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특집-①] 끊이지 않는 ‘직장 내 갑질’···‘괴롭힘 방지법’ 국회 통과
[신년특집-①] 끊이지 않는 ‘직장 내 갑질’···‘괴롭힘 방지법’ 국회 통과
  • 조택영 기자
  • 입력 2018-12-28 00:35
  • 승인 2018.12.28 08: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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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언‧성희롱‧잡일강요 없어질까...
지난 10월 19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열린 직장 내 갑질 금지법 국회 조속 통과 촉구(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 통과) 기자회견에서 직장 내에서 괴롭힘을 당한 당사자들이 그림을 그린 종이봉투를 쓰고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뉴시스]
지난 10월 19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열린 직장 내 갑질 금지법 국회 조속 통과 촉구(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 통과) 기자회견에서 직장 내에서 괴롭힘을 당한 당사자들이 그림을 그린 종이봉투를 쓰고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뉴시스]

[일요서울 | 조택영 기자] KT의 가학적 인사관리, 대한항공 사주 일가의 갑질, 한국미래기술 양진호 회장의 갑질, 송명빈 마커그룹 대표의 갑질 등 직장 내 괴롭힘 사건이 끊이지 않고 있지만 이를 처벌할 법적 대응 방안이 없었다. 유럽 등 해외에서는 이미 조례나 관련법을 만들어 직장 내 괴롭힘을 명확하게 규율하고 있으나 한국은 법 제정조차 못하고 있는 수준이었다. 국회에서는 지난 2015년부터 발의된 관련 법안들이 모두 잠자고 있었다. 그사이 갑질사례는 끊이지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지난 27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앞으로 직장 내 괴롭힘이 발생했을 때 사용자에게 피해 근로자를 보호해야 할 법적 의무가 생긴 것이다. 비판 여론에도 암묵적으로 지속됐던 직장 내 갑질이 이번 기회에 뿌리 뽑힐 수 있을지 주목된다.

시민단체 갑질 제보 하루 평균 8.25”···해외서는 조례가이드라인 통해 규율

#1. A씨가 근무하는 회사의 한 임원은 직원들의 기피대상 1호다. 자기 기분에 따라 이유 없이 트집을 잡아 직원들을 괴롭힐 뿐만 아니라 성희롱 발언도 서슴지 않기 때문이다. 서류를 집어 던지는 것은 기본이고, 얼마 전 A씨는 내가 오빠 같아서 걱정돼서 그러니 남친을 만나면 꼭 콘돔을 써라라는 말까지 들었다.

#2. B씨의 회사에 새로 부임한 대표는 직원들에게 술을 강요한다. 냉면사발에 술을 섞어서 마시거나, 짜장면을 먹고 난 그릇에 소주와 맥주를 섞어 마시도록 했다. 술자리를 거절하면 회사생활이 어떤 방식으로든 힘들어지는 것을 알기 때문에 직원들은 어쩔 수 없이 이런 자리에 꾸준히 참석하고 있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가 올해 하반기 제보된 다양한 직장 내 갑질 사례 50개를 최근 공개했다.

지난 7월부터 12월까지 6개월 동안 들어온 1403건의 이메일 제보 중 단순 임금체불이나 부당인사 등을 제외하고 폭행, 폭언, 잡일강요, 괴롭힘, 성추행 등의 사례 위주로 엄선한 것이다. 이 기간 동안 직장갑질119에는 하루 평균 8.25, 234건의 제보가 들어온 것으로 전해졌다.

이 단체에 따르면 올해 하반기의 경우 지난 2017년 이슈가 된 직장 내 장기자랑, 김장 동원 등과 관련된 사례는 2건에 불과해 크게 줄었다. 그러나 폭행, 폭언, 괴롭힘, 잡일 강요 등은 여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발표에 따르면 최근 6개월 동안에만 센터장 지인 선거운동 동원’, ‘대표 집안 쓰레기 분리수거 및 약수 배달’, ‘조합장 부인 자동차 세차’, ‘초콜릿 21만 원 강매’, ‘재고를 파악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벌금 700만 원 강요등 다양한 형태의 갑질이 발생했다.

