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태자들의 1분기 경영실적 비교
황태자들의 1분기 경영실적 비교
  • 우선미 기자
  • 입력 2010-05-06 12:01
  • 승인 2010.05.06 12:01
  • 호수 836
  • 22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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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선·조원태 웃고, 이재용·정용진 사촌형제 미소만
(좌측 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정의선 기아차 부회장 · 조원태 한진그룹 본부장 ·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 이재용 삼성전자 부사장

재계 대기업들의 1분기 실적이 발표됐다. 특히 이번 발표는 ‘왕좌에 앉을 자격’이 있는지 심사받는 황태자들의 첫 실적 발표라 더욱 이목이 집중된다. 경영권 승계가 예상되는 그룹 3세들의 진퇴는 그룹 실적과 연계되는 모양새를 보이고 있다. 최근 거침없는 행보를 하고 있는 정의선 기아차 부회장과 대한항공 조원태 본부장의 실적은 양호하다. 이재용 부회장이 있는 삼성전자도 높은 영업 이익을 올렸다. 반면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은 경영실적은 좋지만 엇갈린 분석이 나온다. 가격하락 정책으로 인한 성과라는 이유에서다. 그룹을 책임질 네 명의 황태자들의 경영성적표를 비교해본다.

제국의 왕위 계승 1순위에 있는 황태자. 그들이 ‘왕좌’를 놓고 ‘왕’에게 최종 평가를 드디어 받았다. 최근 발표된 2010년도 1분기 경영 실적표가 바로 그것. 이 실적은 황태자들이 그룹의 대표자로 오른 후, 처음 거쳐야 하는 ‘능력 평가’라는 점에서 그 성적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성적이 발표되자 안도의 숨을 내쉬는 이들도 있었고, 반면 씁쓸한 입맛을 다시는 이들도 있다. 과연 누가누가 좋은 평가를 받았을까.


1분기 최고 우등생은 정의선 기아차 부회장

대표적인 ‘우등생’은 정의선 기아차 부회장이다.

기아자동차는 지난 4월 23일 오전 여의도 신한금융투자타워에서, 지난 1분기 30만251대를 판매해 매출액 4조8607억 원, 영업이익 3098억 원, 당기순이익 3986억 원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매출 및 영업이익도 전년대비 38.8%, 248.6%나 증가했다. 당기순익은 309% 늘었다. 영업이익률 역시 매출액 대비 6.4%로 개선됐다.

때문에 앞만 보고 달려오던 정 부회장은 잠시나마 여유를 가질 수 있게 됐다.

1998년 현대차에 인수된 기아차의 뒤에는 항상 ‘현대차의 아류 혹은 방계’라는 오명이 따라 다녔다. 정 부회장이 가장 신경 써야 할 부분은 경쟁사의 차종뿐만이 아니라 현대차와 차별화해 경쟁에서 살아남는 것이었다. 때문에 정 부회장이 선택한 것은 ‘품질 경영’과 ‘디자인 차별화’다.

기아차 관계자는 “기술적으로는 사실상 현대차와 같은 차량인 만큼 디자인과 브랜드에서 차별화를 기할 수밖에 없다”면서 “수년간 독자적인 디자인 경쟁력과 차량 라인업을 다양화한 결실이 이제야 나타나는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2006년 가을, 당시 기아차 정의선 부사장은 ‘디자인 경영’을 선언하고 아우디와 폭스바겐의 디자인 책임자였던 피터 슈라이어를 디자인 총괄 부사장(CDO)으로 영입하는 등 디자인을 강화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이로써 선보인 것이 포르테. 자동차 시장 최대 격전장인 준중형 분야에서 월 판매 4000대를 넘어서며 ‘아반떼’와 경쟁 체제를 갖췄다. 포르테와 같은 해 시장에 선을 보인 모하비, 로체 이노베이션, 쏘울 등도 기아차의 라인업을 강화했다.

뒤를 이어 호랑이 코를 형상화한 K와 R시리즈를 출시했고 준대형세단 ‘K7’을 출시한 데 이어 지난달 소형 SUV 스포티지R, 중형세단 K5까지 출시하면서 기아차의 주축모델로 올라섰다. 이 중에서도 기아차의 판매를 이끈 일등 공신은 신차 K7과 경차 모닝이다.

쏘렌토R, K7 등 신차효과와 세계 주요 시장의 판매 회복세로 판매량은 전년동기대비 내수 32.7%, 수출 38.8%, 총 36.6% 증가했다.

