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드러운 카리스마로 건설업 평정하다”

모든 샐러리맨의 꿈은 CEO(최고경영자)다. 하지만 CEO 자리로 이끄는 왕도란 없다. ‘남이 가지 않은 길’을 찾아내어 전력투구할 뿐이다. 그렇다면 CEO들은 새로운 영역을 어떻게 개척해 나아갈까. 최근 출간된
이종수 효성그룹 건설부문 부회장 겸 진흥기업 대표이사를 만난 건 현대건설 사장 시절이다. 그는 현대건설을 자타가 공인하는 대한민국 간판 건설회사로 만든 인물이다.
“지금 같으면 그런 위기를 안 맞을 거예요. 실무자들이 ‘위험하다, 그 공사 맡으면 분명히 손해 본다’ 그렇게 나오면 안 하면 되는 거죠. 그런데 그 시절엔 오너가 하라고 하면 하는 분위기였습니다. 무조건 공사를 맡고 나서는 방향 수정도 못하고 계속 간 거죠.”
이종수 현대건설 사장(인터뷰 당시 직함)에게 “지금처럼 자율을 강조하는 분위기였다면 과거 거액의 해외 미수금이 발생한 위기를 안 맞을 수도 있었느냐”고 물었더니 돌아온 답이다.
2007년부터 이어지고 있는 건설 불황에도 현대건설은 잘 나가고 있다. 2002년 흑자 전환에 이어 이 사장이 사령탑을 맡은 2006년 사상 최대 순익을 냈다. 2008년에도 매출 수주 순익 면에서 사상 최대의 실적을 기록했다. 수주 물량은 6년치 39조 원에 이른다.
미분양 물량도 가장 적다. 현대건설을 자금난에 빠뜨렸던 이라크 미수 채권 회수 협상도 15년 만에 타결됐다. 원금을 상회하는 6억 8130만 달러를 받기로 하고 2006년 여름 약 1035만 달러를 첫 이자로 받았다. 2019년까지는 이자만, 2020년부터 2028년까지는 원리금을 6개월 단위로 달러로 받았다.
수익성 중심 경영의 중심엔 30년 현대건설맨 이 사장이 있었다. ‘이종수 경영’의 키워드는 자율과 배려다.
“부서장들에게 ‘당신이 결정해 추진하라’고 합니다. 사장이 결정해야 할 일만 들고 오라고 하죠. 하지만 사장실 문은 항상 열어 놉니다. 누구든지 필요하면 들어오고 보고할 건 하고, 할 말도 하라고 합니다.”
사장 결재 받을 일이 없는 차장 이하 직원들과는 해마다 간담회를 한다. 인터뷰를 할 무렵엔 임원을 배제하고 부장급 간부들과 2주 동안 매일 아침 그룹별로 조찬모임을 했다.
딱히 주제가 정해지지 않은 이런 자리에서 나온 아이디어가 채택돼 경영개선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자율경영의 부수적인 효과는 직원들이 과거와 달리 사장을 어려워하지 않는 다는 것. 사장과 마주쳐 좋을 게 없다고 생각하던 직원들이 언젠가부터 출근길이나 복도에서 사장과 마주치면 스스럼없이 인사를 했다.
자율경영의 가장 큰 성과는 상명하복식이었던 조직문화가 바뀌었다는 것이다. 직원들이 능동적으로 변했고 자연스레 응집력이 생겼다.
최대 실적 비결은 위임형 리더십
그는 현대건설이 턴어라운드(흑자 전환)하는 데에는 구성원들이 하나가 된 것이 큰 힘이 됐다고 말했다. “그 어떤 경영 기법보다 서로 마음을 합친 것이 큰 동력이 됐습니다. 물론 현대 정신이 바탕이 됐죠. 건설사든 제조업체든 업종 불문하고 아무리 어려워도 직원들을 결속시키면 턴어라운드할 수 있습니다. 급여를 많이 줘야 하는 것도 아니에요. 적게 받아도 마음이 맞으면 됩니다. 우리 회사도 지금은 업계 최고 수준이지만 3년 전엔 아니었습니다. 제가 전무로 있으면서 급여를 올리자고 해 계속 올렸죠.”
자율경영은 실무자 시절부터 그의 마음속에 있었다.
이 사장이 처음부터 잘 나간 건 아니다. 과장 차장을 달 땐 첫 진급심사에서 누락됐다. 89년 말레이시아 지점 현장근무를 마치고 들어오면서 부장 대우로 기획실에 발령을 받았다. 처음 만들어진 기획실은 고유 업무를 만들어내는 것부터가 일이었다. 그는 일하는 방식을 능동적으로 바꾸었다. 항상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매사에 적극적으로 매달리니 안 되는 일이 없었다. 적극적으로 하니 승진도 빨랐다. 기획실 발령이 그에게는 터닝 포인트가 됐다.
“시련을 견디면서 단단해졌습니다. 인내심도 생기고 겸손해졌죠. 그때 승승장구 했다면 여기까지 못 왔을 겁니다.”
이 사장의 좌우명은 상선약수다.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는 뜻이다. 물처럼 살겠다는 좌우명이 부드러운 그의 외모를 빚어내고 온화한 카리스마란 별명까지 낳게 한 건 아닐까. 얼굴의 좌우 불균형이 심했던 링컨은 “사람은 나이 40이 되면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정리=이범희 기자] skycros@dailypot.co.kr
[자료제공:좋은책만들기 (저자:이필재)]
#이종수의 HOW to Brand
▶ 낙천적인 태도가 인생을 바꾼다.
“나는 본래 고민을 많이 하는 타입이었다. 삶을 대하는 태도를 낙천적으로 바꾸고 나니 매사에 적극적인 사람이 됐고 일도 잘 풀렸다” 이 사장은 “고민하고 소극적으로 대처했을 땐 안 되던 일이 동원할 수 있는 자원을 풀가동하니까 되더라”고 말했다. 그 과정에서 인맥을 찾아내느라 동창회 명부, 인명록 등을 뒤졌고, 심지어 모르는 사람에게까지 의견을 구하고 자료를 요청했다고 귀띔했다.
▶ 젊은 날의 시련은 성장 통이다.
“나는 과·차장 진급에서 뒤처졌다. 좌절감도 맛봤지만 인내심이 생겼고 겸손해졌다. 그 덕에 결국 CEO자리에 올랐다” 이 사장은 마음고생이 심했던 시절 ‘회사가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 건 아닐까’하는 생각도 들었다고 말한다. 다른 길을 찾아야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밤잠을 설쳤다. 그러나 자리를 지킨 끝에 첫 직장에서 CEO가 되는 영광을 안았다.
▶ 배려가 사람 마음을 움직인다.
사람은 돈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마음을 얻어야 움직인다. 배려는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다. 이 사장의 제안으로 현대건설은 강당 시무식을 없앴다. 대신 사장 이하 전 본부장이 새해 첫날 로비에서 악수로 직원을 맞는다. 단상과 단하로 나뉘는 시무식을 마주서서 나누는 악수로 대체한 것도 구성원에 대한 작은 배려에서 나왔다.
정리=이범희 기자 skycros@da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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