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경영을 배우다

인 기연 재- 미래 기업의 핵심역량 중 하나는 학습문화이다. 그리고 뛰어난 리더십의 불가결한 요소는 리더의 솔선수범. 솔선수범해서 열심히 독서하는 CEO의 모습은 그 자체로 기업의 경쟁력이 된다. 그렇다면 우리시대를 이끌어가는 ‘재계 고수들’의 특별한 성공 지혜법은 무엇일까. 올 초 출간된 <책 읽는 CEO>(비즈니스북스)는 이런 물음에 대해 해답을 제시한다.
이 책은 리더십과 학습문화의 융합이라는 바람직한 경영패러다임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경영교과서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지침서다. 이에 [일요서울]은 LS전선 구자열 회장을 필두로 한국 최고경영자들의 학습관에 대해 알아본다. 이번호는 LS전선 구자열 회장편이다.
사람만 나고 죽는 것이 아니다. 기업도 나고 죽는다. 하루에도 수십, 수백 개의 기업이 성패의 기로에 서는데 흥망성쇠를 달리하는 기업의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하나같이 한 편의 극적인 드라마를 방불케 한다.
한때의 영광을 뒤로 하고 조용히 사라지는 기업이든, 때를 기다리며 고진감래한 기업이든 그들이 안팎으로 겪는 어려움은 보통사람의 상상을 초월한다.
특히 요즘처럼 치솟는 유가와 원자재 값, 전 세계적인 글로벌 위기까지 겹치며 기업들이 하나둘씩 허리를 졸라매는 시기에는 경영자들이 ‘성장’이 아니라 ‘생존’이 목적이라는 말을 공공연하게 하기도 한다.
이런 시기, 거꾸로 해외 기업을 먹어치우며 위풍당당하게 외연을 넓혀가는 기업이 있다면 믿겠는가. 바로 LS전선이다.
LS전선은 사람으로 치면 이제 막 질풍노도의 시기인 사춘기를 지나고 있다.
LG그룹에서 분가한 지 5년 만에 셋방살이를 면하고 경기도 안양에 사옥을 지었다. 안양으로 살림살이를 옮긴 지 한 달 만에 지주회사 체제로 바꿨다. 그리고 또 한달, 이번엔 북미 최대의 전선회사를 인수합병하며 세계 3대 전선회사로 탈바꿈했다.
이 특별한 회사를 맡고 있는 사람이 구자열 회장.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LS전선 구 회장의 ‘경영 바이블’이야기를 들어봤다.
나의 경영 화두는 ‘글로벌’
구자열 회장은 평소 바쁜 시간을 쪼개어 책을 많이 읽는 다독가로 정평이 나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토머스 프리먼의 열혈 독자다. <렉서스와 올리브나무>에 이어 <세계는 평평하다> 등 프리드먼의 저서는 빠짐없이 다 읽었다. 한 달에 열 권 이상의 책을 뚝딱 읽는 그가 임직원들에게 반드시 읽길 권한 책이 바로 프리드먼의 저서이다.
프리드먼은 <뉴욕타임스>의 국제문제 칼럼니스트이다. 직업상 세계 곳곳을 다니며 겪은 일화와 세계화의 목격담을 일목요연하게 한 권의 책으로 엮은 것이 바로 <렉서스와 올리브나무>다.
이 책은 1999년 출간되자마자 경제경영 분야의 필독서로 꼽힐 정도로 ‘세계화’라는 주제와 그 영향, 앞으로의 전망을 잘 짚어낸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래서인지 20여 개국 이상에 널리 번역되어 읽힌 책이기도 하다.
이 책이 구자열 회장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구 회장은 자신의 경영 화두인 ‘글로벌’을 <렉서스와 올리브나무>에서 배웠다고 했다. 임직원들 사이에서는 “프리드먼의 저서를 읽으면 구 회장을 읽을 수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최근에는 <세계는 평평하다>를 임직원들에게 권했다. 그는 “머릿속에서 그려본 것보다 훨씬 더 구체적인 ‘글로벌’을 직원들이 체득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일독해 보라고 했다”고 전했다.
글로벌이라는 경영화두에 걸맞게 그는 일본어와 영어에 두루 능통하다. 구 회장의 과거 행보를 살펴보면 이런 이력이 이해가 간다. 그는 1978년 LG상사에 입사해 무역을 배우기 시작했고 2년 뒤에 뉴욕지사로 옮겨갔다. 이후 1990년 동남아시아 지역 본부장을 거쳐 일본지사에서 근무했다. 해외 지사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 데는 한국 무역협회장을 지낸 부친 구평회 E1 명예회장의 영향이 컸다고 한다.
우리나라가 사업화의 길을 걷고 있던 1970년~1980년대 이미 선진국인 미국과 일본을 둘러봤던 그는 일찌감치 미래를 이끌어나갈 신 개척지로 ‘바다 건너 세상’을 가슴에 새겼다.
일본에서 돌아와 1995년 LG투자증권으로 자리를 옮겨 맡은 일 역시 해외 업무였다. 해외 시장 개척에 대한 갈증이 심했던 그에게 <렉서스와 올리브나무>는 오아시스와 같았다.
구 회장은 그때를 이렇게 회고했다
“오랜 해외 근무 경험을 통해 글로벌 경영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를 쉬운 말로 명확히 설명해주는 연구물이나 서적은 찾아보기 어려웠지요. 대부분 너무 지엽적인 내용을 다루거나 황당무계한 내용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다 2002년 지인의 소개로 <렉서스와 올리브나무>를 읽게 되었습니다. 이 책은 새천년을 규정짓는 거대 담론이었던 ‘세계화’를 독창적인 방법으로 서술하고 있습니다. LS전선(당시 LG전선)에 대표이사로 취임하면서 어떻게 회사를 이끌어 나갈까 고민하던 시기에 이 책을 통해 세계화에 대해 확실히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글로벌 경영에 대한 통찰력을 키운 셈이지요”
“세상이 새롭게 변하고 있다”
구 회장이 전선 사업에 발을 들여놓았던 2001년, 회사 매출은 12조4800억 원에 불과했다. 그는 부사장을 거쳐 CEO자리에 오르기까지 약 2년 동안 구석구석을 샅샅이 살피고 분석하기 시작했다.
벽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곳에 있었다. 1990년대 초 국내 경쟁사가 중국 시장에 발을 들여놨다 고배를 마시고 공장을 철수한 과정을 목격하면서 직원들은 한국이라는 울타리 밖으로 시선을 돌리는 것조차 부담스러워했다. 직원들 사이에는 ‘잘못되면 뒤집어쓴다. 가만히 있으면 본전’이라는 생각이 팽배했다. 이런 상황에서 ‘해외 시장에 진출하자’고 외치는 것은 공염불에 불과했다. 구 회장은 이러한 직원들의 마음을 바꿔야겠다고 생각했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는 것이 급선무였다. 변화가 필요했다. 이때도 <렉서스와 올리브나무>는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했다.
“세계화 시대에는 자본주의 논리에 따라 비효율적 기업들이 신속히 파괴되도록 하고 비전 없는 사업에 묶여 있던 돈이 더 혁신적인 사업으로 자유로이 흘러갈 수 있도록 하는 나라들만이 번성한다. 반면 비효율적 기업들이 창조적 파괴의 대상이 되지 않도록 권력의 힘을 빌려 보호하는 나라들은 시대의 낙오자가 될 뿐이다.”
-<렉서스와 올리브나무>중에서.
[정리=이범희 기자] skycros@dailysun.co.kr
[자료제공:비즈니스북스]
정리=이범희 기자 skycros@da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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