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브랜딩 제 11 탄 백병원 백낙환 원장
CEO 브랜딩 제 11 탄 백병원 백낙환 원장
  • 정리=이범희 기자
  • 입력 2010-05-11 10:57
  • 승인 2010.05.11 10:57
  • 호수 837
  • 25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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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 외길 70년 걸어온 ‘영원한 청년’

“의료를 산업화해야 합니다”

모든 샐러리맨의 꿈은 CEO(최고경영자)다. 하지만 CEO 자리로 이끄는 왕도란 없다. ‘남이 가지 않은 길’을 찾아내어 전력투구할 뿐이다. 그렇다면 CEO들은 새로운 영역을 어떻게 개척해 나아갈까. 최근 출간된 (좋은 책 만들기)는 성공한 CEO16인의 사례를 통해 ‘셀프 브랜딩’을 이정표로 제시한다. 이에 [일요서울]은 박용만 두산·인프라코어 회장을 필두로 최고 CEO들의 경영 브랜딩에 대해 알아본다. 이번호는 백병원 백낙환 원장의 이야기다.

“의료를 산업화해야 합니다. 우리나라 의료 서비스의 질이 동양에서 가장 높아요. 일본이 우리나라보다 먼저 깨었지만 우리가 미국 의학을 직수입해 의술은 일본보다 못하지 않습니다.”

백낙환 백병원·인제대 이사장은 “의료를 산업화하고 시장도 개방해 의료 서비스의 경쟁력을 높이면 인구 대국인 중국의 환자를 받을 수 있다”고 밝혔다.

“부유층이 우리나라 인구보다 많은 나라입니다. 14억 인구의 1할만 받아도 그게 어디입니까? 의료시장을 개방하면 지금 외국으로 나가는 환자의 발길을 돌릴 수 있을뿐더러 중국, 말레이시아, 동남아, 인도, 중동 등 외국에서 환자를 받을 수 있습니다. 건강보험과 더불어 의료 사보험도 활성화 시켜야 합니다. 건강보험을 없애자는 게 아닙니다.”

백 이사장은 의료 브랜드 백병원의 창업 1.5세다. 설립은 그의 큰 아버지인 고 백인제 박사가 했지만 5개의 병원 체인으로 키우고 인제대를 설립해 이를 뒷받침한 것은 그다. 인제대는 백병원 인력 풀의 산실이기도 하지만 백병원을 모태로 급성장중인 대학이다. 그는 “백 병원을 여러 개 설립한 가장 큰 목적이 인제대의 재원을 확보하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인제대 운영비의 60%를 병원 수익금으로 충당합니다. 그래서 다른 학교들보다 등록금이 싸죠. 등록금 수준도 학생들과 의논해 결정하기 때문에 우리 학교는 등록금을 둘러싼 갈등도 없습니다.”

인제대는 당초 의대로 출범했다. 인제대라는 브랜드는 백병원의 창립 이념인 ‘인술제세’에서 왔다. 설립자인 고 백인제 박사의 이름과 발음이 같다는 점도 고려됐다. 백 이사장은 건학 이념에 ‘인덕제세’를 추가했다. 의료인 백인제는 오래 전 작고했지만 이렇게 해서 병원과 대학으로 ‘환생’했다.

백인제 박사는 한국전쟁 당시 백 이사장의 아버지 백붕제 변호사와 함께 북한군에 납북됐다. 1937년 장폐식증 수술에 상부장관 감압술을 세계 최초로 시행한 백 박사는 당시 명의로 이름을 떨쳤다고 한다. 사람들은 “백인제 앞에 백인제 없고 백인제 뒤에 백인제 없다”고 말했고 일본과 만주에서까지 그를 찾아왔다. 해방 후 백 박사는 그동안 모은 재산을 털어 우리나라 최초의 민립 공익법인인 재단법인 백병원을 설립하고 초대 원장을 맡았다.

우리나라 현대 의학의 개척자였던 백 박사는 1899년생이다. 생존한다면 111세. 백 박사가 납북했을 당시 학생 신분이었던 백 이사장은 이 선각자의 시신이라도 수습하려고 철원까지 갔었다. 훗날 월북인사들과 함께 숙청된 것 같다는 소식을 풍문으로 전해 들었다.

