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요한 만큼 깨우쳐라”

재산이라는 것은 있다가 없어지기도 하고, 없다가 들어오기도 하는 것이다.
자손들에게 꼭 재산을 많이 물려주어야 좋은 것은 아니다. 있어서 물려주면 좋고, 없어서 물려주지 못한다고 슬퍼할 것도 없다.
자손들에게는 그들대로의 세계가 따로 있으니까. 단지 재산보다는 어릴 때부터 스스로 힘써 일해 그것으로 생활해 나갈 수 있는 능력만은 꼭 길러주어야 한다
재계에서 손꼽히는 대다수 기업들은 대를 이어 내려오는 신뢰를 자랑한다. 그리고 그 경영자들에게는 오랫동안 역동의 시대를 거쳐 기업을 성장시키는 것과 동시에 자녀를 강하고 훌륭하게 키우는 확고한 원칙이 있다. 부를 일구는 것보다 부를 다스리는 법을 어릴 때부터 가르치고, 조직을 관리하는 법을 학습시킨다. 그렇다면 ‘재계의 고수’인 창업주들은 그들의 자녀에게 어떤 교육법을 선사할까. 지난해 출간된 <명문 기업가의 자식농사><밀리언하우스>는 이런 물음에 대해 해답을 제시한다. 이에 [일요서울]은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의 자녀교육법을 필두로 한국 최고 경영인들의 자식 농사법을 알아본다. 이번호는 효성家 조홍제 회장의 자식 농사법이다.
효성가의 창업주 고 조홍제 회장은 슬하에 석래, 양래, 욱래 등 3형제를 두었다.
생전에 조홍제 회장은 경제적으로 윤택한 부잣집 자녀들일수록 방종해지기 쉽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자녀교육의 최우선 순위를 자립심으로 삼았다. 자식들이 혹여 ‘부잣집 아들병’에 걸리지 않을까 우려해 일부러 매우 엄하게 키웠다. 부모에게 의존하지 않고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기 위해서다.
조홍제 회장은 종종 자녀교육을 음식에 간을 맞추는 것에 비유하곤 했다. 음식에 간을 맞출 때면 그것이 그렇게 녹록하지 않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처음에는 많이 넣어서 짠맛이 심해지고, 이를 우려해 조심하다 보면 오히려 싱거워진다. 음식마다 소금을 얼마만큼 넣어야 하는지 눈어림이나 짐작으로 가늠하려면, 다양한 요리를 직접 보고 배우며 몇 번의 시행착오를 거쳐 터득하는 수밖에 없다.
기업을 경영하거나 자녀를 가르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얘기다. 몇 번의 시행착오와 체험을 통해 음식의 맛을 좌우하는 소금의 양을 가늠하는 것처럼 자녀들도 자신에게 꼭 필요한 만큼의 도움을 스스로 깨우쳐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이유에서 혹독한 유학 생활을 시켰고 이를 자녀들이 견딜 수 있게 한 것이다.
‘하게’ 하지 말고 ‘하고 싶게’ 해라
장남인 조석래 효성 회장은 슬하에 3남을 뒀다. 현준·현문·현상씨가 그들이다. 조석해 회장을 필두로, 그의 자식들은 모두 해외 유학과 더불어 외국계 회사 경력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조석래 회장은 일본 와세다 대학을 거쳐 미국 일리노이 공과대학원에서 화공학을 전공했고, 장남인 현준 씨는 미국의 명문고인 세인트 폴 고교를 나와 예일 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하고 일본 게이오 대학에서 국제정치학 석사학위를 땄다. 차남인 현문씨도 서울대학을 졸업한 후에 하버드 대학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조석래 회장의 세 아들이 모두 유창한 외국어 실력과 함께 해외 네트워크를 보유할 수 있었던 숨은 비결은 창업주인 조홍제 회장 때부터 내려오는 독특한 ‘외국어 조기학습법’의 지론이 작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막내 손자였던 현상씨는 어린 시절 학교 대표 스케이트 선수였다. 그러자 할아버지인 조홍제 회장은 외국 출장 때마다 여기저기 수소문해 관련 외국 제품을 하나씩 사와 손자에게 선물로 주었다.
그냥 주는 게 아니었다. 미국 제품이든 일본 제품이든 무조건 제품 상자에 들어 있는 매뉴얼을 손자에게 설명해 보라고 시켰다. 그러면 헌상씨는 선물을 가질 욕심에 알고 있던 몇 안 되는 단어를 가지고 어렴풋이 짜 맞춰 내용을 미루어 설명했다.
이러한 할아버지의 짓궂은 주문은 다른 형제들에게도 이어졌다. 스케이트가 아닌 장남감이나 학용품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겉으로 사용설명서를 읽어야 이 물건을 제대로 사용할 수 있지 않겠냐고 말하지만 사실은 일종의 외국어 교육법이었던 것이다. 손자들이 좋아하는 물건인 만큼, 사용설명서가 외국어로 쓰여 있어 당장은 어렵겠지만 그 내용을 읽고 싶은 의욕은 어떤 욕구보다도 강할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일종의 동기부여였다.
이처럼 효성가는 외국어 구사 능력을 매우 중요시 여긴다. 최소한 몇 개 국어는 해야 한다는 것이 조홍제 회장의 생각이다. 그래서 평소 자신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손자들을 직접 가르친 것으로 유명하다.
일예로, 일본어의 경우에는 일본 야구선수 인명록을 토대로 가르쳤다. 일본어의 인명 기술방식은 우선 한자로 쓰고, 그 아래 일본 글자로 풀어서 쓴 다음, 다시 영어로 표기하는 방식이었다. 물론 각 선수의 타율이나 방어율 같은 특징들도 나와 있다. 손자들이 모두 운동을 좋아했기 때문에 일본어는 보다 쉽게 가까워 질 수가 있었다. 이도 넓은 의미의 동기부여 방식이었다.
이 같은 접근법은 손자들 스스로 배움의 필요성을 자연스럽게 터득하게 만들었다. ‘일본어를 공부해라’, ‘영어를 배워라’ 식으로 윽박지르거나 강제로 하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그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환경을 조성했던 것이다.
효성가 3세들이 다방면에서 특출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도 “교육이란 봄에 씨앗을 뿌려 여름에 김매고 가을에는 수확을 하면 되는 1년 농사가 아니라, 오랜 세월 정성을 들여햐하는, 이를 테면 장기농사”라고 생각했던 조부의 교육관을 대대로 전수받았기에 가능했다.
유행에 따라 필요에 따라 자녀에게 새로운 것을 배우도록 요구하지 않고 현재 자녀가 잘하는 재능을 토대로 새롭게 요구되는 재능을 결합시켜 발전시켜 나가는 것, 이것이야말로 주보가 2~30년 후 세계가 필요로 하는 인재를 만들기 위해 손자들에게 쏟은 각별한 정도 교육의 모범 사례라 할 만하다.
[정리=이범희 기자] skycros@dailysun.co.kr
[자료제공:밀리언 하우스]
정리=이범희 기자 skycros@da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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