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는 환경경영, 기업은 환경 재앙 ‘논란’

지난 2007년 발생한 태안 기름유출 사고의 아픔이 아직 아물지 않았다. 바다는 죽었고 어민들은 파괴된 환경과 여전히 싸우고 있다. 주민들은 아토피 등 환경재앙에 의한 병마에 시름을 앓고 있다. 하지만 책임지는 사람은 없다. 기름유출에 당사자인 삼성중공업도, 정부도 무방비상태로 바라만 보고 있다. 이것이 한국사회다. 최근 미국 남부 해안을 휩쓰는 멕시코 만 원유유출 사태로 책임을 지고 있는 영국 석유회사 브리티시 페트롤리업(이하 BP)이 모든 피해보상 약속과 함께 200억 달러(약24조 4000억)에 달하는 복구 기금 마련에 나섰다. BP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있다. 2년 6개월이 지나도 그대로 있는 한국과 대조적이다. 경제학자들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않는 삼성은 절대 글로벌 기업이 될 수 없다”고 단언했다. 세계가 녹색성장 기조 속에 발전해 가고 있는데 반해, 역행하고 있는 한국기업 실태를 고발한다.
기업의 미래를 보여주는 성장의 화두는 친환경과 건강이다.
이는 경영에 복귀한 황제 삼성전자 이건희 회장의 경영철학이다. 전지, 자동차용전지, LED, 바이오제약, 의료기기 등 5개 친환경 및 건강증진 미래 산업 분야를 정하고, 매출 50조 원, 고용 4만5000명을 창출한다는 목표로 23조원을 오는 2020년까지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전 세계적으로 열풍이 불고 있는 ‘녹색성장’에서 삼성의 미래를 찾은 것이다.
그러나 이 회장의 경영철학에 역행하는 사건이 삼성 안에서 벌어지고 있다. 지난 2007년, 삼성중공업의 태안반도 기름유출 사고에 대한 책임을 다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사고 발생 2년 6개월여가 지났지만 보상은 여전히 지지부진한 상태다.
태안 원유유출 사태는 11만 명의 피해자와 3조 7000억 원의 피해를 발생시켰으나 삼성중공업(이하 삼성)은 유출 사태가 발생한 시점부터 책임 회피로 일관했다.
여론이 커지자 사고 발생 89일 만에 국민들에게 사과를 하며 피해 주민과 지역발전기금으로 1000억 원을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현재 삼성이 보상을 해 준 금액은 없다.
삼성은 “성의를 표시로 1000억 원 지원을 약속 했지만 태안 주민들이 거부했기 답보 상태로 이어지고 있다”라며 일축했다.
대신 삼성은 배상 문제에 “태안 사고는 고의나 과실로 인한 사고가 아니고 충돌 자체보다는 삼성중공업 소유가 아닌 유조선에서 나온 기름으로 인한 피해가 컸다"는 입장을 밝히며 사고에 대한 배상 책임을 50억 원으로 제한해달라고 법원에 신청했다.
지난 1월 서울중앙지법 파산1부(고영한 수석부장판사)는 삼성에 책임한도액 및 그에 따른 법정이자를 56억3천400여만 원으로 산정하며 “태안 인근의 어민이나 숙박업자 등이 사고로 입었다고 주장하는 피해액이 상법에서 정하는 책임제한액의 한도를 초과했으며 무한책임을 져야 하는 예외적인 사유에도 해당하지 않는다"고 이유를 밝혔다.
법원의 결정을 수용할 수 없는 태안 피해 주민들은 결정을 취소해 달라며 항고했지만 서울고법 민사40부는 같은달 24일 기각 시켰다.
태안유류피해 대책위원회에 따르면 책임제한액으로 정한 56억 원은 피해주민 1인에게 5만 원 정도밖에 배상을 할 수 없는 금액이다. 국제유류오염보상기금(IOPC펀드)에 따르면 태안 기름유출 사고 피해액은 5663억~6013억 원에 이른다.
한 푼의 피해배상도 이뤄지지 않은 가운데, 네 명의 피해어민이 생활고를 비관해 자살하기에 이르렀다. 연이어 터지는 사고에 일각에서는 다섯 번째 여섯 번째의 희생자가 계속해서 나타나기 전에 국가가 나서서 해당 기업들을 추궁해야만 한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서산태안환경운동연합의 이평주 사무국장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이 국장은 “대부분의 태안 주민들은 언론에 멕시코 만의 주민 피해보상의 노출이 안 돼 이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상황이다. 알려지면 삼성에 더 큰 실망감을 느낄 것이며 반발 할 수도 있다”라고 밝혔다.
