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에도 끄덕 없는 국내 1호 생활가전 전문기업CEO

“여성의 마음으로 모든 제품을 만들었다”
모든 샐러리맨의 꿈은 CEO(최고경영자)다. 하지만 CEO 자리로 이끄는 왕도란 없다. ‘남이 가지 않은 길’을 찾아내어 전력투구할 뿐이다. 그렇다면 CEO들은 새로운 영역을 어떻게 개척해 나아갈까. 최근 출간된
“최선을 다해 최고의 제품을 만들어 부자나 가난한 사람, 누구나 쓸 수 있는 가격에 공급하는 겁니다. 그게 우리 회사가 고객을 사랑하는 방법이죠”
한경희 한경희생활과학 사장은 “보이지 않는 고객을 진심으로 사랑한다면 편의성은 물론 가격 면에서도 합리적인 제품을 만들어 모든 사람의 삶의 질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물질만능주의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도 살 수 있는 가격을 실현하겠다는 것. 식상한 감이 드는 고객사랑 타령에 “눈에 보이지도 않는 고객을 어떻게 사랑하느냐”고 묻자 돌아온 답이다. 한 사장은 국내에서 온돌문화에 맞는 스팀청소기라는 ‘블루오션’을 창출했다. 이후 대기업을 비롯해 많은 기업이 진출하고 유사품이 넘쳐났지만 선도기업의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품질의 우위를 지켰기 때문이다. 한 달에 유사품이 두 개씩 나온 적도 있지만 지금은 거의 퇴출됐다.
“대기업이 들어와도 살아남으려면 품질 경쟁력을 잃지 않는 길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기 위해 편의성을 높이고 에러를 없앴죠. 최대한 간단하게 만들었어요. 다행히 원자재도 대기업 수준으로 싸게 살 수 있었죠”
한경희 생활과학은 매출액의 약 3%를 연구개발에 투자한다.
한경희생활과학은 회사 브랜드와 CEO브랜드가 같다. 미국에서도 HAAN이란 브랜드로 팔린다. 2002년 출시한 2세대 제품부터 그는 스팀제품에 자신의 이름을 붙였다. 한경희 스팀청소, 한경희스팀진공, 한경희스팀다리미, 한경희음식처리 미니, 창업 3년차 CEO로서는 무모해 보이기까지 한 결정이었다.
회사브랜드와 CEO브랜드가 같은 기업
경희는 비교적 흔한 이름이다. 학교에 다닐땐 거의 해마다 같은 반에 경희가 있었다. 그래서 생긴 이름에 대한 콤플렉스를 한경희란 브랜드가 뜨면서 그는 한방에 날려버렸다.
“HAAN이란 브랜드 덕에 미국 시장에서의 성과가 10%는 더 커졌을 거에요. 삼성이나 현대도 미국시장에서 새 브랜드로 런칭했다면 아마 더 성과가 컸을 겁니다. 도요타가 렉서스로 접근했듯이 말이죠. 미국시장에 진출할 때 품질만 받쳐준다면 시장 친화적인 브랜드로 바꿀 필요가 있어요”
한경희 제품을 쓰자고 처음 제안한 사람은 남편이었다. 창업 초 5년 동안 일이 안 풀릴 때마다 “날이 밝기 전이 가장 어두운 법”이라며 힘이 되어준 사람이었다.
한경희 생활과학은 로봇청소기도 개발했지만 시판을 미루고 있다. 가격대비 성능, 고객의 눈으로 보자면 비용대비 효용이 만족스럽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개발해 놓고 출시하지 못한 제품이 여럿 있다고 말했다.
사실 한 사장은 사업을 시작한 후 ‘걸어다니는 민폐’라는 별명이 붙었다. 집 담보로 빌린 돈이 바닥나 시댁에 친정 집을 담보로 잡혔다. 4년이 넘도록 직원들 봉급을 제때 못 줬다. 숱한 난관 중에 여자라서 겪는 어려움은 설움까지 안겼다. 벤처붐이 일 때 그는 정부지원금을 신청했다. 당시 정부기관 등에서 정부지원사업의 사업성을 평가하는 사람은 예외없이 남자였다. 여자 사장이라고 CEO점수는 0점, 여성이 주사용자인 제품이다 보니 제품성도 0점이기 일쑤였다. 심지어 이름만 걸어놓은 바지사장으로 취급하기도 했다.
하지만 잘 만든 청소도구 하나가 남성 우위의 문화를 바꿨다. 여성 사업가들의 가사 부담을 덜어주었음은 물론이다.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은 것은 제품에 대한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무릎 끊고 하던 걸레질을 서서 할 수 있는데다 스팀으로 닦으니 힘을 쓸 필요도 없었다. 더욱이 청소를 마치고 나면 휠씬 더 깨끗하고 살균까지 됐다.
한경희 제품에 대한 로열티를 끌어낸 건 독보적인 품질이다. 그는 생산자 겸 소비자(프로슈머)로서 고객의 눈높이를 맞췄다. 엔지니어는 100% 남자였지만 의사결정을 주로 그가 했다. 제품개발 과정에서 소비자 입장에 서서 써보고 아니다 싶으면 제동을 걸었다. 어음거래는 하지 않았다.
“회사를 빨리 키우려면 상장하는 게 유리할 수 있죠. 그런데 상장하면 실적 여하에 따라 구조조정을 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느니 우리 직원들 먹고 살고, 회사는 회사대로 안정적으로 성장하는 길을 가려고요. 제품력으로 글로벌 기업이 되고 싶은 거지, 상장하고 인수합병 등으로 성장해 글로벌 기업이 될 생각은 없습니다”
[정리=이범희 기자] skycros@dailypot.co.kr
[자료제공:좋은책만들기 (저자:이필재)]
#한경희의 HOW to Brand
▶ 신뢰는 브랜드의 다른 이름이다.
신뢰는 브랜드 가치를 높여준다. 제품에 대한 고객의 신뢰는 회사에 대한 신뢰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한 사장은 “소비자는 현명하다”고 강조한다. 그 현명한 소비자를 신뢰해야 한다고 말한다. “경쟁사보다 더 좋은 제품을 더 싼값에 내놓으면 언젠가 소비자들이 사줄 것이라는 믿음을 잃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 성실만한 성공의 조건은 없다.
성실은 성공의 필요조건이다. 성실하게 일하고, 성실하게 사람을 대하면 언젠가 성공이 따라오게 되어 있다. 한 사장은 “성실성과 사회적인 성공 사이에는 어느 정도 상관관계가 있다”고 말한다. 이런 철학은 스팀청소기에도 고스란히 녹아 있다. 제품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사소한 차이점도 비교, 검토하고 실험하고 모니터링해서 최선의 선택을 해 나갔다. 그는 “한경희 제품을 와트 수만 보고 베낀 유사품과는 제품에 담긴 철학부터 다르다”고 주장했다.
▶ 살아남아야 브랜드가 된다.
제품만 좋다면 언젠가 팔 수 있다. 그러나 포기하면 거기서 끝이다. 길에 나앉을 각오로 죽어라 매달리면 살아남는다. 죽어서 이름을 남길게 아니라 살아남아 브랜드가 돼라. 한 사장은 또 시장친화적인 브랜드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HAAN이란 브랜드로 미국 시장에 진출한 덕에 성과가 10%는 더 컸을 것”이라는 그는 “품질에 자신 있으면 도요타의 렉서스처럼 미국시장에서 시장 친화적인 브랜드로 승부하라”고 권한다.
정리=이범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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