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 없는 것도 서러운데 자리까지 내놓으라고?”

강신호 동아제약 회장이 근심에 쌓였다. 40여 년간 업계 1위 자리를 지켜왔던 동아제약이 신종인플루엔자(이하 신종플루) 특수에 힘입은 백신전문 제약사 녹십자의 맹추격으로 2위로 밀려날 위기에 처했기 때문. 물론 그간 쌓아온 동아제약 아성 덕에(?) 올해까지는 순위변동이 없을 전망이다. 하지만 녹십자는 이미 동아제약의 2009년 예상 총매출액을 턱 밑까지 따라 왔다. 게다가 앞으로도 안정적인 백신공급에 대한 필요성은 줄어들지 않을 전망이다. 또 해외수출이라는 새로운 시장도 열린다. 이런 까닭에 동아제약 내부적으로도 백신개발 투자에 대한 논의가 진행됐지만 전문성, 시간, 비용 등 여러 측면을 고려해 포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녹십자, 업계 1위 석권’ 시나리오가 힘을 받고 있는 이유다. 증권사를 중심으로 퍼지고 있는 제약업계 지각변동설이 현실화될 것인지에 관련업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우리(동아제약)는 백신보다 제약부문에 강점을 갖고 주력하고 있는 업체다. (신종플루 특수를 얻지 못해) 아쉬운 면이 없지 않아 있긴 하지만 백신분야에서는 녹십자가 높은 기술력을 갖고 있으니깐…. 지금이 아무리 특수기라해도 위험성을 떠안고 백신사업을 확대하기에는 경쟁력, 기술, 비용면에서 타산이 맞지 않는다”
동아제약 한 관계자는 증권가를 중심으로 퍼지고 ‘동아제약 2위 전락설’에 대해 이 같이 말했다. 무모한 도전을 해가면서까지 업계 1위 자리를 지킬수는 없다는 것. 무리한 확장시도를 했다가 자칫 자충수가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올해까지는 명맥 유지할 듯
10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녹십자는 신종플루 백신 개발·공급에 힘입어 올 4분기 사상최대 실적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녹십자는 현재까지 정부와 1200만 도즈의 백신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이는 900억원에 달하는 금액으로, 4분기 실적에 반영될 예정이다. 또 내년 1분기까지 납품이 완료될 약 2천만 도즈 중 일부는 4분기 실적에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이런 까닭에 증권가에서는 녹십자가 4분기에 약 2500억원에 달하는 실적을 내놓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특히 동아제약이 지난 3분기 2083억원의 실적을 달성하면서 ‘제약업계 분기 최고 매출’이라는 기록을 세웠다는 점에 비쳐봤을 때도 2500억원이라는 예상 매출액은 놀라울만한 수치다.
하지만 녹십자의 이러한 맹추격에도 불구하고 올해의 업계 지존자리는 동아제약에게 돌아갈 것으로 보인다. 녹십자의 1~3분기 매출과 4분기 예상매출액을 합쳐도 연간 총 8천억원의 매출이 예상되는 동아제약에는 못 미치기 때문. 이는 신종플루의 국내 접종이 4분기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동아제약이 녹십자보다 약 1200억원 가량 많은 매출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그러나 동아제약 우위 시장판도는 올해까지만 이라는 게 증권가와 관련업계의 중론이다. 그렇게 되면 60년대 후반부터 업계 1위 자리를 굳건히 지켜온 동아제약은 40여년 만에 2위로 밀려나게 된다.
물론 현재의 녹십자는 신종플루 특수에 힘입어 호황을 누리고 있다. 하지만 앞으로는 신종플루는 물론 계절독감 등에 대한 안정적인 백신공급 요구가 빗발치게 되면서 녹십자 업계 선두로 도약하게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특히 국내 제약업계에서는 녹십자가 백신분야에서 독보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어 당분간 경쟁자가 나타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백신분야에 있어서는 수십여년 간 업계 1위를 지켜 온 동아제약도 한 수 밑.
여기에 백신 해외수출 판로까지 열리게 되면 동아제약과 녹십자의 격차는 점차적으로 벌어지게 될 것이라고 업계 관계자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하고 싶지만 안 하는(?) ‘백신의 꿈’
이처럼 관련 업계에서 동아제약과 녹십자를 둘러싼 각종 설들이 생산되고 있는 가운데 정작 사건의 당사자인 동아제약 측은 무덤덤한 반응이다. 새로이 백신사업에 뛰어들기 보다는 주력사업에 ‘올인’하겠다는 것.
이와 관련 동아제약 한 관계자는 “백신시장에 뛰어들어서 크게 성공한다는 가능성이 있다면 긍정적으로 검토하겠지만 굳이 (녹십자와) 중복되는 분야에 도전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며 “또 국민건강과 직결된 사안인 만큼 하고 싶다고 해도 ‘뚝딱’ 만들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내부적으로도 백신분야에 도전하기보다 주력 사업인 신약 연구에 매진하는 게 낫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덧붙였다.
[류세나 기자] cream53@dailysun.co.kr
류세나 기자 cream53@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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