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잘 날 없네~’ 유동성 위기·계열사 매각·검찰 수사

‘형제의 난’ 이후 금호아시아나 그룹을 이끌고 있는 박찬법 회장이 박삼구 전 회장(현 명예회장) 재임 당시 벌어졌던 사건들을 뒤처리하는 데 골머리를 썩고 있다. 그룹 수장은 바뀌었지만 대우건설 매각 논란, 대한통운 검찰수사 등의 숙제는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 특히 최근 한국신용평가 등 신용평가사 3사가 일제히 금호그룹 주요 계열사들의 신용등급을 하향조정하면서 그간 우려해왔던 금호그룹의 유동성 위기가 현실화되는 듯 하더니 결국 지난해 12월말 주요 계열사에 대한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을 단행, 기업경영능력 부재를 직·간접적으로 시인했다. 이에 [일요서울]에서는 재계 8위 금호그룹이 날개가 꺾이게 된 내막을 집중조명했다.
지난해 12월말, 관련 업계 사이에 금호타이어가 유동성 부족으로 전 임직원들의 임금 지급을 연기한 사실이 알려졌다. 당시 금호타이어측은 이를 놓고 연말 차입금 상환 등이 일시적으로 몰려 자금 확보 차원에서 직원들의 월급 지급시기를 1월로 미룬 것이라고 밝혔다.
대우건설 인수 불똥으로 계열사까지 신용도 추락
그런데 금호타이어의 이 같은 해명에도 불구하고 관련업계 사이에서는 금호그룹 자회사인 대우건설 매각이 차질을 빚으면서 이로 인한 여파가 계열사인 금호타이어에까지 미친 것으로 분석했다. 금호그룹이 그룹 차원의 구조조정 및 유동성을 확보하는 과정에서 금호타이어, 금호석유화학, 아시아나항공, 대한통운 등 금호그룹 그룹 주요계열사에 직·간접적인 재무부담이 전이됐다는 것.
실제로 신용평가사들 역시 최근 이 같은 이유로 금호타이어 등 주요계열 4사의 등급전망을 ‘부정적 검토 대상’에 올렸다. 금호그룹의 핵심자구책인 대우건설의 매각이 순조롭게 이뤄지더라도 금호산업 및 그룹 전반의 재무안정성이 저하될 것이라는 게 신평사들의 공통된 분석이었다.
그러나 이때 까지만 해도 금호그룹은 유동성 위기설에 대해 부정하는 태도를 보였다. 그런데 이로부터 채 일주일이 지나지 않은 지난해 12월 30일, 금호그룹은 주력 계열사인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에 대한 워크아웃 실시와 동시에 대우건설을 산은지주로 매각하는 것으로 최종 결정했다. 약이 될 줄 알았던 대우건설 인수가 되려 주요 계열사 매각 등 그룹 전체를 벼랑 끝으로 몰아 넣은 황당한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금호그룹은 무리한 대우건설 인수에 대한 댓가로 대우건설을 포함한 일부 계열사를 포기했다. 그러나 여전히 시름을 덜어놓을 수 없는 상태다. 오는 15일 또 하나 넘어야 될 산인 풋백옵션(주가가 일정 가격 이하로 떨어지면 차액을 보전해주는 계약) 행사가 남아 있기 때문. 풋백옵션에 따른 금호그룹의 손실액은 1조2000억원에 달하지만 현재까지 이 부분을 어떻게 해결할 지에 대한 구체적인 대책은 없는 상태다.
할 일 많은데 숙제도 ‘잔뜩’
故박인천 창업주 타계 후 형제가 차례로 그룹 경영권을 이어 받으면서 ‘형제경영’의 모범 사례로 꼽혀 왔던 금호그룹에서 형제의 난, 유동성 위기, 검찰수사 등 잇단 잡음이 나오게 된 원인은 무엇일까.
재계에서는 금호그룹의 잇단 악재의 서곡은 2006년 12월 금호측이 ‘덩치 큰’ 대우건설을 인수하면서부터 시작됐다고 분석하고 있다. 그룹사 덩치 키우기에 나섰던 박삼구 명예회장이 대우건설을 무리하게 인수, 주가가 곤두박질치면서 ‘형제의 난’은 물론 그룹 전체의 유동성 위기를 맞게 한 대우건설 인수·매각 논란까지 터져 나왔다는 것. 결국 대우건설 인수가 각종 구설수의 화근이 된 셈이다.
일찌감치 재계에서는 석유화학부문에서 기반을 다져온 박찬구 전 회장이 금호그룹에서 계열분리를 할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었다. 그런데 지난 6월 금호그룹이 대우건설 문제로 산업은행과 재무구조 개선 약정을 체결하면서 삼구-찬구(창업주의 3남과 4남) 형제간의 위기 징후가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분석이다. 대우건설 주가하락 등 재무구조 약화로 동생 박찬구 회장의 계열분리가 사실상 물거품 됐기 때문.
이에 불안감을 느낀 박찬구 전 회장은 형제간 ‘지분 균등 소유’ 룰을 깨고 금호석화 주식을 매입하기 시작했고, 형제간의 갈등의 골은 점점 깊어져 결국 두 형제가 동반 퇴진하는 사태까지 벌어지게 됐다.
이후 당시 아시아나항공 사장을 맡고 있던 전문 경영인 출신인 박찬법 현 그룹회장이 5대 수장으로 금호그룹을 이끌어 나가게 됐다.
하지만 수장이 바뀐 후에도 금호그룹을 둘러싼 잇단 악재는 끊이지 않고 있다. 박삼구 명예회장이 그룹을 이끌어 나가던 당시 벌어졌던 사건들이 여전히 현재진행중인 것.
우선 수조원이 왔다갔다하는 대우건설 매각건이 아직 처리되지 않았다. 또 이국동 사장, 곽영욱 전 사장이 연루돼 있는 대한통운 전·현직 임원 횡령건도 아직 검찰 수사 중이다.
검찰은 대한통운의 일부 임직원들이 운송 및 하역물류, 항만하역 등 물류사업을 벌이는 과정에서 운송비용을 부풀려 회삿돈을 횡령하고, 하도급업체와 계약을 맺으면서 뒷돈을 받는 방법으로 수십억 원을 빼돌린 정황을 포착, 수사에 나섰다.
하지만 금호그룹측은 “그룹에서 대한통운을 인수하기 전에 벌어진 횡령사건”이라며 “그룹 전체와 연관 짓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또 최근에는 금호건설이 파주 교하신도시 복합커뮤니티센터 입찰과정에서 평가위원들에게 금품과 향응을 제공한 혐의가 드러나면서 금호그룹의 이미지는 더욱 실추됐다.
재계, 금호그룹에 대한 회의적 시각 여전
금호그룹은 박찬법號를 출범시키고 새로운 각오를 다지고 있지만 재계 일각에서는 여전히 금호그룹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을 보이고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대우건설 매각 작업이 순조롭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과 함께 장기화될 가능성에 대한 우려까지 나오고 있는 것.
건설업계 한 관계자는 “국내 건설경기가 불확실한데다가 대우건설의 가격이 싼 편이 아니어서 투자에 나설 기업을 찾는 게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금호그룹을 둘러싼 잇단 악재의 고리가 언제 끊길지 재계의 이목이 집중돼 있다.
[류세나 기자] cream53@dailysun.co.kr
류세나 기자 cream53@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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