또한 이 국장은 “환경연합에서는 아직 움직이지는 않지만 글로벌 기업이라고 불리는 삼성이 그 이름에 맞춰 태안 사태에 무한 책임을 지는 자세를 가졌으면 한다”라며 아쉬워했다.
BP, 석유유출 사고 후 빠른 대책
세계 환경단체들은 삼성과 영국의 석유회사 브리티시 페트롤리업을 비교하며, 삼성에 대한 비난을 쏟아내고 있다.
BP는 미국 남부 해안을 휩쓰는 멕시코 만 원유유출 사태가 발생하자 즉각 모든 책임을 지고 피해보상 약속과 함께 200억 달러(약24조 4000억)에 달하는 복구 기금을 마련하고 환경복원에 나섰다.
지난달 17일 미 하원 에너지 상무위원회에 출석한 BP의 최고 경영자 토니 헤이워드는 “딥워터호라이즌(Deepwater Horizon) 석유시추시설 폭발과 화재는 일어나지 않도록 했어야 한다”며 원유유출 사고에 대해 사과했다.
청문회 끝낸 뒤 BP의 칼 헨릭 스반베르 회장을 비롯한 경영진들은 백악관 본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국민들에게 매우 죄송스럽다. 모든 피해에 대한 보상을 할 것”이라며 진심어린 사과를 했다.
앞서 16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BP 경영진들과 4시간에 걸친 회동을 갖고 원유유출의 실질적인 피해보상을 위해 200억 달러 보상기금을 내놓기로 동의했다.
BP는 최근까지 보상금을 청구한 주민들에게 총 1억 4천 700만 달러 (약 1800억 원)를 지급했다. 원유유출에 따른 피해자 수는 대략 9만 5000명이며 보상금 청구를 접수한 4만 7000명에게 수표를 지급했다고 지난 7월 5일 밝혔다.
해외 언론에서도 BP의 무제한 책임감에 찬사를 보내고 있다. 워싱턴포스트지의 스티븐 펄스틴 기자는 자신의 기사에 “BP의 행동에 박수를 보낸다. 그들은 자신들의 잘못을 재빨리 깨달았다. 그리고 잘못을 바로 잡기 위해 행동을 보이고 있다. BP의 딥워터 사태는 추후 경영학 교과서에 올바른 위기관리 대처법으로 올라갈 것이다”라며 평했다.
이는 2007년 국내 최악의 원유 유출 사고를 일으킨 삼성중공업이 사태 당시 피해 주민들에게 1000억 원의 보상 계획을 밝힌 뒤 실행에 옮기지 않은 것과 비견되는 대목이다.
이에 대해 삼성의 관계자는 “태안 사태와 맥시코만 사태는 본질적으로 다른 경우다. 삼성이 사건의 당사자이긴 하지만 BP와 같은 가해자가 아님을 이해해 주셨으면 한다. 시민들에게 잘못 전달이 되 아쉽다”며 유감을 표명했다.
환경무시한 삼성의 국제망신
삼성에 대한 세계 환경단체에 반발은 거셌다.
지난해 12월 태안사건 2주년을 맞아 한국NGO는 미국 뉴욕 46번가 타임스퀘어의 삼성광고판을 배경으로 사고 책임을 회피하고 있는 삼성의 책임을 묻는 캠페인을 전개 했다.
당시 캠페인에 참가한 재미한인 전석우씨는 “2년 전 태안사고가 발생하여 수많은 자원봉사자들이 방제작업에 참가한 것을 보고 감동했었다. 그런데 사고를 저지른 삼성이 여태껏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니 이럴 수가 있느냐”며 피켓을 든 이유를 말했다.
또 다른 참가자인 김수복씨는 “외국에 사는 한국인으로서 유명한 한국기업인 삼성의 행태에 대해 부끄럽게 생각한다. 한국을 대표기업으로서 삼성이 사고수습에 책임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바란다”며 삼성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했다.
당시 행사엔 국내 NGO단체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환경단체에서도 많이 참여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삼성, 사회적 책임 가져야
태안사태는 한국사회의 단면을 잘 보여주고 있다.
사회학자인 P씨는 “원유유출로 인한 태안 사태와 멕시코만 사태는 천재지변이 아닌 인재다. 분명히 누군가의 잘못으로 인해 일어난 사태로 무고한 주민들이 생계에 피해를 받는다. 그렇다면 누군가는 책임지고 나서서 처리해야 한다. 온 국민이 나서 태안기름 유출 때 자원봉사를 했던 것처럼, 이젠 기업과 정부가 나서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특히 삼성도 정부의 지원아래 국민 세금으로 성장했다. 이젠 국민에게 기업의 사회적 책임으로 돌려줘야 할 때이다. 그래야만 삼성이 백년기업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박주리 기자] park4721@dailypot.co.kr
박주리 기자 park4721@dailyp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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