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요서울|강휘호 기자] 태광그룹은 지난 9일 정도경영위원회를 출범하고, 사회적 기업으로서의 책임을 다하겠다고 대대적으로 발표했다. 태광그룹 정도경영위원회는 주요 경영 활동에 탈ㆍ위법 요소가 없는지 사전 심의하고, 일정한 법적ㆍ윤리적 경영 기준을 통해 정기 점검을 실시한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태광그룹 정도경영위원회가 주도하는 경영 혁신이 윤리 경영 실천 보다는 오너리스크(Owner risk) 관리, 대응 차원일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또 오너 일가의 탈ㆍ위법 요소들을 스스로 제거하지 않는다면, 시작만 창대한 반쪽짜리 개혁으로 끝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호진 전 회장 둘러싼 경영비리·황제 보석 논란 등 ‘오너리스크’ 산재
태광그룹 “주요 경영활동 불법적 요소 검토…윤리 경영 기준 마련할 것”
앞서 태광그룹은 “임수빈 전 서울중앙지검 부장검사(57)를 위원장(사장)으로 하는 ‘정도경영위원회’를 출범, 기업문화를 쇄신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난 8월 지배구조 개선작업으로 마련한 개혁의 밑그림 위에 그룹을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하겠다”고 전했다.
태광그룹에 따르면 정도경영위원회는 임수빈 위원장이 상근하는 상설기구로 주요 계열사CEO 등이 위원으로 참여한다. 그동안 경영 활동 과정의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고 정도경영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기업문화를 구축하는데 중점을 둔다는 것이다.
또 주요 경영활동에 탈.위법 요소가 없는지 사전 심의하고, 진행 중인 사안도 일정한 기준을 만들어 정기적인 점검하겠다고 덧붙였다. 태광그룹의 발표 이후 정도경영위원회를 구성하는 인물들에 대한 관심도 집중됐다.
임수빈 위원장은 사법연수원 19기로 춘천지검 속초지청장, 대검찰청 공안과장을 거쳐 지난2009년 서울중앙지검 형사2부 부장검사를 마지막으로 검찰을 떠났다. 재직시절 소신 있는 개혁파 검사로 평판이 높았으며, 일명 ‘PD수첩 검사’로도 유명하다.
임수빈 위원장은 2009년 서울중앙지검 형사2부장으로 재직 시 MBC PD수첩의 광우병 보도와 관련한 상부 지시에 “언론의 자유 등에 비춰볼 때 보도제작진을 기소하는 것은 무리”라며 검찰 수뇌부와 마찰을 빚고 사직했다.
전직 검사 영입까지
임수빈 위원장은 지난 2017년에도 검찰 개혁을 강조하는 논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검찰권 남용 통제방안’ 논문으로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임수빈 위원장은 논문에서 “수사는 잘하는 것 보다 바로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임수빈 위원장의 경력과 평판으로 미루어봤을 때 정도 경영, 윤리 경영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진 것이다. 임수빈 위원장도 정도경영을 실천해 해묵은 관행을 고치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등 기업문화를 일신하려는 태광그룹의 제안의 진정성을 봤다고 직접 말했다.
임수빈 위원장은 “태광그룹의 제안을 받고, 지배구조 개선활동과 오너의 개인 지분 무상증여 등에서 개혁에 대한 진정성을 느껴 수락하게 되었다”며 “특히 기업과는 별다른 인연이 없던 저에게 수차례 부탁했다는 것도 개혁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부분이었다”고 밝혔다.
임수빈 위원장은 “기업을 건강하게 만드는 것은 사회에 도움이 되고 국가발전에도 보탬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태광을 건강하게 만들어 국가와 사회에 책임을 다하는 모범적인 기업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언급했다.
황신용 전 SK하이닉스 상무(49)도 정도경영위원으로 합류한다. 황신용 위원은 국회 보좌관과 청와대 행정관을 거쳐 SK하이닉스 정책협력을 담당했다. 결국 정도경영위원회 중심으로 고 이임용 태광그룹 창업주의 경영철학인 정도경영을 실천하겠다는 선언이다.
