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장은 돈 뜯기고, 임직원은 돈 뜯고”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의 경영리더십이 여론 도마 위에 올랐다. 2006년 정 회장의 비자금 사건이 불거진 이후 계속해서 쏟아지고 있는 대형 비리사건으로 부친 정세영 회장이 일궈놓은 기업 이미지를 한 순간에 추락시키고 있다는 것. 특히 지난 9월 제기됐던 관급공사 허위시공 논란 여파가 채 가시기도 전에 전·현직 간부들의 리베이트 수수사건까지 터지면서 정 회장은 관련업계 사이에서 ‘트러블 메이커’로 통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이런 까닭에 업계에서조차 현대산업개발의 비위행위를 두고 건설업계 비리 복마전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다고 평가하고 있다. 심지어 최근 이 회사 간부들이 하청업체로부터 성접대를 받았다는 의혹까지 제기되면서 정 회장에 대한 경영리더십 부재 논란은 확산일로를 걷게 될 것으로 보인다. 현대산업개발 공사현장 임원 및 전·현직 간부들이 노골적으로 하청·협력업체들을 압박, 5년여 간 상습적으로 거액의 리베이트를 받아 챙긴 것으로 드러나 파문이 일고 있다.
악질수법 동원해 하청업체로부터 돈 뜯어
울산지방검찰청은 지난 9일 서울과 부산, 울산의 아파트 공사현장 하청업체 등 70여 곳으로부터 거액의 리베이트를 받은 혐의로 현대산업개발 전·현직 간부 17명을 적발했다.
검찰은 현장소장 A씨 등 6명을 배임수재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또 상무급 임원 3명을 포함한 간부 10명을 불구속기소하고, 도주한 현대산업개발 간부 1명을 지명수배했다.
검찰에 따르면 이번에 적발된 현장소장 A씨를 포함한 현대산업개발 간부들은 2004년 12월부터 지난 6월까지 5년여 간 하청업체의 공사금액을 늘려주거나, 공정 변화로 공사금액이 줄었음에도 애초의 계약금액을 지급해 그 중 일부 금액을 받는 등의 수법으로 총 30억원대의 금품을 뜯어온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리베이트 수수를 위해 친인척은 물론 친구, 부하직원 부인 심지어 술집 및 마사지업체 종업원 등의 차명계좌까지 동원했다. 수사기관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수표와 현금을 반복 출금하면서 교묘하게 자금세탁을 시도했던 것.
특히 검찰은 술집과 마사지 업체 종업원 명의의 계좌가 이용된 점으로 미루어 현대산업개발 간부들이 하청업체로부터 금품수수는 물론 성접대까지 받은 것으로 보고, 이에 대한 추가적인 수사를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이 공개한 현대산업개발의 리베이트 수수방식은 그야말로 전통적이면서도 악랄했다. 공사비용 증액 등을 빌미로 힘없는 하청업체들에게 압력을 가한 것. 노골적으로 돈을 요구했는가 하면 골프비용을 대납시키는 등의 치졸한 수법까지 동원한 것으로 드러났다.
현대산업개발 한 간부의 경우, 공사금액 10억원을 증액시켜주는 대가로 3억5천만원의 금품을 요구했다.
또 다른 간부는 공정변화로 공사금액이 12억원에서 10억원으로 감액됐음에도 불구하고 원래의 계약금을 지급하겠다고 약속, 차액 가운데 1억원을 달라고 종용한 것으로 밝혀졌다.
검찰이 최근 현대산업개발을 비롯한 금호건설 등의 비위 사례를 자세하게 공개한 것은 건설업계에 관행처럼 자리 잡은 비리를 철폐하기 위한 움직임으로 해석되고 있다. 하지만 정작 건설업체들은 직원 개개인들이 벌인 일이라며 나몰라라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와 관련 현대산업개발 한 관계자는 “작은 구멍가게도 아닌데 직원들의 금품수수 사실을 알고 있었더라면 진즉에 회사차원에서 징계를 내리지 않았겠느냐”며 “문제가 된 직원들이 개인적으로 벌여 놓은 일이기 때문에 회사차원에서 밝힐 수 있는 공식입장은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우리도 검찰수사가 진행된 뒤에야 관련된 사건을 알게 됐기 때문에 금품 수수, 성접대 등 이와 관련된 일체의 정황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다”면서도 “직원관리 소홀, 경영진의 리더십 부재 등으로 확대해석 말아 달라”고 덧붙였다.
그런데 이번 검찰조사 과정에서 현대산업개발 이모 상무가 문화재 출토 등으로 공사가 중단된 울산의 한 아파트 공사재개를 도와 달라는 명목으로 울산광역시의회 전 의장 김모씨에게 3억1300만원으로 건넨 사실이 추가로 밝혀지면서 현대산업개발은 도덕성 논란을 피해갈 수 없게 됐다.
이에 대해 현대산업개발 관계자는 “개인이 벌인 로비인지, 회사차원에서 진행된 것인지를 두고 아직 검찰 수사가 진행중이기 때문에 가타부타 할 수 없다”고 말했다.
현대산업개발을 둘러싼 도덕성 시비는 비단 이번뿐만이 아니다. 가장 최근인 지난 10월에는 안양 석수주공 2단지 재건축과 관련, 조합원들에게 발코니 무료 확장과 무이자 이주비 7500만원 제공 약속을 지키지 않아 소송에 휘말렸다.
또 9월에는 경남 거제지역 하수관 정비사업을 진행하면서 하수관 가시설(H파일, 시트파일)을 시공한 사실이 없으면서도 공사비를 청구한 혐의가 적발돼 국가계약법에 따른 부정당업자로 제재, 5개월간 관급공사 입찰자격 제한 조치를 받기도 했다. 당시 현대산업개발은 공시를 통해 5개월간 관급공사의 입찰참가자격이 제한됐다고 밝혔다.
금품수수 관행, 어디서부터 시작됐나
업계 일각에서는 현대산업개발이 이처럼 도덕성 구설수에 오르고 있는 원인으로 정몽규 회장의 ‘경영리더십 부재’를 꼽고 있다.
실제로 정 회장은 지난 2006년 회삿돈 56억원을 빼돌려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 등으로 검찰조사를 받아 도덕성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당시 정 회장은 검찰 조사에서 비자금 조성 사실은 순순히 시인했지만 배임 혐의에 대해선 부인했다.
검찰은 정 회장에게 3000만원의 벌금형을 선고했다.
[류세나 기자] cream53@dailysun.co.kr
류세나 기자 cream53@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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