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겐 내일이 있다”

미래 기업의 핵심역량 중 하나는 학습문화이다. 그리고 뛰어난 리더십의 불가결한 요소는 리더의 솔선수범이다. 솔선수범해서 열심히 독서하는 CEO의 모습은 그 자체로 기업의 경쟁력이 된다. 그렇다면 우리시대를 이끌어가는 ‘재계 고수들’의 특별한 성공 지혜법은 무엇일까. 올 초 출간된 <책 읽는 CEO>(비즈니스북스)는 이런 물음에 대해 해답을 제시한다.
이 책은 리더십과 학습문화의 융합이라는 바람직한 경영패러다임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경영교과서로 자리매김한다. 이에 [일요서울]은 LS전선 구자열 회장을 필두로 한국 최고경영자들의 학습관에 대해 알아본다. 이번호는 CJ라이온 위규성 사장편이다.
성공한 경영자들에겐 특이한 부분이 하나씩은 있다. 예컨대 뭐 하나에 빠지면 꼭 끝장을 보고야 마는 성미라든가, 머리가 정말 좋다든가 아니면 부지런한 것에 있어서는 둘째가면 서러워할 정도로 성실하다든가 등. 물론 이런 식의 분류에 해당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그래도 무언가 특별한 것이 있기는 하다. 그런 면에서 CJ라이온 위규성 사장은 특별함 그 자체였다. 첫 대면부터 조금 남달랐다. 명함을 주고받고 악수를 나누고 자리에 마주앉기까지의 일련의 과정들은 남들과 다르지 않았지만 그 이후가 ‘특별’했다. 그는 여타 CEO들과는 달리 자신에 대한 프로필을 직접 만들어 건넸다. 그의 프로필은 너무나 예상 밖이었다.
프로필에 쓰지 않는 띠부터 정권의 혜택을 받았다는 등 불편할 수 있는 문구들이 들어가 있었다.
나는야 ‘운 좋은 남자’
위규성 사장은 자신을 가리켜 ‘운이 정말 좋은 남자’라고 했다. 설마 하는 마음으로 얼굴을 쳐다봤지만 그는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젊은 시절부터 운이 좋아서 지금의 자리에 쉽게 오를 수 있었다는 것. 그런 그의 모습은 너무나 낯설었다.
성공한 경영자들을 생각하면 으레 연상되곤 하는 ‘소파에 몸을 기대고 잰 체하는 표정을 짓는’ 이미지와 정반대였기 때문이다. 솔직하면서도 한편으론 익살맞은 그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의자를 당겨 앉았다.
위 사장의 말을 그대로 옮기면 그는 ‘떡잎부터 알아볼 정도’로 눈에 뛸 것 없는 평범한 아이였다. 그랬던 그가 ‘운발’을 받기 시작한 것은 고등학교 입시 때부터였다. 당시엔 고등학교에 진학하기 위해 시험을 치르는 것이 통례였다. 하지만 그가 중학교 3학년이 되어 막 수험생이 될 찰나, 법이 바뀌어 ‘뺑뺑이’로 학교에 진학할 수 있게 됐다.
사람들 사이에선 대통령 아들이 공부를 못했는데 아들의 고등학교 진학을 위해 입학시험 제도를 없애고 추첨으로 학교를 배정하게 되었다는 말이 소문으로 나돌았다.
위 사장은 자신을 ‘책 안 읽는 CEO'라고 소개했다. 근거가 좀 빈약하다싶었지만 자신을 책 안 읽는 사람으로 분류하고 있었다.
이유는 어린 시절에 있었다. 위 사장은 어릴 때 부모님께 ‘책 좀 읽어라’라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잔소리를 많이 들었으니 귀에 인이 박혀서라도 책을 읽는 시늉을 했을 텐데, 그는 그래도 ‘안 읽었다’고 했다.
책이 좋은 것은 그도 알고는 있었다. 어린 나이에도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책을 읽으라고 하는 데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지 않겠는가 하는 멀쩡한 생각을 할 정도였다. 생각은 있었으나 실천에 옮기지 않았던 것은 마음이 내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반전이 시작된 것은 경영자의 자리에 올라서부터였다. 2004년 12월 1일 CJ에서 생활사업본부를 떼어 내고 일본의 라이온사가 자본금을 대면서 ‘CJ라이온’이 탄생했다. 위 사장이 CJ라이온의 경영진으로 온 것은 그로부터 2년 뒤였다. 사장 자리에 와보니 인력 문제가 심각했다. 사업을 하려면 숙련된 사업이 필요했는데 정작 뚜껑을 열고 보니 영업 인력이 턱없이 부족했던 것이다.
영업직 사람을 뽑으면서 그때 처음으로 ‘책’을 떠올렸다. 4년, 5년차 영업사원들을 설득하는데 책만 한 게 없단 생각에서였다. 어느 정도 현장 경험이 있는 영업사원들은 아무리 조언을 해도 잘 듣질 않는다. ‘현장이 최고다. 몸으로 부딪히면 된다’는 생각이 강한 탓이었다. 현장이 중요하다는 것에는 위 사장도 공감했지만 영업사원들을 중무장시키기 위해서는 좀 더 근본적인 방법이 필요했다. ‘생각을 바꾸는 것’, 이것이 그가 생각해낸 해답이었다.
그러나 이유는 비단 그 뿐만이 아니었다. 사실 책에 대한 갈망은 그에게도 있었다. 조금 더 많은 것을 알고 싶었다. 그리고 그간 책을 통해 알았던 것들을 나눠주고 싶다는 생각이 가슴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래서 위 사장은 과감히 책 읽기 모임을 시작한다. 그냥 아무렇게나 책을 읽을 순 없었다. 책 전문가들에게 직원들과 함께 읽을 만한 책을 추천받았다. 또 독서 모임을 운영하는 방식도 전수 받았다.
이왕 시작한 김에 독서 모임에 이름도 붙였다. 캡스(CAPS)다. ‘Change Agent with Passion'의 약자였다. 처음엔 본사 직원들을 대상으로 시작했다. 첫 석 달간은 한 달에 한권씩 세권을 읽었다. 그때 읽은 책 중 하나가 미국 마케팅 전문가 세스고딘이 쓴 <보랏빛 소가 온다>였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소는 전형적이다. 뚜렁뚜렁한 눈에 누런 털색을 자랑하거나 얼룩덜룩한 무늬가 있는, 누구나 ‘소’하면 떠올릴 만한 이런 소들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 어렵다. 들판에서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는 소들을 보면서 ‘신기하다’는 감탄을 이끌어내기 어려운 이유는 바로 이런 예상 가능성에 있다.
세스 고딘은 만약 들판에 보랏빛 소가 풀을 뜯고 있다면 어떨 것인가라는 내용으로 책을 써내려간다. 보랏빛 소는 소의 전형에서 벗어나 있어 그것만으로도 사람들의 이목을 쉽게 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그 소를 본 사람들은 주변에 ‘보랏빛 소를 보았다’며 쉽게 이야기를 퍼뜨린다. 세스 고딘은 이 책에서 ‘안전하고 평범한 제품을 만들라’고 새로운 주문하고 있었다.
위 사장은 <보랏빛 소가 온다>를 읽으며 처음으로 직원들과 함께 공감대를 형성했다. 그 이후 그는 지금까지 계속 독서 모임을 진행하고 있다. 한 달에 한 권, 여덟 명이 한 조가 되어 세 번의 모임을 갖는다.
[정리=이범희 기자] skycros@dailypot.co.kr
[자료제공:비즈니스북스]
정리=이범희 기자 skycros@da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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