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연재-CEO 브랜딩 제 10 탄 한길사 김언호 대표
인기연재-CEO 브랜딩 제 10 탄 한길사 김언호 대표
  • 이범희 기자
  • 입력 2010-05-06 13:06
  • 승인 2010.05.06 13:06
  • 호수 836
  • 25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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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출판계에 기념비적 기록 남긴 CEO “인문학에 숨결을 불어넣다”
모든 샐러리맨의 꿈은 CEO(최고경영자)다. 하지만 CEO 자리로 이끄는 왕도란 없다. ‘남이 가지 않은 길’을 찾아내어 전력투구할 뿐이다. 그렇다면 CEO들은 새로운 영역을 어떻게 개척해 나아갈까. 최근 출간된 〈CEO브랜딩〉(좋은 책 만들기)는 성공한 CEO16인의 사례를 통해 ‘셀프 브랜딩’을 이정표로 제시한다. 이에 [일요서울]은 박용만 두산·인프라코어 회장을 필두로 최고 CEO들의 경영 브랜딩에 대해 알아본다. 이번호는 한길사 김언호 대표의 이야기다.

“한 사람의 독자에게 감동을 주고 그 사람의 진정한 필요를 채우려는 겁니다. 그 사람을 감동시킬 수 있다면 다른 사람도 감동시킬 수 있다는 믿음이죠.”

500년 전 간행된 중국의 기행문을 10권짜리 전집으로 만들고 있다는 김언호 한길사 사장에게 “그런 책이 과연 필요하냐”고 묻자 돌아온 답이다. 그는 “한 사람의 독자를 위해서도 나는 글을 쓴다”는〈혼불〉의 작가 고 최명희의 말에서 얻은 영감이라고 했다. 한길사가 낸〈혼불〉은 드물게 많이 팔린 대하 장편소설이다.

한길사는 고집스럽게 인문학 출판을 고수하는 출판사다. 지금까지 만든 책은 약 2500종.〈로마인 이야기>〉15권은 만드는 데 13년 걸렸고 300만 권 팔았다. SK에너지 임원 2000여 명은 전원 열다섯 권을 동시에 구입해 매월 한 권씩 읽고 있다. 임직원들이〈로마인 이야기〉를 읽으면서 떠올린 경영아이디어를 모아 이 회사는 매달 한권씩 10여 권째 책을 만들고 있다. 한길사는 2008년 8월 그 내용을 간추려〈SK에너지 사람들 로마인 이야기를 읽다〉란 책을 펴냈다.

〈한국사〉는 27권은 80년대부터 90년대에 걸쳐 8년 동안 출간했다. 이이화의〈한국사 이야기〉24권은 10년 걸렸다.〈한길 그레이트 북스〉100권은 15년간 걸려 2008년 완간했다. 그는 “미술책 하나는 너무 안 나가 18권까지 내고서 손들었다”고 털어놓았다. 반면〈로마인 이야기〉,〈혼불〉은 효자같은 책이다.〈해방전후사의 인식〉은 15년 동안 꾸준히 팔렸다. 15년 전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고〈로마인 이야기〉출판을 추진했을 때의 일이다. 책이 나오기 전 시독회를 열었다. 50명에게 복사본을 나눠주고 토론을 시작했다. 49명이란 압도적 다수가 “내용이 정말 좋다”고 말했다. 그런데 대학생이던 나머지 한 명이 반대했다. 그는 “일본 여자가 썼기 때문에 반대”라고 말했다. 유럽을 점령한 후 그 지배계층을 로마 원로원에 끌여들였고 그들 가운데 여럿을 황제로 세운 로마사람들의 열린 자세를 다룬 책의 국내 출판에, 저자가 일본인이라는 이유로 반대한 것이다. 시오노가 ‘로마가 낳은 유일한 창조적 천재’라고 상찬한 카이사르는 집권 후 로마의 성을 모두 허물어버렸다. 식민지 주민도 일정기간이 지나면 자국민으로 편입시킨 나라가 로마였다.

김 사장은 “〈로마인 이야기〉가 팔려나가는 것 보고 우리 스스로도 놀랐다”고 말했다. “〈로마인 이야기〉가 한국 사회의 변화에 일정한 기여를 했다고 봅니다. 로마인들의 열린 자세, 세계화 전략이 국내 독자들에게 어필했고,〈로마인 이야기〉읽기 현상까지 나타났죠. 독자들은 시대를 앞서 갑니다. 그래서 지식인들이 겸손해야 합니다. 막상 삶의 현장은 지식인이 생각하는 것보다 휠씬 진보적이죠. 신경림 선생 말대로 현장의 사람들이 앞서갑니다.”


