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은 피보다 진하다”
“인간은 아버지의 죽음보다 유산의 상실을 더 오래 기억한다” 마키아벨리의 말이다. 국내의 크고 작은 기업들 중 일부는 상속 분쟁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 역사 속에서 ‘과분하게 많은 재산은 형제간 뿐 만이 아니라 부모와 자식 사이도 갈라놓을 수 있다’는 진리를 깨닫는다. 가장 최근 대명그룹에서는 ‘막내딸의 亂’이 일어나 하루 만에 끝을 맺었다. 지난해와 올해 상반기에도 녹십자, 금강제화, 오양수산도 그 분쟁을 치뤘다. 더불어 현대그룹, 롯데그룹 등 대기업들도 상속분쟁을 겪었다. 이에 [일요서울]은 끝이 없는 기업들의 상속 분쟁 역사에 대해 알아본다. 2010년 상반기가 재벌가의 상속분쟁으로 물들고 있다.
선두주자는 대명그룹. 지난 5월 25일, 대명그룹의 창업주인 故서홍송 회장의 막내딸이 어머니(현 대명그룹 회장)와 오빠를 상대로 상속분 반환 청구 소송을 시작했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막내딸 서지영씨가 친어머니인 박춘희씨와 오빠인 준혁씨를 상대로 자신의 상속 지분을 반환하라는 소송을 제기했다고 지난 5월 24일 밝혔다.
지영씨는 소송 제기 당시 “어머니와 오빠가 상속 재산을 아무 대가 없이 나눠가졌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2001년에는 내가 미성년이었기 때문에 법정대리인인 어머니가 나를 대신해 상속 포기권을 행사했다”며 “하지만 어머니도 상속권자이기 때문에 나에게 따로 특별대리인을 선임해야했는데 이런 절차가 없었기 때문에 이해상반행위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또 그는 “어머니와 오빠는 나의 정당한 상속 지분인 11만여 주의 대명홀딩스 주식을 반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명홀딩스(구 대명콘도)는 자산 1조 1342억 원 규모인 대명레저산업을 100% 자회사로 두고 있다. 67만여 주의 총 주식 중 74%를 서씨 일가가 보유하고 있다. 이 중 어머니 박씨가 37.7%, 36.4%는 지영씨의 오빠가 소유하고 있다. 그러나 두 딸은 소유 지분이 전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명그룹 창업주인 故 서 회장은 유언없이 세상을 떠났다. 이런 서 회장이 유언없이 세상을 떠났을 경우, 민법 규정에 적용을 받아 부인이 9분의 3, 두 딸과 아들이 각각 9분의 2씩 법정 상속분을 받게 된다. 하지만 서씨 일가의 경우 상속 재산 분할시 별도의 합의가 있어 민법의 적용범위에서 벗어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지영씨의 주장대로라면, 자신이 미성년자일 때 이런 합의가 이루어졌고, 그 절차상 문제도 있기 때문에 합의는 무효다. 하지만 ‘막내딸의 亂’은 허무하게 하루만의 해프닝으로 끝났다. 심리적 압박을 받은 서씨가 친지들의 설득으로 하루 만에 소송 취하서를 제출했기 때문이다. 서씨는 “친어머니와 오빠를 상대로 소송을 시작해 내 가족들과 지인들에게 심려를 끼쳐드려 유감”이라며 소송을 취하하는 이유를 밝혔다.
이에 앞서 금강제화도 재계 상속 분쟁에 뛰어들었다. 국내 1위 제화업체인 금강제화의 창업주 2세들이 아버지의 유산을 놓고 법정 공방을 벌인 것이다. 지난 1월 5일 서울중앙지법은 창업주인 故 김동신 명예회장의 2남 4녀 중 5·6녀가 큰 오빠인 김성환 현 회장(65)을 상대로 유류분 반환 청구 소송을 냈다고 밝혔다. 유류분은 유언의 유·무 혹은 그 내용에 상관없이 상속권자가 일정 비율의 상속 재산을 받을 수 있는 권리이다. 즉, 최소한도의 상속분을 보호받을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5·6녀는 “아버지는 사망 전, 큰오빠에게 874억 원, 작은 오빠에게 182억 원을 증여했다. 하지만 우리는 각각 35억 원 정도의 토지와 현금을 상속받았을 뿐”이라며 “이제서야 상속분에 큰 차이가 났다는 것을 알았다. 각 70억 원씩 돌려받아야 하지만, 먼저 15억 원만 청구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현재 김성환 회장은 이에 대해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고 있는 상태이다.
녹십자도 모자(母子)간 경영권 다툼에 휘말렸다. 지난해 11월 25일, 녹십자 창업주 故 허영섭 회장의 장남 성수(39)씨가 어머니 정모(63)를 상대로 상속 재산 반환을 청구했다.
성수씨는 더불어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유언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심신상실의 상태에 있었고, 어머니가 자신의 의사대로 유언장을 작성하게 해 자신은 한 푼도 상속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녹십자 홀딩스 지분은 故 허 회장이 12.37%를 보유하고 있고, 허 회장의 동생인 허 부회장이 9.01%, 정씨가 1.49%, 성수씨가 0.81%, 동생 은철씨와 용준씨가 각 각 1.03%, 0.99%를 가지고 있다. 업계전문가들은 허 회장의 지분이 어떻게 상속되는냐에 따라 최대주주가 달라질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때문에 모자간의 싸움은 더욱 치열한 양상을 띌 것으로 보인다.
오양수산도 부자들은 못 피해 간다는 ‘상속의 덫’에 걸렸다. 타 기업들보다 오양수산의 상속분쟁은 더 복잡한 양상을 띠고, 더 오랜 시간이 걸렸다. 큰 아들(김명환 전 부회장)VS 어머니+다른 형제(사위 포함)의 대립 구조를 보이는 오양수산 ‘피의 전쟁’의 대단원은 2000년 故 김성수 회장이 뇌졸중으로 쓰러지면서 시작된다. 故 김 회장은 1977년부터 27억9000여만 원 상당의 삼성증권, 현대증권, 수산업협동조합 채권을 김 전 부회장 명의로 관리해 왔다. 2007년 6월 창업주 사망 후, 해당 채권 중 어머니와 다른 형제들이 자신들의 상속분을 나눠달라는 요청을 하자 김 전 부회장은 이를 거절했고 이는 소송으로 이어졌다. 1심 재판부는 “해당 채권을 김 전 부회장 명의로 관리한 것은 상속 내지 증여로 인한 조세 부담을 경감하려고 명의 신탁한 것”이라며 “어머니와 다른 형제들이 명의신탁 해지 의사를 밝혔으므로 김 전 부회장은 상속분에 따라 재산을 양도해야 한다”고 패소 판결 내렸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 그룹들도 막대한 재산 상속을 놓고 한결같이 아픈 상처를 갖고 있다. 현대그룹은 익히 알려진 1~2차 ‘왕자의 난’을 겪으며 급기야 정몽헌 전 회장의 자살이라는 비극까지 겪었다. 두산그룹에서는 2005년 차남 박용오씨가 동생들의 비자금 조성의혹을 담은 진정서를 검찰에 제출하면서 형제간 내분이 일어났다.
이 외에 금호그룹, 한진그룹, 한화그룹, 롯데그룹 등 내로라는 기업들의 2세들 역시 한 번씩은 크고 작은 분쟁을 겪은 바 있다.
[우선미 기자] wihtsm@dailypot.co.kr
우선미 기자 wihtsm@dailyp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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