다만 태광그룹 정도위원회 출범이 실질적으로 정도 경영을 위한 개혁이 될 지 여부는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태광그룹을 둘러싸고 그동안 발생한 오너리스크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은 421억 원대 횡령·9억 원대 배임 등 경영비리 혐의를 받고, 8년 가까이 재판이 진행 중이다. 또 이호진 전 회장은 구속 기소됐지만 간암 말기 판정, 대동맥류 질환 등 건강상의 이유로 구속 기소된 지 62일 만에 구치소를 벗어났다.
이후 2012년 6월 보석으로 풀려나 불구속 재판을 받았는데 이호진 전 회장이 불구속 재판 기간 동안 음주와 흡연을 즐기는 등 환자가 아닌, 일반인처럼 생활하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논란이 되고 있다.
올해 국정감사에서 지적받은 태광그룹의 공직자 골프접대 의혹도 마찬가지다. 당시 이학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공정거래위원회 종합감사에서 “태광그룹이 소유한 골프장에서 정·관계 인사 4300여명에 대한 전 방위적인 골프접대가 있었던 사실이 드러났다”고 꼬집었다.
이학영 의원은 “실형을 받고 병보석 중인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은 그룹 일감몰아주기와 금융계열사 부당 내부거래로 공정위와 금감원의 조사를 받았다”며 “그럼에도 (정·관계 인사가) 태광그룹이 운영하는 골프장에서 접대를 받은 것은 부적절한 행위"라고 일침을 가했다.
아울러 공정거래위원회가 ‘일감 몰아주기’ 혐의로 이호진 전 회장을 검찰에 고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러한 배경들이 정도경영위원회의 임무가 개혁보다 이호진 전 회장을 보호하고, 사정당국의 압박을 피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을 것이라는 의구심을 일으킨다.
태광그룹의 정도경영위원회가 자정의 일환으로 오너일가의 탈ㆍ위법 요소까지 감시할지 역시 미지수다. 태광그룹 정도경영위원회가 소유와 경영을 철저히 분리하고, 오너의 불법적인 일탈 행위를 발견했을 때도 가차 없이 공익적 내부 고발자 역할을 할 수 있냐는 지적이다.
정도경영위원회가 경영 방침 기준을 명확히 세우고, 정기 점검을 실시한다 하더라도 오너의 경영권 침해나 잘못된 선택이 있을 경우, 개혁을 위한 노력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릴 수 있다.
이와 관련해 한 시민단체의 대표는 회의적인 시각을 나타냈다.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대표는 “태광그룹은 오너의 불법적 행위들에 대해서 철저히 ‘개인 사생활이기 때문에 그룹과 연관이 전혀 없다’고 해명한다”고 입을 열었다.
더불어 “오너와 그룹을 분리한다는 것은 절대 회사 차원에서 책임을 지지 않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면서 “정도경영위원회가 이호진 전 회장이나 일가에 대한 일탈행위까지 감사하는 것은 아마 안 될 것”이라고 전했다.
보여주기 개혁 우려
또 그는 “과오를 바로잡는 것은 어느 정도 보여주기 식 수준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면서 “정도경영위원회는 앞으로의 경영 과정에서의 위법적인 요소를 검토할 것에 중점을 둘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한편 태광그룹은 정도경영위원회 출범을 알리면서 2016년 12월부터 자발적 지배구조 개선을 통해 지배구조를 단순화했으며, 이호진 전 회장 등이 소유했던 계열사들도 무상증여, 합병 등의 방식으로 정리했다고 설명했다.
이호진 전 회장은 모범적 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1300억 원 상당의 개인 지분을 세화여중·고와 태광산업에 무상 증여했다. 내부거래와 일감 몰아주기 등 논란을 해소하고 사학의 안정적 재정 기반을 마련해주었다고 했다.
태광그룹 관계자는 “도덕성과 전문성을 갖춘 인사 영입은 객관적 시각과 엄정한 잣대로 탈바꿈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이라며 “태광그룹이 위기에서 벗어나 재도약할 것이라 확신한다”고 말했다.
오너리스크 및 향후 오너일가에 대한 감사 여부 등은 “오너일가의 불법적 행위 등은 사생활이지 않나. 그룹 입장에서 답할 것이 없다”면서 “정도경영회가 출범하자마자 검토할 사안도 아닌 것으로 보인다”고 선을 그었다.
<강휘호 기자> hwihols@ilyoseoul.co.kr
강휘호 기자 hwihols@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