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 | 고정현 기자] 올해 정치권은 그 어느 때보다 격동의 시기를 보냈다. 6.13 지방선거, 정계개편, 미투 운동 등 수많은 이슈들이 여의도를 뜨겁게 달궜다. 숨 가쁘게 달려왔던 한 해가 기울어 가고 이제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해야 하는 시기다. 이에 일요서울은 ‘정치권 5대 뉴스’를 인물·사건 별로 선정해 한 해의 의미를 되새기고 다가올 기해년(己亥年)을 준비하고자 한다. 그 첫 번째로 ‘정치권을 뒤흔든 5인의 부침사’를 꼽아봤다. 안철수 전 의원,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 안희정 전 충남지사, 김경수 경남지사가 그 주인공이다.

- ‘쓸쓸한 퇴장’ 안철수·홍준표, ‘마지막 도전’ 손학규, ‘미투 파문’ 안희정, ‘드루킹 특검’ 김경수
- 김경수 1심 내년 초 선고... ‘무죄’ 땐 안희정 파문 ‘최대 수혜자’ 관측
2018년 정치권의 가장 큰 이벤트는 6.13 지방선거였다. 이번 지방선거 결과를 한마디로 압축하면 ‘여당의 압승, 야당의 참패’다. 더불어민주당은 광역단체장 선거에서 총 14명의 당선자를 냈고, 기초단체장 선거에서도 151명의 당선자를 배출했다. 특히 보수의 텃밭인 구미시에서는 민주당 장세용 후보가 당선되는 이변이 속출했고, 국회의원 보궐선거 역시 12곳 중 11곳에서 여당이 승리했다.
반면 야당은 사상 최악의 성적표를 받아 들었다. 자유한국당은 광역단체장 선거에서 대구·경북 지역에서 두 명의 당선자를 배출한 데 그쳤고 바른미래당은 광역단체장, 재보궐 선거와 기초단체장 선거까지 1석도 얻지 못했다.
결국 ‘철수’한 安,
2019년 복귀 가능성은?
이 같은 야권의 지선 참패는 많은 정치 인사들을 역사의 뒤안길로 물러나게 했다.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안철수 전 의원과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다. 안 전 의원은 지난 6월 지방선거에서 서울시장에 출마하는 승부수를 던졌지만, 박원순 서울시장은 물론 김문수 자유한국당 후보에게도 뒤진 3위를 기록하며 정치적 치명상을 입었다.
안 전 의원은 컴퓨터 바이러스 백신을 만든 기업가였다. ‘청춘콘서트’를 진행하며 높은 지지를 얻게 된 이후 2012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박원순 서울시장과 단일화를 이루면서 기대감을 증폭시켰다. 하지만 정치권에 입문한 뒤엔 그의 지난 삶과는 달리 혹독한 시련을 겪어야만 했다.
민주당 대표까지 맡았지만 2014년 재·보궐 선거 패배 이후 대표직에서 물러났다. 2015년엔 문재인 당시 민주당 대표 체제와 갈등을 봉합하지 못하고 탈당해 국민의당을 창당했다. 20대 총선에서 38석이란 성공을 거뒀지만 19대 대선에서 3위로 낙선했다. 이후 6.13 지방선거를 앞두고 바른정당과 합당했지만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다.
결국 연이은 내리막길을 걷던 안 전 의원은 지선 직후 보수 분열의 원흉이라는 낙인이 찍힌 체 독일로 쫓겨나듯 ‘철수’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그가 어떤 방식으로든 정치활동을 재개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안 전 의원이 지난 9일 당시 단식농성 중이던 손학규 대표에게 위로 전화를 건 사실은 이 같은 분석에 힘이 실리는 대목이다.
홍준표 전 대표 역시 자유한국당의 참패로 정치 일선에서 물러났다. 홍 전 대표는 지선 직후인 지난 7월 11일 대표직을 내려놓고 미국으로 떠났다. 하지만 당시 홍 전 대표는 ‘기약 없는 이별’이 아님을 분명히 했다. 그는 정계은퇴설에 대해 묻는 기자의 질문에 “홍준표의 판단이 옳다고 인정받을 때 다시 시작할 것”이라며 분명히 선을 그었다.