기아차는 정 부회장을 2월 10일 사내 등기이사로 선임하며, ‘정의선 체제’의 초석을 다졌다. 정 부회장은 지난해 8월 기아차 사장에서 기아차 부회장으로 선임된 지 반년도 채 되지 않아 파격 인사가 또 이뤄진 것이다. 이 당시 정의선 부회장은 이미 경영실적을 인정받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현대·기아차 관계자는 “지난해에는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자동차 산업이 극심한 침체를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정 부회장이 품질경영을 앞세워 사상 첫 글로벌 판매 300만 대를 돌파하는 등 최대실적을 거둘 수 있도록 기여한 것이 높게 평가 받았다”고 말했다.


조원태 한진그룹 본부장도 회심의 웃음 지어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는 것은 정의선 부회장뿐만이 아니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장남인 조원태 본부장도 마찬가지다.

대한항공은 지난 4월 14일 여의도 한국투자증권에서 열린 기업설명회에서 올 1분기 영업이익 2202억 원, 매출 2조5990억 원 등 사상 최대의 1분기 실적을 올렸다고 밝혔다.

매출은 대한항공이 역대 1분기 최대 매출을 기록했던 지난해 2조2644억 원 대비 14.8%, 영업이익은 역대 1분기 최대를 기록한 2007년 1514억 원 보다 45.4% 증가한 수치다. 세전순이익은 전년대비 5263억 원 순손실에서 흑자 전환, 2269억 원을 기록했다.

조 본부장은 이 자리에서 매우 자심감 있는 모습을 보였다. 자신이 맡고 있는 ‘여객’ 부분 사업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음에 대한 만족도를 표현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조양호 회장도 아들의 실적에 만족스럽다는 표현을 여러 차례 한 것으로 알려진다.

조원태 대한항공 여객사업본부장은 “1분기가 국내 항공업계의 비수기인데도 불구하고 이만큼의 실적을 올린 것으로 봤을 때 성수기인 2, 3분기에는 최고의 실적을 냈던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실적을 낼 것”으로 전망했다.

조 본부장은 “현재 수요도 꾸준히 유지되고 있고, 회복세도 굉장히 빠르다”고 말했다.

저가항공사의 국내여객 점유율 증가에 대해서는 “저가항공과 대한항공은 시장이 달라 경쟁관계로 볼 수 없다”면서 “명품 좌석과 서비스로 무장한 대한항공, 가격 경쟁력이 바탕인 저가항공사는 개척할 수 있는 노선이 다르다”고 설명했다.

조 본부장은 “대한항공은 성장하는 저가항공시장에 대해 진에어를 통해 대응하고 개척해 나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한편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 경영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를 받은 조 본부장은 지난 2004년 10월 대한항공 경영전략본부 부팀장(차장)으로 입사했다. 조 본부장은 2006년 자재부로 부서를 옮기고 입사한 지 2년 만인 같은 해 12월 상무보로 승진했으며, 2007년 상무B, 2008년 상무A, 2009년 말 전무 자리에 올랐다.

현재 대한항공 지분 0.09%를 가지고 있는 조 본부장은 대한항공 외에도 2007년부터 IT자회사인 유니컨버스 대표이사에 이름을 올리고 있으며 ㈜한진의 등기이사로 등재돼 있다.

삼성전자 이재용 부사장도 좋은 실적을 내 아버지께 칭찬받았다. 그는 지난 4월 30일 삼성전자의 1분기 실적을 발표했다.


삼성전자, 시너지 효과 기대

삼성전자가 1분기에 34조 6381억 원 매출에 4조 4056억 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영업이익은 분기 기준으로 사상 최대 규모다.

삼성전자도 경기 회복세를 타 지난해에 이어 올해 1분기에도 좋은 실적을 거둔 셈이다. 삼성전자의 이와 같은 실적 호조는 지난해 1/4분기에 적자를 기록했던 반도체와 LCD등 부품사업에서 원가경쟁력 제고, 고부가가치 제품 확대로 수익성을 대폭 개선하고 휴대폰과 TV 등 주력 세트제품에서는 신흥시장 공략, 프리미엄시장 창출을 통해 시장지배력을 강화한 영향인 것으로 분석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연간 기준으로 매출 136조 5백억 원, 영업이익 10조 9천 2백억 원을 달성했다. 세계적인 금융위기 속에서 국내 기업으로는 최초로 ‘연매출 100조, 영업이익 10조 원’을 동시에 돌파한 것이다. 이것은 전세계적으로도 인텔과 도요타 등 3~4개 기업이 전성기 시절 외에는 올린 적이 없는 기록적인 성과.

