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짝 엎드려 세상을 보라”

사람은 자기가 경험한 것을 중심으로 세상을 이해하고 살아갑니다.
세상은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는 것, 사회는 잘사는 사람과 못사는 사람, 좋은 환경과 나쁜 환경이 함께 어우러져 있다는 것을 몸으로 가르치고자 했습니다.
재계에서 손꼽히는 대다수 기업들은 대를 이어 내려오는 신뢰를 자랑한다. 그리고 그 경영자들에게는 오랫동안 역동의 시대를 거쳐 기업을 성장시키는 것과 동시에 자녀를 강하고 훌륭하게 키우는 확고한 원칙이 있다. 부를 일구는 것보다 부를 다스리는 법을 어릴 때부터 가르치고, 조직을 관리하는 법을 학습시킨다. 그렇다면 ‘재계의 고수’인 창업주들은 그들의 자녀에게 어떤 교육법을 선사할까. 지난해 출간된 <명문 기업가의 자식농사><밀리언하우스>는 이런 물음에 대해 해답을 제시한다. 이에 [일요서울]은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의 자녀교육법을 필두로 한국 최고 경영인들의 자식 농사법을 알아본다. 이번호는 김재철 동원그룹 회장의 자식 농사법이다.
바닥에서 인생을 배운 이가 있다. 그는 바다에서 몇 차례 죽을 고비를 넘겼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겸허를 배우고, 배를 탄 동료들이 고생하는 것을 보면서 이들에 대한 사랑이 생겼다. 바다를 통해 마음이 넓어지는 호연지기를 배운 이가 김재철 동원그룹(현 한국투자금융지주와 동원엔터프라이즈지주로 분리)회장이다. ‘마도로스 출신의 그룹 총수’, ‘21세기의 해상왕 장보고’ 등의 수식어로 대변되듯 김재철 회장은 바다를 개척해 동원산업을 일궜다. 동원산업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어획량을 자랑하는 수산 기업으로 키운 김 회장은 현재 17개 기업을 거느린 동원그룹의 총수다.
김재철 회장은 슬하에 2남 2녀를 두고 있으며, 이중 두 아들이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김 회장의 자녀교육은 재계에서도 널리 소문날 만큼 혹독하다.
김 회장의 맏아들인 남구씨는 대학을 졸업한 후 6개월간 참치 잡이 배를 탔다. 멀리 남태평양과 베링 해까지 나가 참치를 잡았다. 그는 1991년 동원증권(현 한국투자증권)에 입사할 때도 대리로 들어갔다. 첫 부서도 여의도 본사가 아니라 명동에 있는 코스모스지점이었다. 지점과 채권영업, 기획실을 거치며 경력을 쌓은 뒤에야 임원이 될 수 있었다.
둘째 아들인 남정씨(동원 엔터프라이즈 경영지원실장)도 밑바닥에서 시작했다. 지난 1997년 경남 창원 참치통조림 공장에서 생산직 근로자로 일하기 시작했다. 동원산업 영업부에 평사원으로 입사한 후 시내 백화점에 참치제품을 배달하는 일을 도맡아 했다. 두 딸도 예외가 아니었다. 장녀 은자씨와 차녀 은지씨는 대학 입학 후 ‘일하기 싫으면 먹지도 말라’는 교육이념으로 유명한 가나안농군학교에 들어가 ‘흙’, ‘노동’, ‘근검절약’의 중요성을 배웠다.
혹독한 자녀교육에 대해 일부에선 너무 심하지 않느냐고 충고하곤 했다. 그때마다 김 회장은 “사람은 자기가 경험한 것을 중심으로 세상을 이해하고 살아갑니다. 세상은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는 것, 사회는 잘사는 사람과 못사는 사람, 좋은 환경과 나쁜 환경이 함께 어우러져 잇다는 것을 몸으로 알게 하기 위해서 그렇게 했습니다”라고 말했다.
지도자는 조직의 밑바닥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애환을 몸으로 깨달아야 한다는 점을 김 회장은 자녀들이 배우기를 바랬던 것이다.