잠자고 있던 법안들

최근 국회와 노동계에 따르면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이 지난 912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의결됐으나 법제사법위원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직장에서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해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정신정서적 고통을 줘서는 안 된다는 내용의 직장 내 괴롭힘을 정의하고, 조치사항까지 담았다. 그러나 이 법안은 법사위에서 자유한국당 일부 의원들의 반대로 제동이 걸렸다.

괴롭힘의 정의가 모호해 사업장에 혼란을 줄 수 있다는 것이 반대 이유였다. 이런 식으로 지난 2015년부터 발의된 7건 관련 법안이 모두 국회에서 잠자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직장 내 괴롭힘은 기술의 발전과 노동 방식의 변화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나타났다.

서비스형 산업 구조 확산에 따른 감정노동 종사자 증가로 고객 등으로부터 발생하는 괴롭힘이 확산됐으며, 유비쿼터스 노동(시간이나 장소에 구애 받지 않는 노동)의 확산으로 근로시간의 경계가 사라지면서 스마트기기를 이용한 상시적 업무 지시 문제 등도 괴롭힘의 한 형태로 나타났다. 또 비정규직, 사내하청, 특수형태근로종사자 등 비전형근로 확산으로 사업장 내에서 고용 형태의 차이에 따른 차별적 대우 사례들도 잇따랐다.

한국노동연구원 김근주 연구위원은 지난 1127일 국회에서 열린 정책토론회에 참석해 입법적 대응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김 연구위원은 구체적으로 근로기준법 개정을 통해 가해자에 대한 처벌 규정을 만드는 방안과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을 통해 산재 유형에 명시적으로 직장 내 괴롭힘을 포함시켜 감정노동 보호의 연장선상에서 체계적 대응을 모색하는 방안, 특별법을 통해 직장 내 괴롭힘을 범죄 행위로 규율하는 방안을 생각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다만 형사처벌 규정들에 나타난 제재 대상과 행위가 명확한 것인지, 직장 내 괴롭힘 처벌이 현실에서 작동할 것인지 등 입법적 대응에 대한 일반적 의문들이 남아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해외에서는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해 명확하게 규율을 정하고 있으며, 각국의 문화와 근로관계, 노사관계에 따라 다르게 적용하고 있다.

스웨덴의 경우 조례와 가이드라인을 통해 규율하고 있다. 스웨덴은 제도적으로는 차별평등대우 등의 인식이 높은 국가지만 직장 내에서 암묵적으로 괴롭힘 문화가 상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랫동안 단일민족국가로 유지돼 온 배경에 따라 1990년대 후반부터 이민자 증가로 차별과 관련된 사회 문제가 심각해졌다. 이에 기존 법률과 직장 내 괴롭힘 조례라는 새로운 규율방식을 마련해 직장 내 괴롭힘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영국의 경우 단일법령을 제정해 규율하고 있다. 영국에서는 스토커 관련 살해가 잇따라 발생하면서 매년 스토킹 피해자가 12만 명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에 다른 사람을 고의적으로 괴롭히는 범죄행위 및 스토킹에 대해 괴롭힘금지법’, ‘스토킹금지법을 적용하도록 하고 있으며 차별과 관련된 괴롭힘에 대해서는 평등법을 적용하고 있다.

또 고용 문제에 있어서는 고용권리법을 적용하고 직장 내 괴롭힘의 예방과 구제와 관련해서는 산업안전보건법을 적용하도록 하고 있다.

괴롭힘 방지법골자는?

결국 지난 27일 직장 내 괴롭힘을 금지하는 내용의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직장 내에서 사용자나 근로자가 업무상 우월적 지위 또는 관계를 이용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업무환경을 약화 시키는 직장 내 괴롭힘을 금지하는 것이 골자다.

직장 내 괴롭힘 발생 시 근무장소의 변경, 유급휴가 명령 등의 사용자의 조치 의무와 가해자에 대한 징계 규정, 직장 내 괴롭힘 예방 및 발생 시 조치에 관한 사항을 취업규칙에 포함시키고 입증책임 배분 규정 등도 포함된다. 직장 내 괴롭힘 등 정신적 스트레스로 인한 질병 발생 시 이를 업무상재해로 인정하는 내용의 산업재해보상보험법 개정안도 법사위를 통과했다.

이번 법안 국회 통과로 꾸준히 지적됐지만 암묵적으로 지속됐던 직장 내 갑질이 뿌리 뽑힐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법 시행 시점은 공포 후 6개월이다.

조택영 기자 cty@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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