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 호암 이병철 초대 회장 ‘탄생 100주년’
삼성그룹 호암 이병철 초대 회장 ‘탄생 100주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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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02-16 13:22
  • 승인 2010.02.16 13:22
  • 호수 825
  •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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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그룹을 일군 호암 이병철 선대회장은 평생을 기업경영에 몸 바친 천재형 기업가로 평가받는다. 그가 일으킨 산업만도 전자, 전기 등 첨단산업을 비롯해 초기 제분, 중공업, 금융업 등을 망라했다. 사실상 전 산업분야를 다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호암은 1910년 2월 12일 경남 의령군 정곡면 중교리에서 부유한 집안의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그가 사업을 처음으로 시작한 것은 26세 때다. 1936년 이병철은 마산에 협동정미소를 설립하며 사업에 발을 내딛는다. 이듬해 토지에 투자했다 중일전쟁의 발발로 자금 사정이 악화돼 사업을 접어야만 했던 이병철은 1938년 삼성상회를 설립하며 재기에 나선다.

본격적인 기업가로서의 그가 면모를 다지기 시작한 것은 1948년이다. 서울 종로에 삼성물산공사를 설립하면서부터다. 비록 한국전쟁으로 다시 한 번 좌절하지만, 이를 통해 ‘이병철’이라는 이름을 세상에 알리기 시작했다.

이병철은 곧바로 1951년 1월 부산에 삼성물산을 설립하며 재기를 노린다. 이어 1953년 제일제당, 1954년 제일모직, 1955년 대한정당판매주식회사를 잇따라 세운다. 이를 통해 1950년대 후반에 이미 호암은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가로 떠오르게 된다. 1960년 50대에 접어든 호암은 일생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을 만나게 되는데, 그가 바로 박정희 대통령이다. 박정희 정권 초반 호암은 탈세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박 대통령과의 ‘담판’ 이후 그는 한국경제인협회를 설립하고, 스스로 초대 회장에 손수 오르는 등 경제 성장을 위해 헌신하게 된다.

1969년 1월에는 현 삼성전자의 모태인 삼성전자공업을 설립한다. 그해 12월에는 삼성산요전기를, 이듬해 1월에는 삼성NEC를 설립하면서 그룹의 성장동력을 착실히 키워나간다. 양사는 각각 1977년과 1973년에 삼성전자에 통합된다. 호암은 당시 정부의 대대적인 중화학공업 육성 정책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전자산업을 보면서 가능성을 엿보고 전자산업에 적극적으로 나서게 된다. 노동집약적이고, 기술집약적인 전자산업이 한국에 가장 필요한 성장산업이라는 판단에서다.

그의 경영인생의 화룡점정은 1983년 ‘도쿄선언’이다. 일흔을 넘긴 나이에 반도체 사업에 투자하기로 결정을 내린 것이다. 당시 여론은 물론이고, 삼성 내부에서도 투자의 위험성 때문에 이 같은 결정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많았다고 한다.

경영전문가들은 물론이고 당시 삼성관계자들 조차 “반도체 투자는 삼성에 있어서는 일생일대의 도박이었다”며 “이병철 회장 정도의 기업가 정신이 아니라면 실행에 옮길 수 없었던 하나의 ‘작품’”이라고 입을 모은다.

호암은 1987년 11월 19일 향년 78세를 일기로 자택에서 별세했다. 하지만 호암은 죽음을 눈앞에 두고도 삼성종합기술원을 착공하고, 삼성경제연구소를 설립하는 등 삼성과 국가경제의 미래를 위해 한 순간도 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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