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 인터뷰] ‘돈 공장’ 사람들 - 한국조폐공사 화폐본부
[미니 인터뷰] ‘돈 공장’ 사람들 - 한국조폐공사 화폐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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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05-17 13:22
  • 승인 2010.05.17 13:22
  • 호수 838
  •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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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순 인쇄생산관리부 부장, 박주익 주화생산관리부 차장
박명순 부장(좌) - 박주익 차장

“입사 33년, 돈은 내 애인이자 삶이 됐다”

1977년 이른 봄.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까까머리 동기동창은 나란히 사회에 첫발을 디뎠다. 수조원에 달하는 현금과 반짝이는 금덩이에 눈이 부신 것도 잠시, 그들은 ‘돈 공장’을 움직이는 동지로 33년을 보냈다. 돈 만드는 일을 천직으로 삼은 두 청년은 어느덧 중년의 신사가 됐고, 돈은 그들의 애인이자 삶이 됐다. 화폐본부 박명순 부장(52·인쇄생산관리부)과 박주익 차장(52·주화생산관리부)의 이야기다.


박명순 부장 “아들에 지폐 보여주며 ‘이게 아빠 명함이야’ 했다”

- 조폐공사에 몸담은 지 얼마나 됐나.
▲ 1977년 입사해 작년 1월 1일 인쇄생산관리부장으로 임명됐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직후 들어와 한 회사에서만 일한 셈이다. 앞으로 정년(58세)까지 회사에 남아 일하고 싶은 것이 유일한 바람이다.

- ‘돈 공장 직원’이란 말에 애환이 많을 것 같다.
▲ 내가 어릴 때 “돈 많은 사람들은 부모가 돈 공장 사장이냐”고 우스갯소리를 했었다. 그런데 어른이 되니 내가 돈 공장에 다니고 있다. 그런데 돈 공장 다닌다고 부자가 되는 건 아니더라. 어린 아들이 가끔 친구들에게 “우리 아버지가 돈 공장 다니신다”고 자랑삼아 얘기하곤 했는데 부끄러운 마음에 한동안 명함 없이 다닌 적도 있다. 대신 아들에게 지폐를 보여주며 “이게 아빠 명함이야”라고 말해주곤 했다.

- 그야말로 ‘거액’이 오가는 곳이다. 도난 사고 등 불미스러운 일은 없었나.
▲ 10년 전 쯤 한 번 있었다. 한 직원이 완성도 안 된 지폐 전지를 훔친 것이다. 소액권인데다 돈으로 쓸 수도 없는 것을 말이다. 해당 직원은 평생직장에서 쫓겨났고 해당 간부들까지 욕을 바가지로 먹었다. 아까 봤다시피 작업장 안 보안이 철통이기 때문에 절도는 감히 생각할 수도 없다. 직원들은 출입 시 소지품도 따로 보관한다.

- 일이 힘들거나 고생스럽진 않았나.
▲ 왜 없겠는가. 그런데 업무 때문에 힘들 다기 보다 외부에서 우리 회사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해 오해를 샀을 때 정말 허탈하다. 제조업을 하는 공기업은 국내에 조폐공사가 유일하다. 제조업 특성상 때론 불량품이 나올 때도 있는데 우리에게는 절대 용납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사기업은 불량품에 대해 AS를 해줄 수 있지만 우린 작은 실수에도 엄청난 비난과 징계를 각오해야 한다. 인간이 하는 일이니만큼 100% 완벽은 있을 수 없는데 외부에서는 그런 특성을 이해해주지 않는다. 해외에서는 ‘불량 화폐시장’이 따로 운영될 정도로 관대한 편이지만 우리나라는 아니다. 지나친 마녀사냥식 비판에 허탈함을 느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 스스로에게 있어 ‘돈’은 무엇인가.
▲ 소중하고 불편하지 않을 만큼 있어야 할 것. 또 내 직업이 돈을 만드는 것 아닌가. 평생을 바친 천직이니만큼 돈은 내 인생이다.


박주익 차장 “거대한 저금통 속 삶, 돈은 애인이다”

- 조폐공사에 몸담게 된 계기는.
▲ 고교 동창인 박 부장과 1977년 공채를 통해 입사했다. 당시 전공 5과목과 상식시험도 따로 치렀을 정도로 공부할 양이 많았다. 요즘엔 외국어 능력도 시험에 포함됐다고 들었는데 경쟁률이 300:1이 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유능한 후배들이 많아져 자긍심을 느낀다.

- 재직 중 가장 보람찼던 경험.
▲ 지난해 2월 세계 최초로 우리 회사에 가동되는 ‘주화생성 일전라인’을 구상, 실현한 일이다. 오랜 시간 계획했던 프로젝트였는데 그 결과를 이룰 수 있어 무척 행복했다. 현재 세계 60~70개 MINT(화폐주조소)업계에서 우리의 생산라인에 관심을 갖고 있다.
최근에는 호주 MINT에서 직접 이곳에 방문해 관련 사항을 문의하고 시찰도 했다. 우리나라가 세계 최고 주화 기술을 보유했다는 사실, 또 10개국에 동전을 수출하는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 우리가 하는 일이 결국 국익을 위한 일이라고 생각하니 매 순간이 보람차다.

- 주화 생산 중 도난사고가 벌어진 적은 없는지.
▲ 아까 둘러볼 때 보지 못했나. 공장 곳곳에 엄청난 수의 감시카메라가 설치돼 있다. 만에하나 있을지 모를 불미스러운 상황을 감지하기 위해서다. 더구나 주화 자체 무게가 굉장히 무거워 지고 나가기도 힘들지 않겠나.(웃음) 한 번 시도해 보시면 알겠지만 작은 돈 훔치려다 망신만 당할 뿐이다.

- 기념주화와 올림픽 메달 등 상품가치가 있는 제품들이 많다.
▲ 물론이다. 특히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무궁화 대훈장은 우리 주화생산라인의 자랑이다. 그러나 주화 제품의 경우, 원가에서 재료비가 80%를 넘게 차지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이익이 많지 않다. 몇해 전 10원 짜리 주화의 크기와 재질을 원가절감 차원에서였다.

- 재직 중 애환을 듣고 싶다.
▲ 일하면서 어려웠던 일이나, 힘든 일은 없었던 것 같다. 다만 모든 화폐가 한국은행 주문에 의해 만들어지기 때문에 종종 갑작스럽게 주문이 밀려 발을 동동 구른 적이 있다. 앞으로는 체계적인 화폐 계획을 세워 안정적인 주화공급이 이뤄졌으면 한다. 또 현재의 공정 라인에 만족하지 않고 기술력을 더 발전시켜 ‘주화제조=한국이 최고’라는 인식이 세계적으로 박혔으면 한다.

- 스스로에게 ‘돈’이란?
▲ 이곳에서 일하려면 반드시 새겨야할 덕목이 있다. ‘절대 돈을 돈으로 봐선 안 된다’는 것이다. 견물생심이라고 사람의 욕망은 걷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내게 있어 돈은 ‘애인’이다. 평생 곁에 두고 보는 애인이라고 치부하는 게 마음이 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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