이 틈을 타 탈출작전을 펼쳤을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것이다. 학교 지붕이 날아갈 정도의 대규모 폭발이 결과적으로 인질범들의 도주를 도운 셈이다. 때문에 이것에 대해 누가 먼저 폭탄을 터뜨렸는가를 놓고 의견이 분분하다.

의문 2 무모한 진압작전 편 이유

러시아는 왜 강경진압을 선호할까?러시아는 구 소련으로부터 떨어져 나간 독립국가 연합들에 둘러싸여 있다. 이들은 대부분 이슬람 국가로 현재 절대적으로 러시아의 영향권에 속해 있다. 때문에 이들이 러시아의 영향권에서 벗어나고 봉기를 할 경우 러시아는 테러 천국이 될 수밖에 없다. 때문에 테러사태에 대해 유화적으로 대처할 경우 테러가 더욱 빈발할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푸틴의 이러한 강경대응을 두고 정치적 계산이 깔린 노림수라고 보고있다. 체첸의 잔혹한 테러를 세계적으로 부각시켜 체첸 사태를 정당화 하려 한다는 것이다. 즉, 테러로 인한 민간인 사상자가 많아질수록 유리하다는 계산이다.

의문 3 인질극의 배후는?
인질극 배후가 체첸 반군지도자 샤밀 바사예프로 드러남에 따라 그의 면모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이번 인질사태는 악명 높은 체첸 반군지도자 바사예프가 배후에서 지휘했다고 러시아 이타르타스 통신이 지난 4일 보도했다. 체첸 반군의 강경파인 바사예프는 러시아의 공적 1호로 지목돼 있는 인물이다. 그는 체첸 독립을 위해서는 무장투쟁과 테러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국제 이슬람 테러조직 알카에다 지도자 오사마 빈 라덴과도 친분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졌다.

바사예프는 러시아군 진압과정에서 170명이 숨진 2002년 10월 모스크바 오페라 극장 인질극을 배후 조종한 것으로 유명하다. 바사예프 진영은 마약밀매를 통해 상당한 투쟁자금을 축적했으며, 러시아 침공이 시작되면 산악지대를 배경으로 게릴라전을 전개한다는 투쟁계획을 세워 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인질범들이 분리독립을 주장하는 체첸반군들인지, 이들 외 다른 무장세력이 연계돼 있는지도 오리무중이다.인질범 소속이나 배후에 대해서도 논란이 적지 않다. 일단 체첸반군이 범행을 주도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나 연방 보안국은 범인의 상당수가 아랍국가 출신‘용병들’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의문 4 사망자에 대한 진실

1,500여명에 달했던 인질을 사건 초기 300여 명으로 축소해 발표한 이유는 규명돼야 할 의문점들 중 하나다.외신들은 진압과정을 보도하는 러시아 언론들의 보도태도는 이해하기 힘든 면이 많다고 지적했다.국가 비상사태에 준하는 사건이 터졌음에도 러시아 방송들은 정규 프로그램을 방영하면서 중간중간 속보형식으로 보도하는 데 그쳤고 진압장면도 제대로 보도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러시아 최대 민영방송 NTV의 한 관계자는 “사태에 대한 정확한 내용, 특히 사망자 수에 대한 보도를 자제하라는 통보를 받았다”고 말해 정부의 압력이 있었음을 시사했다. 이는 지난 2002년 모스크바 극장 인질사건 때와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런 은폐 덕인지 러시아 내에서는 푸틴의 강경책을 지지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그러나 이즈베스티야는 계속되는 테러로 푸틴은 최악의 정치적 위기를 맞고 있다고 분석했다.

윤지환  jjd@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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