그리고 지난 9월 15일, 홍 전 대표가 귀국했다. 지선 참패 책임을 지고 한국을 떠난 지 66일 만이었다. 귀국 직후부터 홍 전 대표는 자신의 호언대로 ‘페북 정치’를 재개했다. 연일 문재인 정부에 대한 비난을 이어갔고 친정인 자유한국당에도 쓴소리를 전하며 정개 복귀에 시동을 걸었다. 정치권 역시 홍 전 대표의 구체적인 정개 복귀 시나리오를 점치며 분위기를 조성하기 시작했다.
이후 약 세 달여의 시간이 흐른 지난 12월 18일, 홍 전 대표는 유튜브 1인 방송 ‘TV 홍카콜라’를 개국하며 본격적으로 정치 전면에 등장했다. ‘홍카콜라TV’는 개국한 지 하루만인 19일 구독자수 4만 명, 조회수 60만 회를 넘어서는 기염을 토했다. 홍 전 대표의 저력이 입증되는 순간이었다.
기세를 몰아 홍 전 대표는 ‘네이션 리빌딩(Nation rebuilding)’을 기치로 다시 정계를 ‘접수’하겠단 태세다. 오는 26일엔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자체 싱크탱크인 ‘프리덤 코리아’ 발족식도 갖고 세몰이를 할 예정이다. 그가 서울 종로 모처에 사무실을 내고 전대 준비에 착수했단 설도 들린다. 내년 2월 말, 3월 초로 예정된 전당대회 출마가 유력하다는 관측이다.
선거제 개편·집안 단속,
손학규 명운 가른다!
한편 바른미래당 역시 지방선거 참패의 소용돌이를 피하지 못하면서 전당대회를 치렀고, 손학규 당 대표 체제가 출범했다. 손 대표의 정치 역정은 그야말로 다이내믹하다. 학생운동과 민주화 운동, 노동운동을 거쳐, 1993년 민주자유당에 입당하며 'YS 키즈'로 불렸다. 3선 의원, 보건복지부 장관을 역임하고 2002년엔 경기도지사를 지내기도 했다.
2007년 한나라당을 탈당한 손 대표는 같은 해 대통합민주신당으로 적을 옮긴다. 그러나 대권 경선서 패하면서 또다시 탈당했다. 이후 손 대표는 통합민주당을 창당해 대표직을 맡았으나 총선 패배의 책임을 지고 사임, 춘천에 칩거했다.
2010년 정계에 복귀한 손 대표는 2012년 다시 대권에 도전했지만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문재인 당시 후보에게 패했다. 이후 2014년엔 재보선에 출사표를 냈지만 이마저도 패배하게 되고 결국 만덕산 토굴에 다시 칩거했다.
칩거 2년 만인 지난 2016년 손 대표는 정계에 복귀하면서 더불어민주당을 탈당, 국민주권개혁회의를 만들어 국민의당과 통합하는 형식으로 국민의당에 합류했다. 손 대표는 이번에도 대권을 바라봤지만 경선에서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에게 패배했다.
그리고 2018년 숱한 역경 끝에 바른미래당의 대표에 당선됐다. 정치권은 이번이 그의 정치인생에 있어 마지막 도전이 될 것이라고 관측한다. 하지만 이번 역시 상황은 녹록지 않다. 당장 손 대표가 취임 후 승부수로 띄운, 생애 첫 단식투쟁에 걸려있는 선거제 개편과 관련해서 자유한국당이 완강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 악화일로가 예상된다.