출판 CEO는 프로슈머 돼야

김 사장은 스스로 읽고 싶은 책을 기획한다. 고객 중심주의와는 거리가 있는 공급자 마인드다. 책을 만드는 사람들이 모두 이런식이라면 독자들이 불행하지 않을까? 자신은 공급자이기도 하지만 프로 독자라고 그는 말했다. 아무리 쉬운 책도 프로가 만들어야 독자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김 사장은 해직기자 출신이다. 기자는 학창시절 미래의 꿈이었다. 1974년 동아일보 기자들은 박정희 대통령 정권의 유신에 맞서 자유언론 실천운동을 벌였다.

그 대열에 낀 그는 이듬해 동료들과 신문사를 떠나야 했다. 취재현장으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작은 신문사에 몸을 위탁하다 한길사를 차렸다. 출판사 등록을 하려고 보니 웬만한 이름은 다 등록되어 있었다. 이참에 우리 고유의 것으로 짓자는 생각으로 ‘한길’이라는 이름을 골랐다. 하나의 길, 큰길, 옳은 길, 사람들을 많이 모으는 곳이란 뜻이다.

그의 꿈은 한길사가 한국의 대표 출판사로 자리매김하는 것이다.

“프랑스엔 이런 출판사고 있고, 일본엔 저런 출판사가 있는데 한국엔 한길사가 있다는 소리를 듣고 싶습니다. 우리가 만드는 책은 우리의 분신이죠. 한길사가 만드는 책이 후세에도 읽힐까? 그래서 훗날 사람들이 우리 책을 갖고 싶어하고 서가에 꽂고 싶게 만드느라고 내용도 내용이지만 디자인에 신경 씁니다. 매무새를 중시하다 보니 한길사 책은 단단하고 아름답다는 소리를 듣습니다. 출판은 이제 토털아트입니다.”

디자인에 공을 들이는 것은 시장의 안목이 높아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는 디자인이 차지하는 비중에 대해 30% 이상 된다고 말했다.

그는 언젠가 일선에서 은퇴한 후 북하우스에서 사람들에게 책을 안내하는 일을 하는 꿈을 꾼다. 여행을 좋아해 좋아하는 곳을 돌아다니면서 여행기를 쓰고 싶은 마음도 있다고 한다.

[정리=이범희 기자] skycros@dailypot.co.kr
[자료제공:좋은책만들기 (저자:이필재)]


#김언호의 HOW to Brand

▶ 좌고우면하지 말고 ‘한길’을 가라
한눈팔지 않고 자기 길을 가다 보면 좋은 날이 오게 마련이다. 그것이 세상 돌아가는 이치다. 한길사가 만든 책 중엔 시대에 대한 고민을 담은 것들이 많다. 김 사장은 좋은 책을 내야겠다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책 중 일부가 뜻밖에 많이 팔려나갔고, 이는 우리 사회에서 새로운 현상으로 받아들여졌다. 좋은 책이 사회의 변화에 촉매로 작용한 것이다. 김 사장은 남들은 외면하더라도 내야 할 책이라면 낸다고 말했다.

▶ 부정적인 사고를 버려라.
당신이 하면 기적 같은 일도 일어날 수 있다. 단 여러 사람과 손잡고 힘을 합쳐라. 김 사장은 늘 ‘된다’, ‘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생각을 하다보니 일을 많이 벌인다고 했다. 그가 나타나면 지인들이 “또 무슨일 벌이자고 할테니 우리가 피하자”고 농담을 건넨다고 말했다.

▶ 부지런한 것은 기본이다.
무슨일이든 남보다 손이 한 번 더 가면 품질이 좋아지게 되어 있다. 꼭 농사짓 듯하면 된다. 김 사장은 시골 출신이다. 아버지는 농사꾼이다. 그의 집 농작물은 다른 집에 비해 휠씬 잘 자랐다고 한다. 거름을 제대로 주고 정성껏 가꾸었기 때문이다. 그는 농사일도 책 만들기도 손이 부지런하면 질이 좋아진다고 말했다.

이범희 기자 skycros@dailyp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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