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브랜딩 제 4 탄 광동제약 최수부 회장
CEO 브랜딩 제 4 탄 광동제약 최수부 회장
  • 정리=이범희 기자
  • 입력 2010-03-22 16:01
  • 승인 2010.03.22 16:01
  • 호수 830
  • 25면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방 외길 최씨 고집’으로 알짜 제약회사 일군CEO

“한 우물 판 노하우로 국민기업 만들 터”

모든 샐러리맨의 꿈은 CEO(최고경영자)다. 하지만 CEO 자리로 이끄는 왕도란 없다. ‘남이 가지 않은 길’을 찾아내어 전력투구할 뿐이다. 그렇다면 CEO들은 새로운 영역을 어떻게 개척해 나아갈까. 최근 출간된 (좋은 책 만들기)는 성공한 CEO16인의 사례를 통해 ‘셀프 브랜딩’을 이정표로 제시한다. 이에 [일요서울]은 박용만 두산·인프라코어 회장을 필두로 최고 CEO들의 경영 브랜딩에 대해 알아본다. 이번호는 광동제약 최수부 회장의 이야기다.

“요즘 기업 환경이 어려우니까 중소기업인들이 약한 소리를 합니다. 이럴 땐 조직을 줄이고, 사장이 직접 뛰어야 합니다. 인내심을 발휘해 경기가 좋아질 때까지 어떻게든 버텨야죠”

46년 한방 외길을 걸어온 최수부 광동제약 회장은 “요즘 신입사원은 집에서 왕자와 공주로 커 사회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한다”고 안타까워했다.

최 회장은 열두살 때 전 재산을 날리고 실의에 빠진 아버지를 대신해 소년 가장이 됐다. 아홉 식구의 생계를 떠맡아야 했던 그는 도둑질 말고는 안 해본일이 없다고 한다. 그러느라 초등학교를 4년 만에 중퇴했다.

사업을 시작한 후엔 모함을 당해 99일 동안 억울한 옥살이를 한 적도 있다. IMF체제 당시 부도 위기도 겪었다. 온갖 역경을 이겨 낸 그의 눈에 요즘 사람들은 너무 나약해 보인다.

맨 주먹으로 시작해 3001억 원 매출(2009년 목표)의 제약회사를 일군 그는 이름 그대로 ‘빼어난 사나이’다. 2004년 펴낸 자서전 <뚝심 경영>에서 그는 지금의 전방위적 경제난국을 예견이라도 한 듯 ‘대한민국 사장 여러분, 포기하지 맙시다’라고 썼다. 직원들을 생각해서라도 당당히 재기하라고 ‘선동’했다.

특유의 뚝심은 유년시절부터 엿보였다. 그는 가방끈이 짧지만 그 때문에 무시당한 적은 별로 없다고 털어놨다.

“스스로 나를 낮춰 처신한 덕이죠. 겸손은 기업하는 사람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덕목입니다”

최 회장은 창업주 CEO로는 드물게 TV 광고에 몇 차례 출연했다. 10여 년 전 우황청심원 광고에서 “다른 건 몰라도 우황 고르는 일만큼은 30년째 내 손으로 해오고 있다”고 밝힌 그는 요즘도 우황·사향·웅담 등의 약재를 직접 확인하고 오케이를 놓는다. 또 한달에 두 번 공장을 찾아 무작위로 약재의 품질을 검사한다.

품질이 수익의 원천이라는 믿음은 쌍화탕을 제조하면서 몸에 배었다. 1975년 쌍화탕 제조사들이 약재를 제대로 쓰지 않은 쌍화탕을 출고가 30원, 소비자가격 50원에 팔 때였다. 쌍화탕을 본격적으로 만들고 싶었지만 과당경쟁으로 당시 보건사회부로부터 제조 허가를 받을 수 없었다.

쌍화탕을 만들던 작은 제약회사 서울신약을 합병한 그는 제대로 된 쌍화탕을 제조해 출고가 70원, 소비자가격 100원에 내놓았다. 약국에 샘플을 돌리자 약사와 그 가족들이 먼저 먹기 시작했다. 6개월만에 150만 병이 팔려나갔다. 3000만 병이 팔리자 구로동 공장 앞에 도매상 차량들이 줄을 섰다.


