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정책 뒷전에 건설사 이자놀이 논란
서민 주거 안정을 위한 민간 임대아파트 폐해가 심각하다. 임대아파트를 시공한 건설사 부도로 보증금을 날린 사례가 분분한데 이어, 최근 서울인근에선 건설사들이 임차인을 상대로 이자놀이를 하기 위해 임대아파트를 건설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충격을 주고 있다. 성남 판교의 모아건설아파트의 33평형 경우 보증금은 시가 2억7000여만 원의 90%에 해당하는 2억4000여만 원에 월 임대료는 59만 원이다. 웬만한 전세금보다 보증금이 높다. 이 때문에 판교임대 아파트 건설사들은 불법 입주자모집공고를 통해 입주자들로부터 수천억 원의 보증금을 더 받아냈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입주자들은 “건설사들이 임차인의 선택권을 무시하고 법정보다 더 높은 보증금을 받았다”고 주장해 법정공방으로 이어졌다. 문제 건설사는 광명토건, 모아건설, 대방건설, 진원이엔씨. 이들은 “입주자들이 계약 조건에 동의했기에 계약은 유효”라며 맞서고 나서 귀추가 주목된다.판교신도시 임대 아파트 표준임대보증금 초과분을 둘러싸고 법정 공방이 한창이다. 17일, 서울고등법원 민사8부(재판장 김창보 부장판사)는 원고 우모씨 등이 제기한 ‘보증금 부당이득반환청구’ 항소심 사건에서 “모아건설은 우모씨외 11인의 입주자에게 2억5000여만 원을 지급하라”며 입주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판교 신도시 ‘울며 겨자 먹기식’ 입주
2006년 4월 판교신도시 임대아파트 4개 건설사는 표준임대보증금에 대한 안내 없이 전환임대보증금과 월 임대료만 공지했다. 모아아파트의 33평형 경우 보증금은 시가 2억7000여만 원의 90%에 해당하는 2억4000여만 원에 월 임대료는 59만 원이다. 웬만한 전세금보다 비싼 보증금 때문에 꿈에 부풀었던 입주자들은 놀라 입이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보증금 부담 때문에 당시 52%의 입주자가 입주를 포기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의무거주기간 10년의 반만 거주하면 ‘내 집’이 된다는 사실에 발길을 다시 임대주택쪽으로 돌렸다. ‘울며 겨자 먹기’로 입주를 결심했다는 것.
‘보증금 선택권 박탈’ 입주자 억울
임차인 우모씨 등은 임대주택법 등 관련법령에 ‘공공택지 개발의 임대보증금은 건설원가의 50%(표준임대보증금)를 넘을 수 없다’는 규정을 알게 됐다.
우씨 등은 건설사에 ‘보증금 부당이득반환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우씨는 “보증금에 대한 선택권을 박탈당했다. 표준임대보증금을 초과한 보증금을 돌려 달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임대아파트는 건설사가 월 임대료 일부를 건설 원가의 90%까지 보증금으로 전환할 수 있다. 이익을 적게 내는 대신, 건설사들에게는 보장되는 것이 많다. 용적률 인센티브 20%, 표준건축비 평균 25.3%, 각종 세제 감면 등 갖은 혜택이 보장된다”면서 “건설사들은 이런 사실을 쏙 빼고 전환임대보증금을 기준으로 분양공고를 낸 것이다”라고 말했다.
한국주택공사의 경우 표준임대보증금을 기준으로 입주자 모집 공고를 하고, 입주 후 개인이 보증금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실질적으로 우씨가 표준임대보증금을 선택할 수 있었다면 연간 1080만 원의 임대료만 납부하면 된다. 하지만 그는 전환임대보증금을 선택함으로써 연간 임대료(708만 원)와 은행대출에 따른 이자비용(600만 원)등 총 1308을 지출하게 됐다.
건설사가 입주자들에게 전환임대보증금으로 계약을 체결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입주자들과 전환임대보증금으로 계약을 체결한 건설사들은 추가 보증금으로 예치이자를 얻고 있었다. 우씨는 계약 체결 당시, 이자율이 4%였다. 이를 적용하면 모아건설은 연간 400만 원 이상의 이자수익을 얻는다.
원고 측은 4개 건설사들이 1696세대와 전환임대보증금으로 계약을 맺어 가구당 1~2억씩의 추가 현금을 확보한 것으로 추정했다. 우씨는 건설사들이 연간 100억 원의 이자를 불로소득으로 올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소송을 담당한 이재명 변호사는 “건설사들이 확보한 추가 보증금은 총 2000억~3000억 원에 달한다. 이를 통해 연간 100억 원 이상의 이자소득을 올렸다”고 말했다. 이런 현금 확보성 때문에 건설사들은 표준임대보증금보다 전환임대보증금을 선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건설사들 불법 공고 인정… 계약은 ‘유효’
광명토건, 모아건설, 대방건설, 진원이엔씨 등 4개의 건설사들도 입주자모집공고가 불법이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모아건설 관계자는 “입주자 모집 공고에서 표준임대보증금을 누락한 것은 우리 잘못”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보증금이 너무 높으면 계약을 안했으면 될 것 아니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입주자들이 임대조건과 건설원가를 충분히 알고 계약을 맺었기 때문에 이제 와서 계약을 해지할 수 없다는 것이다.
건설사들은 또 임대보증금을 높인 만큼 월 임대료가 줄어들기 때문에 입주자들이 피해를 보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현재 모아건설 등은 대법원에 상소를 준비하고 있다.
중심 못 잡는 법원
문제는 중심을 잡지 못하는 법원에 있다는 게 소송 당사자들의 주장이다.
지난해 10월, 1심인 수원지법 성남지원 민사3부(재판장 오재성)는 “건설사는 입주자 우씨에게 1억천만여 원을 지급하라”는 원고승소 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이와 당해 9월에 이와 비슷한 타 사건에서 민사지원 민사1부(재판장 박광근)는 모아건설에게 부당이득금 반환의무가 없다고 판단했다.
이 재판부는 “임대보증금의 액수가 입주자들의 우선 분양권을 사실상 박탈하는 정도에 이르렀다고 단정할 수 없다”며 “또 원고들이 임대차계약을 체결하면서 임대보증금 전환에 ‘묵시적으로’ 동의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입주자들이 입주자모집공고에 기재한 보증금을 임대보증금으로 착각했다는 말이다. 이에 대해 이재명 변호사는 “핵심은 건설사가 입주자들의 보증금 선택권을 침해했다는 것”이라며 “이것은 기망행위기 때문에 계약 자체는 무효이다”라고 강조했다.
이번 소송은 국민의 주거안정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임대아파트의 보증금 문제는 서민의 주거기반을 흔드는 커다란 사건이다. 이 때문에 정부는 물론 일반인조차 이번 소송의 대법원 판결에 주목하고 있다.
[우선미 기자] wihtsm@naver.com
우선미 기자 wihtsm@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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