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임·횡령 기업부정 감추기 ‘급급’
연휴를 앞두고 슬그머니 악재성 공시를 내는 ‘올빼미 공시’가 이번 추석에도 어김없이 기승을 부려 논란이 되고 있다. ‘올빼미 공시’는 장 마감 후나 주말을 이용해 기업에 불리한 내용을 공시하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2006년 금융감독원이 야간과 주말 공시를 폐지하면서 많이 줄었지만 여전히 연휴 전날 되풀이 되고 있다. 이들 대부분의 기업들은 배임·횡령이나 자본 감소, 대규모 공급계약 해지 등 자사 주가에 부정적인 내용이 발생했을 경우 주가 악영향을 조금이라도 희석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연휴 기간을 노려 공시를 한다. 때문에 이를 숙지하지 못한 투자자들의 피해가 극심하다. 일각에선 솜방망이 처벌이 문제라는 지적이다. 끊임없이 지속되는 악행(?)에 대한 정부차원의 규제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실제로 지난해 추석 연휴 전날에도 장 마감 시간을 넘겨 악재성 공시가 쏟아졌다. 유상증자 등으로 인해 주가 희석 요인이 발생하는 경우를 피하기 위해 ‘얌체 공시’를 했기 때문. 장이 열리지 않는 동안 악재를 조금이라도 희석해보겠다는 것이다.
지난 9월 20일 장 마감 후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는 자본 감자 결정이 3건이나 공시됐다.
엠엔에프씨(85원)는 보통주 20주를 동일한 액면주식 1주로 병합하는 감자를 진행키로 했다고 공시했다. 확인영어사(355원)는 10주를 1주로. 청호전자통신(95원은 30주를 1주로 변경 실시키로 했다.
확인영어사는 이날 주가가 8.7% 급등한 310원으로 마감해, 온라인 주식 커뮤니티사이트에 투자자들의 성토가 이어졌다. 투자자들은 “참으로 기가 막히는 추석 선물”(아이디 jzero), “경영진은 무슨 짓인가, 고향 가느라 아직 공시도 못 본 사람이 많을 텐데”(아이디 건들면 폭등)라며 불쾌감을 쏟아냈다.
또 공급계약이 축소된 사실을 장 마감 후 공시한 회사도 있다. 희림 종합건축사사무소는 하노이텔레콤과의 본사 등 건축설계 용역계약액이 71억 원에서 41억 원으로 줄었다고 밝혔다.
또 웰스브릿지는 20억 원의 사채 상환청구에 대한 지급을 유예했다고 공시했고 벽산건설은 단기 차입금이 증가했음을 장 마감 이후 알렸다.
계열사에 대한 담보제공이나 사업 연기 등 악재성 재료를 슬그머니 밝힌 곳도 있다. 한국정보통신은 계열사인 한국정보통신서비스에 대한 50억 원 규모의 담보 제공을 실시한다는 것을 오후4시가 넘어서야 공시했고 로아코직도 금전대여를 결정했다.
단골손님인 소송 관련 공시도 빠지지 않았다. 올리브나인은 KT뮤직에 대한 채무로 인해 13억 원 규모 채권이 압류됐다고 밝혔다.
솜방망이 처벌 논란… “정부차원 제재 있어야”
금융감독원이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2006년 공시서류 제출 시한을 종전 오후 9시에서 오후 7시로 앞당기고 토요일 공시도 폐지했지만 올빼미공시는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다.
한국거래소 관계자는 “오후 6시까지 시간 외 단일가 매매가 가능한 만큼 투자자들은 한국거래소 홈페이지나 금감원 전자공시시스템을 활용해 올빼미 공시를 끝까지 주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솜방망이 처벌을 지적하기도 한다. 실제 지난해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신학용 의원(민주당)은 “이처럼 코스닥 시장에서 기업들이 손쉽게 공시를 번복하거나 불이행하는 하는 이유는 2006년 기업 부담 완화 차원에서 처벌 규정을 완화했기 때문”이라며 “기존 제도에 따르면 2년간 3번 불성실 공시 법인에 지정될 경우 상장을 폐지시킬 수도 있었지만 제도 변경 후에는 관리종목으로 지정하는 것이 고작이어서 제재의 실효성이 부족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그 뿐 아니라 불성실 공시에 포함되지는 않았지만, 공시마감 시간인 6시를 넘겨 발표하는 이른바 ‘올빼미 공시’도 개미 투자자들의 원성을 사고 있는데, 거래소는 공시규정 위반이 아니라며 뒷짐 지고 있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신 의원은 이어 “솜방망이 제재는 결국 신뢰 저하로 이어져 코스닥 발전에도 도움이 안 된다”며 “거래소는 회원사 편의 중심에서 벗어나 투자자 편의 중심으로 공시규정을 강화하고, 상습 공시위반 기업 퇴출제를 부활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제부]
경제부 기자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