국민음료로 우뚝 선 ‘비타 500’

광동제약의 1등 제품 중에서도 첫 손에 꼽히는 ‘비타500’은 정제 비타민이 연간 50억 원어치씩 팔리는 것을 보고 착안했다. 최 회장은 이미 경옥고와 우황청심원을 드링크 또는 현탄액으로 만든 경험이 있었다.

갈수록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가니 마시는 비타민을 만들면 박카스보다 오래 갈 것 같았다. 액상 비타민은 정제보다 흡수도 빠르다. 문제는 맛이었다. ‘이 정도면 되겠다’는 맛을 만들어내는 데 7~8개월 걸렸다.

그의 꿈은 2세가 회사를 물려받아 국민 제약회사로 키우는 것이다. 그의 아들이 바로 최성원 광동제약 사장이다. 16년 전 서울대 경영학과를 나온 최 사장이 광동에 첫 출근하기 전 그는 아들과 대화를 나눴다. 엄하게 키워 “누나들보다 나에게 더 가혹하시다”고 했던 외아들이다.

최 사장을 포함해 최 회장 측의 광동제약 주식 지분은 약 21%다. 2만 4000여 명의 개인 소액주주가 약 60%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오너가 절대 지분을 쥐고 있는 무늬만 상장사가 아니다.

최 회장은 그래서 창업은 자신이 했지만 광동은 공기업이라고 주장한다. “80세 넘어서도 명예회장으로 있으면서 가르칠 건 가르칠 겁니다. 은퇴해 버리면 겉늙어서 안돼요. 경영 승계 후에도 2세가 국민의 신뢰를 받고 주주에게 존경받는 기업으로 키울 겁니다. 인류의 건강을 지키는 멋진 기업으로 커갈 거예요. 4년 후면 창립 50주년인데 그때까지는 한우물을 팔 생각입니다. 2세 체제에서 다른 좋은 사업을 잘 골라서 하겠다면 말리지는 않을 생각입니다”

[정리=이범희 기자] skycros@dailypot.co.kr
[자료제공:좋은책만들기 (저자:이필재)]


#최수부의 HOW to Brand

▶ 끈기와 배짱이 자산
‘최씨 고집’이라는 브랜드는 끈기와 배짱에서 나왔다. 거기에 착실한 고객관리를 더했다. 사람에 대한 신뢰가 제품에 대한 신뢰로 이어졌다. 최 회장은 경옥고 외판원 생활 3년 만에 광동제약 창업자금을 마련했다. 3년 연속 판매왕에 오른 그가 그 시절 받은 수당은 몇십 명이나 되는 동료들의 수당 총액보다도 많았다. 그렇게 벌면서도 그는 수제비로 점심을 때웠고 품고 다닌 접대용 고급 담배엔 손을 대지 않았다.

▶ 신용을 얻으면 다 얻는다.
돈을 얻으면 조금 얻는 것, 명예를 얻으면 많이 얻는 것, 신용을 얻으면 모두 얻는 것이다. 반대로 신용을 잃으면 다 잃는다. 최 회장이 세상에 얼굴을 알린 건 직접 출연한 우황청심원 TV광고 덕이다. 10여 년 전 전파를 탄 이 광고에서 그는 “우황 고르는 일만큼은 30년째 내 손으로 한다”고 밝혔다. 그는 사람들이 “오너가 저런 집념으로 품질관리를 한다면 제품을 믿을 수 있지 않겠느냐”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도 우황·사향·웅담 등의 약재를 직접 확인한다.

▶ CEO는 움직이는 광고판이다.
사람들은 CEO의 처신을 보고 해당 기업의 이미지를 형성한다. 남의 눈길이 닿지 않는 곳에서조차 언행을 삼가라. 최 회장은 스스로 자신을 낮춰 처신한 덕에 가방끈이 짧지만 남들에게서 무시당한 적이 없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겸손은 기업 하는 사람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덕목”이라고 강조했다.

정리=이범희 기자 skycros@dalysun.co.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