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 | 고정현 기자] 선거제 개혁 정국의 막이 올랐다. 여야 5당은 지난 15일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적극 검토하고 선거제 개편 관련 법안을 1월 임시국회에서 합의 처리키로 했다. 하지만 각 당의 이해관계와 쟁점이 물고 물리다 보니 낙관론이 우세한 상황은 아니다. 원내 1당인 더불어민주당, 양당제 복원을 노리는 자유한국당, 다당제를 제도화하겠다는 바른미래당·민주평화당·정의당의 시각차가 뚜렷하다. 이에 일요서울은 기획특집 ‘연말정국 달구는 선거제 개혁’ 그 두 번째로 ‘양당제 복원’·‘현상유지’에 올인하고 있는 자유한국당의 속내 속으로 들어가 봤다.

- 대도시 2명 이상 선출 ‘도농복합제’ 주장하는 한국당... 속내 ‘뚜렷’
- 20대 총선, 민주 서울 35석·경기 40석, 새누리 서울 12석·경기 19석... 도농복합제라면?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위한 여야 5당의 합의에 벌써부터 파열음이 나오고 있다.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 거대 양당이 공개적으로 부정적인 목소리를 내면 서다.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 등 야 3당은 “벌써 말을 바꿨다”며 분통을 터트리고 있다.
민주당이 ‘(의원수) 10% 이내 확대 여부 등을 포함해 검토’하기로 합의한 상태지만 이는 ‘검토’일 뿐 ‘합의’한 바는 없다며 애매한 태도로 시간을 벌고 있다면 한국당은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이후 부작용을 겪은 외국의 사례를 들면서 조목조목 ‘불가론’을 펴고 있다.
의원정수 무한정 확대
‘지역구 선거제 부정’
‘정당 간 야합 가능성’
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는 20일 국회 비상대책위원회 회의에서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대한) 당내 부정적 이야기들이 많이 있다”며 “우선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채택할 경우 의원수가 무한정 계속 확대될 수 있는 위험성이 있다. 독일의 사례가 대표적”이라고 말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핵심 원칙은 국회의원 선거 결과, 정당이 확보한 전체 의석수 대비 의석비율이 당 지지율과 일치해야 한다는 점이다. 때문에 연동형 비례대표제에서는 초과의석이 발생할 위험성이 크다.
만약 한 정당이 지역구 의석을 실제 당 지지율보다 더 많이 확보한다면 ‘전체 의석수 대비 의석 비율-당 지지율’을 맞추기 위해 다른 정당의 비례대표를 늘려야 하기 때문이다. 연동형 비례대표제 채택국가인 독일은 법정 의원수가 상하 양원을 통틀어 598명임에도 지난해 선거 이후 709명까지 늘어났다.
아울러 나 원내대표는 “현행 지역구 선거제도에서 지역의 대표자를 뽑는 것은 정당 만에 대한 투표가 아니라 정당 플러스 인물에 대한 투표”라며 “(정당에 대한) 이런 부분에 표 값을 더 한다는 것은 지역 선거구 제도를 부정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도 말했다.
나아가 “알바니아의 경우 한 정당은 지역구 후보만 내고 다른 한 정당은 일부러 지역구 후보를 내지 않음으로써 다른 정당의 지역구 후보의 당선 가능성을 높이면서 비례대표의 의석을 확보하는 등 정당 간 야합도 이뤄지고 있다. 이점을 우려하며 당내 의원들이 반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 역시 한국당의 주장이 객관적인 사실에 근거한 합리적인 우려라고 평가한다. 한 전문가는 “초과의석을 억제하기 위한 정교한 제도적 장치를 만들지 않은 채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의 당위성만을 강조할 경우 국민을 설득할 수 없다”며 “대통령제를 채택하고 있는 나라에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채택하고 있는 나라는 거의 없다. 이 제도는 내각제를 채택하면서 다당제에 바탕을 둔 연립정부가 보편화된 나라에서 주로 사용된다”고 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기존의 선거 제도를 비례성과 대표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개혁하는 것에도 명분이 없지 않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심각한 불균형성을 내포하고 있는 기존의 선거 제도를 비례성과 대표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개혁하는 일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한국당이 다음 총선에서 집권당인 더불어민주당을 견제함과 동시에 제1야당이라는 지위를 유지해야 한다는 셈법 하나로 대안책도 없이 무조건 적인 반대를 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대도시 중대선거구제 전환,
한국당 전세 역전 가능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한국당은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대안으로 도농복합 선거구제 카드를 꺼내 든 모습이다. 한국당이 제시한 도농복합제의 경우 농촌은 현행 소선거구제를 유지하되 대도시는 중대선거구제로 전환하자는 게 핵심 골자다.
농촌에서는 1개 선거구제에서 1명의 의원을 선출하고 대도시에서는 선거구별로 2~3명의 의원을 선출하자는 얘기다. 정개특위 B 안을 살펴보면 인구 100만 명을 농촌과 대도시를 나누는 기준점으로 삼고 있다.
하지만 한국당의 도농복합제 주장 역시 결국엔 총선에서의 의석수 확보와 맥이 닿는다. 강세를 보이는 농촌 지역은 현행 선거구제를 두면서 대도시에서도 성과를 내보겠다는 배경에서다.
이는 지난 17~20대 총선 결과를 놓고 보면 더욱 명확해진다. 비례대표를 제외한 지역구 선거에서 민주당은 서울과 경기 등 대도시가 밀집한 지역에서 강세를 보였던 반면 한국당은 수도권에서 밀리는 양상을 경북과 경남 등에서 메꿔왔다.
20대 총선에서 민주당은 110석, 새누리당은 105석의 의석을 지역구에서 얻었는데 당시 새누리당(한국당 전신)은 서울에서 12석, 경기도에서 19석을 차지한 반면 민주당은 서울 35석, 경기도 40석을 확보했다. 반대로 새누리당은 지역 기반을 두고 있는 경북과 경남에서 각각 13석, 12석을 확보했다. 한국당이 얻은 전체 의석 중 약 25% 가까운 비중이다.
만약 도농복합제가 도입된다면 한국당은 대도시에서도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다. 대도시 선거구에서 2명 이상의 의원 선출이 가능해지면 최소한 2등은 하는 한국당에게도 유리한 구도가 그려지기 때문이다. 즉, 제1야당 지위를 방어할 발판을 마련하는 셈이다.
고정현 기자 jh0704@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