집안단속도 과제다. 손 대표가 단식을 끝마친 직후인 18일 이학재 의원이 자유한국당으로의 복당을 선언하면서 당내에선 ‘도미노 탈당’에 대한 우려가 나오는 상황이다. 이에 손 대표는 “절이 싫으니 (중이) 나가는 것”이라며 애써 태연함을 보였지만 총선을 앞두고 야권의 정계개편이 확실시되는 상황에서 손 대표의 입지가 좁아질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이처럼 야권이 6.13 지방선거 참패로 인한 후폭풍에 시달리고 있는 가운데 승리 진영인 여권도 마냥 평화롭진 않았다. 특히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미투 파문은 정부·여당은 물론이고 온 국민을 충격에 빠뜨렸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안 전 지사는 새로운 길을 준비하고 있었다. 충남지사 3선에 불출마를 선언한 뒤 여의도 정계에 진출할 계획이었다. 다음 대선에 가까워지는 길이라 판단했을 것이다. 민주당 당권 경쟁에서도 비문 세력의 구심점으로 떠오르고 있었다.
하지만 지난 3월 5일, 그의 정치 인생을 송두리째 흔드는 사건이 터지고 만다. 안 전 지사의 정무비서였던 김지은씨가 jtbc <뉴스룸>에 나와 안 지사로부터 성폭행과 성추행을 당했다고 폭로한 것이다.
이후 안 전 지사는 김 씨를 상대로 지난해 7월 29일부터 올해 2월 25일까지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 4회, 업무상 위력에 의한 추행 1회, 강제추행 5회를 저지른 혐의로 지난 4월 불구속 기소됐다.
재판 과정에서 안 전 지사와 김씨의 주장이 엇갈리면서 ‘유죄’와 ‘무죄’를 놓고 치열한 공방이 벌어졌다. 결과는 무죄였다. 서울지법형사합의11부는 지난 8월 14일 김씨 진술의 신빙성이 부족하다는 이유 등으로 안 전 지사가 위력을 행사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항소심 ‘무죄’ 나와도
사실상 ‘정치적 사망’...
김경수는?
이에 서울서부지검은 같은 달 20일 1심 판결을 내린 서부지법에 항소장을 제출하고 “1심 재판의 법리오해, 사실오인, 심리미진 등 세 가지 이유로 항소했다”고 전했다. 항소심 선고기일은 내년 2월 1일로 가닥이 잡혔다. 다만 이는 진행 상황에 따라 변동될 가능성이 있다.
물론 안 전 지사가 항소심에서도 무죄를 받을 가능성은 있다. 하지만 안 전 지사 스스로도 인정했듯 ‘불륜’을 저지른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차기 대권을 바라보던 그에게 불륜이란 딱지는 사망선고나 다름없다. 안 전 지사의 정치 인생이 사실상 막을 내렸다는 분석이다.
안 전 지사가 비문 진영을 이끌 리더였다면 친노·친문 진영의 총아(寵兒)는 김경수 경남지사다. 김 지사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마지막 비서관’이자 문 대통령의 ‘복심’이라는 점에서 당내 최대 계파인 ‘친노·친문의 적자’라는 이미지를 굳혔다. 민주당 지지층 역시 안 전 지사가 미투 파문으로 비운 자리를 김 지사가 메꿔 줄 것이라 믿었다. 김 지사는 이 같은 바람을 등에 업고 6.13 지방선거 출마 채비를 서둘렀다.
그러나 김 지사마저 경남지사 출마 선언 직전 드루킹 연루설에 휩싸이고 말았다. 야권의 칼날은 오롯이 김 지사를 향했고, 정치권은 그의 불출마 선언을 점쳤다. 그러나 김 지사는 출마를 강행했고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선거 불패’ 신화를 가지고 있는 난적 김태호 자유한국당 전 최고위원을 꺾고 영남에 민주당 깃발을 꽂았다.
물론 아직까지 드루킹 댓글 조작 사건과 관련된 1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이 결과에 따라 김 지사의 차기 대권 가도에 변수가 생길 수도 있다. 하지만 끝내 그가 ‘무죄’ 판결을 받게 된다면, 2019년의 김 지사는 안희정 파문의 ‘최대 수혜자’가 됨과 동시에 차기 대권에 성큼 다가설 것이란 관측이다.
고정현 기자 jh0704@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