한 업계 전문가는 “꼭 한해 전에 7천억 원이 넘는 적자를 기록했던 삼성전자가 1년 만에 사상 최대의 실적을 낸 것은 내부적으로 뼈를 깎는 비용 절감 노력에다 시장 지배를 위한 과감한 투자 전략이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라며, 여기에 “이 부사장의 강한 리더십이 효과를 증폭시켰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12월 15일 발표된 삼성인사 가운데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의 부사장 승진은 최근 단행된 재계 인사의 백미라고 할 수 있다. 이 부사장은 삼성전자의 최고운영책임자(COO)를 맡게 됐다. COO는 기업 내 사업을 총괄하는 책임자를 의미하며, 국내 기업에서는 수석 부사장이 겸임하는 직책으로 알려져 있다.

재계에서는 삼성그룹이 이재용 부사장에게 COO를 맡긴 것은 최고경영자(CEO)에 버금가는 역할을 부여했다는 의미로 해석하고 있다. 그만큼 이재용 부사장이 당시 자신의 경영능력을 여과없이 보여준 것이라는 뜻이다. 전문 경영인 이윤우 삼성전자 부회장이 이사회 의장직을 맡으면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고, 이재용 부사장이 경영 전면에 등장함으로써 이번 인사가 삼성의 경영구도를 ‘이재용 체제’로 본격 재편하는 시발점이라는 분석이 강하다.

지난해에 이어 삼성전자가 여전히 좋은 성과를 내고 있어 시너지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좋은 실적 불구 낙관 일러

1분기 실적 발표 후,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은 어리둥절한 표정이다. 좋은 성적을 냈음에도 세간의 평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정용진 부회장이 직접 키를 잡은 신세계호의 항해는 순조로웠다. 신세계의 1분기 총매출이 3조 5225억 원을 기록하는 등, 14.9%나 증가했기 때문이다. 신세계의 사상 최고의 경영 실적이다.

그는 올해 초부터 이마트의 ‘10원 가격경쟁’을 주도했다. 각 지점이 가격을 낮추게 유도함으로써 소비자들에게 가격은 싸지만 질 높은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의지의 발로에서다. 그의 공격적이고 거침없는 경영 행보는 백화점 경영에서도 적용됐다. ‘지역 1등 백화점’을 모토로 야심차게 오픈한 부산 센텀시티와 영등포 타임스퀘어점은 두 자릿수 매출 신장세를 보이고 있다. 또 지난해 리뉴얼한 강남점도 매출 1조 클럽을 벗어나지 않아 ‘효자 매장’으로 자리매김 했다.

이 뿐만이 아니다. 그는 ‘어깨에 힘을 뺀’ 소탈한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소비자들에게 신뢰와 믿음을 얻어내는데 성공했다.

정 부회장이 얼마 전에 개설한 트위터가 권위적이지 않은 ‘젊은 리더십’의 예이다. 트위터가 개설된 지 석 달이 지나지 않았음에도 6000명에 육박하는 방문자 수를 기록해 그 관심이 얼마나 큰 지 알 수 있다. 정 부회장은 트위터에 올라온 ‘이마트 주차장 간격이 좁아 카트가 들어가지 않는다’라거나 ‘신세계 백화점에서도 와이파이(wi-fi)가 될 수 있으면 좋겠다’ 등등의 소비자 불만 글에 직접 댓글을 달고 있다. 친근한 말투로 소비자와 소통하며 대중적인 지지를 얻고 있는 셈이다. 때문에 소비자들은 ‘정용진표 젊은 리더십’을 인정하며, 후계자의 꼬리표를 떼어낼 날이 멀지 않았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다.

죽전 신세계 백화점을 자주 이용한다는 김모씨(41·여)는 “CE0의 이런 소탈한 모습 때문에 백화점 이미지가 더 좋아 보인다”며 “이런 점이 크게 작용해 굳이 신세계 백화점을 이용하게 된다”고 털어놨다.

그러나 업계 전문가들의 평가는 조금 다르다. 한 업계 전문가는 “낙관하기에는 아직 이르다”라고 말했다. 정용진 부회장이 1분기 화려한 성적표를 받았지만, 이것은 지난해 경기침체로 인한 기저효과일 수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지난해 경기가 너무 어려웠기 때문에 영업이익 상승이 실제보다 더 과장돼 보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이마트는 최근 제조업체가 아닌 본 매장에서 상품의 가격을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신(新)가격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그런데 이마트가 1위 제조업체인 CJ제일제당, 농심, 진로 등을 누르고 순조롭게 이 제도를 시행해 나갈 수 있을지 관심이 주목되고 있다. 더군다나 ‘파리 날리는’ 중국 이마트의 대규모 적자를 청산해 나갈 수 있을지 불확실한 상황이라 귀추가 주목된다.

[우선미 기자] wihtsm@dailypot.co.kr

우선미 기자 wihtsm@dailyp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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