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고위 관계자는 “노무현 대통령의 지지기반인 개혁그룹 대동단결을 위해 보수세력을 겨냥한 역사바로세우기를 추진하는 것으로 생각된다”고 말했다. 특히 한나라당은 김영삼 정권 때 실시된 역사바로세우기가 재연될 수 있어 더욱 긴장하는 분위기다. ‘바르게 역사를 세우겠다’는 결연한 의지로 과거의 부패청산에 나설 경우, 노 대통령이 또 다시 여론몰이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위기를 맞고 있는 노 대통령이 일대 반격을 시작한 것으로 한나라당 관계자들은 파악하고 있다. 여기다 정통적인 한나라당 지지층의 이반을 유도하는 포석도 깔려있는 것으로 당 관계자들은 보고 있다. 한나라당 지지층 이반을 통해 차기 대권포석까지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한나라당 고위 당직자는 “역사바로세우기는 가깝게는 지방선거, 멀게는 대선승리를 위한 포석”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과거사 청산’과 관련한 여권의 공세는 더욱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러한 조짐은 여권이 지난 1일 과거사의 포괄적 진상규명과 청산을 위해 ‘진실과 화해, 미래위원회’(가칭)를 구성키로 함으로써 더욱 설득력을 얻고 있다.물론 이에 대해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는 ‘정치적 의도’에 무게를 두고, 강력 반발하고 있다. 더불어 한나라당은 ‘친일 행적보다는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과 일본과의 독도 분쟁부터 짚고 넘어가야 한다’며 국민의 시선을 밖으로 돌리려 애쓰고 있다.
친일청산, 현대사 재조명
가장 쟁점이 되고 있는 것은 박정희 전대통령의 친일 행적에 대한 검증이다. 물론 여권은 부인하지만, 이 문제는 ‘역사 바로 세우기’라는 명분과 함께 박근혜 대표에 대한 정치적 족쇄를 채우는 효과까지 있는 것이 사실이다.박근혜 대표의 대중적 지지는 지난 총선과 6·5재보선에서 이미 확인되었다. 또한 지난 7·19 전당대회에서 압도적인 지지로 대표직에 복귀함으로써, 박 대표는 차기 대권 주자로서 가장 선두에 나서 있다. 여권으로서는 박 대표의 지지세 확장을 차단해야 하는 상황이다.박 대표의 7년 정치 역정에서 뚜렷한 약점이 없다는 점도 고 박정희 대통령의 친일행적과 독재정치를 문제 삼은 하나의 배경으로 해석된다. 이를 통해 박 대표의 대권행보에 발목을 잡겠다는 정치적 계산이 깔려 있다는 의견이다.
여기에 박 대표가 이사장으로 있는 ‘정수장학회’ 문제까지 연관되면서, 박 대표는 ‘사면초가’에 놓이고 있다. 박 대표를 더욱 힘들게 하는 것은 당내 역학구도상 당이 하나가 돼, 이 문제에 대응할 수 없다는 것이다.당내 다른 대권주자나 ‘건전한 보수로의 개혁’을 주장하는 소장파들이 이 문제에 대해 발벗고 나서, 박 대표를 응원할 수 없는 실정이다. 논쟁이 확산되면 확산 될수록 박 대표와 한나라당, 그리고 보수파의 입지는 더욱 좁아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여권의 계속되는 공세에 가만히 있을 수도 없는 처지이다. 지지 기반 이탈과 확보의 문제가 얽혀있기 때문이다.노 대통령은 지난 달 29일 목포를 방문해 “과거 유신시대로 돌아갈 것이냐, 아니면 미래를 선택할 것이냐 하는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며 정체성 논란을 ‘과거와 미래’의 구도로 정립한 것도 이런 맥락으로 해석된다.
광주·전남은 5·18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역사의 희생양이 된 지역이다. 어느 지역보다 ‘역사 바로 세우기’에 민감한 지역이다. 6·5재보선에서 나타난 것처럼 호남의 열린우리당에 대한 지지가 총선 때와는 판이하게 바뀌고 있는 상황에서, ‘역사 바로 세우기’는 지지율 상승에 중요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여권의 총공세에 민주노동당까지 가세하고 있어, 보수파의 입지는 점점 약해지고 있다. 민주노동당은 “국회가 군사독재 시대를 역사적으로 평가하고 관련자에 대한 책임 규명을 추진할 수 있는 실질적 기구를 구성해야 한다”며 ‘군사독재청산위’의 국회 설치를 추진중이다. 반면 한나라당은 대변인단이 나서 이에 반기를 들고 있지만, 논란만 가열될 뿐 실질적으로 얻는 것은 없어 보인다.
‘역사 바로 세우기’라는 명분은 정치적 해석을 떠나 국민 다수가 원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한나라당의 대응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따라서 한나라당은 과거사 진상규명보다는 중국과 일본의 역사 왜곡에 대한 대응으로 ‘역사 바로 세우기’의 중심을 가져가려는 분위기다. 그러나 이 문제 역시 긁으면 긁을수록 국제적으로 이슈화돼 더욱 어려운 국면이 전개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가만히 있으면 나약한 정부가 되고, 문제화시키자니 점점 문제가 커지는 상황에서 우리 정부가 어떻게 ‘역사 바로 세우기’를 할지 관심이다.
독도 문제
해묵은 논쟁 중 하나가 독도 영유권 문제다. 이 문제 역시 건드리면 건드릴수록, 문제가 더 불거지는 일이다. 그렇다고 일본의 망언을 그냥 넘겨들을 수만도 없는 어려운 입장이다.관심을 끄는 부분은 이 문제가 커질수록 정부의 국제사회에서의 대응도 어려워지지만, 보수파의 입지도 좁아진다는 것이다. 독도 문제는 자연스럽게 친일논란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결국 국내에서는 친일이라는 문제에 자유로울 수 없는 세력들을 점점 압박해 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역시 외교상의 문제 때문에 정부가 나서기는 쉽지 않은 문제다. 지난 달 21일과 22일 제주도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에서도 이러한 고민이 그래도 드러났다. 노 대통령은 독도 문제와 관련 “우리 정부의 입장이 분명한 만큼 이런 자리에서 재론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고 말해, 이 문제가 불거져 나오는 것 자체를 차단했다.
고구려사 왜곡
중국 정부가 관영언론을 통해, ‘고구려사는 중국사의 일부’라는 중국학계의 ‘동북공정’ 굳히기에 나섰다. 신화통신은 “고구려는 역대 중국왕조와 예속관계를 맺어왔으며 중원왕조의 제약과 관할을 받은 지방정권이었다”고 보도했고, 인민일보 역시 “고구려는 중국의 고대 소수민족”이라고 거들었다. 이 문제 역시 보수파를 곤란하게 만들 수 있다. 남북 공동 대응 목소리가 높아질수록, 북한을 여전히 적대적 시각으로 바라보는 보수파의 입장에서는 뭐라 말하기 힘든 상황이 전개될 수밖에 없다는 의견이다.
김판수 mada@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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