순간에 최선을 다하고 하늘에 맡겨라
“인간으로서 해야 할 일을 다 하고 나서 하늘의 뜻을 기다린다”
김재철 회장에게 있어 바다는 인생의 스승이자 삶의 터전이다. 죽음의 문턱을 몇 번이나 넘기면서 많은 것을 생각하고 깨우치게 됐다.
김 회장은 바다에서 배훈 교훈을 자녀교육에 그대로 반영했다. 그 중 하나가 “후회 없이 살라”는 것이다. 그리고 “최선을 다한 다음의 결과는 신의 섭리”라고 덧붙인다. ‘진인사대천명’의 정신으로 바다에 배가 뜨기 전까지 만반의 준비를 다한 뒤에는 ‘만선’과 ‘무사 귀향’은 하늘에 맡기는 것이라고 최 회장은 설명한다.
이는 김 회장이 향교장이던 아버지 밑에서 어릴 적부터 분수에 맞게 살라는 말을 수도 없이 듣고 자랐기 때문. 김 회장이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교훈 중에는 그의 자녀들에게도 고스란히 전수된 것들이 많은 이유이기도 하다.
그는 어린 시절 자녀들에게 ‘공짜 돈’을 절대로 주지 않았다. 자녀들이 돈을 더 받으려면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해야 했다. 구두를 닦든, 청소를 하든, 어떤 일이든 하게 했다. 또 남이 나를 위해 무언가 봉사를 했으면, 항상 감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껴 쓰는 일은 김 회장 가정에선 누구도 예외가 될 수 없었다. 김 회장의 부인 조덕희씨는 IMF 외환위기 때 타고 다니던 포텐샤 승용차를 팔아야 했다. 조 씨는 그 후 1년 동안 지하철과 택시, 버스 등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했다고 한다.
김 회장은 평소 자녀는 부모의 뒷모습에서 배운다는 교육철학을 갖고 있다. 그렇기에 그는 말보다는 행동을 통해 가르침을 주고 있다. 김 회장과 자녀들은 대화를 자주 나눈다.
김 회장은 “우리 부자가 술을 자주하지 못하지만, 가끔 가볍게 음주도 하면서 얘기를 나눈다”고 한다. 그들의 대화는 때론 밤늦은 시간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부모가 자녀에게 주기 싫지만 반드시 줘야 할 것이 고생입니다. 요즘 2·3세 기업인들은 죽기 살기로 뛰었던 창업자 세대와는 달리 여유가 있어 좋기는 하지만, 한편으로 오만과 나태에 빠질 가능성도 있지요. 세상에는 지름길과 아스팔트길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자녀들에게 깨닫게 해주고 싶습니다” 두 아들에게 원양어선 고기잡이와 판매 영업직에서 일한 것을 두고 한 말이다.
자녀의 입장에서 뜻을 헤아려라
동원육영재단의 이사장을 겸직하고 있는 김재철 회장은 틈만 나면 ‘가정교육’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그는 학교 못지않게 가정교육도 매우 중요하다고 믿고 있다. 특히 어린 자녀와 많은 시간을 보내는 어머니의 역할이 매우 크다고 생각한다.
일예로, 김 회장이 관여하고 있는 한 연구회에서 ‘미래의 꿈’이란 주제로 인터넷 공모를 한 적이 있다. 이때 한 초등학교 6학년 학생이 국악인이 꿈이라고 발표했다. 그 중에서도 현악이 아닌, 징이나 북 같은 타악기의 고수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왜냐면 내가 좋아하는 일이니까요”라는 말과 함께. 김 회장은 “이처럼 아이들은 저마다 다른 소질이 있고 다른 꿈을 간직하고 있다”고 확신한다. 그리고 자기가 정말 좋아하는 것을 하게 되면 그 일을 아주 열심히 할 수 있다고 믿는다.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시킬 때 창의적인 생각과 행동은 나올 수 없다. 사람은 자기가 싫어하는 것, 못하는 것을 시키면 할 마음이 안 생긴다. 당연히 능률도 떨어지게 마련이다.
“노래를 못하는 저 같은 사람에게 여러 사람 앞에서 어떤 이가 노래를 부르라고 하면 그 의도가 아무리 좋아도 그렇게 곤혹스러울 수가 없습니다” 자녀교육도 이런 맥락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 김 회장의 지론이다.
[정리=이범희 기자] skycros@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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