남들이 노후를 설계하는 나이에 그는 인제대를 세웠다(53세). 해운대 백병원에 대해서는 “중국·동남아 등 세계의 환자들이 찾는 아시아의 허브 메디컬센터로 키우겠다”는 꿈을 꾸고 있다.


평생 4시 반에 일어난 새벽형 인간

백 이사장은 새벽형 인간이다. 여든넷의 고령에도 새벽 4시 반이면 일어나 조깅·운동·등산을 하고 병원이나 학교로 향한다. 근무 장소는 요일마다 다르다. 각 병원과 학교를 가기 때문이다. 병원을 찾을 때마다 빠뜨리지 않는 것은 외과보고. 그는 49년 전 자격을 취득한 외과전문의다. 62년엔 골반내장전적출술을 국내 최초로 시행했다.

인제대의 교훈은 정직, 성실, 근면이다. 이 세 가지는 백 이사장의 트레이드마크이자 그가 좌고우면하지 않고 한길을 걸은 힘이다.

백 이사장은 12년간 인제대 총장을 지냈다. 경영과 교육에 공통적으로 필요한 자질로 그는 열정을 꼽았다. 열정이 빠진 경영이나 교육은 좀처럼 성공하기 어렵다고 단언했다.

1989년 의과대학으로 문을 연 인제대가 종합대로 승격하면서 그는 예순셋의 나이에 이사회 만장일치로 초대 총장에 임명됐다. 그러자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소속이었던 학생회가 그에 대한 불신임을 결의했다. 재단이 학교재산을 사유화했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는 학생 대표에게 학교 경리장부를 모두 공개했다. 총장실을 점거했던 학생들은 일주일 만에 농성을 풀었다.

서울 백병원 이사장실엔 백인제 박사의 초상화가 걸려 있다. 팔순의 백 이사장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백 박사는 여전히 50대다. 세월이 흘러 숙질간에 나이가 역전된 것. 백 이사장은 신생 국가였던 조국에 자신을 통해 인술제세 인덕제세의 뜻을 편 이 선각자에게 시선이 가면 마치 “자네, 그동안 잘해왔어”라는 환청이 들리는 듯하다.

“아직 할 일이 남았습니다. 해운대 백병원도 완공해야 하고, 북한에도 어떻게 해서든지 병원을 짓고 싶습니다. 운동을 일편단심으로 열심히 하는 건 해야 할 일이 남았기 때문이죠. 그 일을 완수하는 게 그 동안 우리 사회에서 받은 사랑에 보답하는 길이라 믿습니다.”


#백낙환의 HOW to Brand

▶ 개인도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한다.
일편단심으로 한 가지 일에 전심전력한다면 반드시 이룰 수 있다. 불가능이란 없다. 백 이사장은 가업을 중흥시키는 한편 병원을 여러개 지어 그 수익금으로 대학을 설립했다. 53세에 대학을 세우고 63세에 총장에 취임했다. 그로부터 다시 20년, 그는 아직 준공도 안 된 해운대 백병원을 아시아 허브 병원으로 키울 꿈을 꾼다.

▶ 정직 성실 근면해야 한다.
정직 성실 근면은 진부하지만 동서고금의 진리다. 이 세 가지야말로 인생의 성공을 여는 열쇠다. 백 이사장은 “정직하게 노력하면 반드시 성공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어떻게 정직하게만 사느냐는 건 정직하지 못한 사람들이 둘러대는 구실일 뿐이라고 단언한다. 그의 집 가훈은 ‘고지식하게 살자’다. 인제대 총장 취임 당시 학생회가 재단 비리 의혹을 제기하자 그는 학교 경리장부를 전면 공개해 정면 돌파했다.

▶ 자신만의 이상을 품어야 한다.
이상은 삶을 값지게 만든다. 그러나 실천력 없이 마음에만 머무르는 이상은 무의미하다. 백 이사장은 큰아버지인 백인제 박사의 뜻을 받들어 백병원을 중흥시키고 의술을 보급하겠다는 이상을 품었다. 결국 폐허 위에 백병원을 재건했고, 인제대학을 설립해 졸업생 취업률이 90%에 육박하는 대학으로 키웠다.

[정리=이범희 기자] skycros@dailypot.co.kr
[자료제공:좋은책만들기 (저자:이필재)]


정리=이범희 기자 skycros@da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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