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문 기업가의 자식농사 제 1탄 - 현대그룹 정주영 창업주 편
명문 기업가의 자식농사 제 1탄 - 현대그룹 정주영 창업주 편
  • 정리=이범희 기자
  • 입력 2009-11-24 11:16
  • 승인 2009.11.24 11:16
  • 호수 813
  • 25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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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의 씨앗은 ‘밥상머리’에서 뿌려라
현대그룹 정주영 창업주(좌) 정몽구 현대.기아차 그룹 회장

재계에서 손꼽히는 상당수 기업들은 대를 이어 내려오는 신뢰를 자랑한다. 그리고 그 경영자들에게는 오랫동안 역동의 시대를 거쳐 기업을 성장시키는 것과 동시에 자녀를 강하고 훌륭하게 키우는 확고한 원칙이 있다. 부를 일구는 것보다 부를 다스리는 법을 어릴 때부터 가르치고, 조직을 관리하는 법을 학습시킨다. 그렇다면 ‘재계의 고수’인 창업주들은 그들의 자녀에게 어떤 교육법을 선사할까. 지난해 출간된〈명문 기업가의 자식농사〉〈밀리언하우스〉는 이런 물음에 대해 해답을 제시한다. 이에 [일요서울]은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의 자녀교육법을 필두로 한국 최고 경영인들의 자식 농사법을 알아본다. 이번호는 현대그룹 창업주 정주영 회장의 자식 농사법이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아침식사는 가족과 함께’

현대가의 자녀교육 원칙을 굳이 하나만 들라고 하면 ‘밥상머리 교육’을 손꼽을 수 있다. 현대그룹을 설립한 故 정주영 회장은 따로 시간을 내거나 특별한 방법을 내세워 자식교육을 시키지 않았다. 다만 아침 식사만큼은 가족이 모여서 함께 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고 이를 지키지 않을 시에는 불호령이 떨어지곤 했다.

항상 현장으로 뛰어다녔던 정주영 회장이 따로 시간을 내어 자녀들을 가르칠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정주영 회장의 둘째 아들인 정몽구 현대·기아차 그룹 회장이 고등학교 다니던 시절, 아버지 정주영 회장은 사업을 확장하느라 눈 코 뜰 새 없이 바빴다. 1947년 당시 정주영 회장은 현대건설을 설립했으며, 1957년에는 6·25 때 파괴된 한강 인도교 복구공사를 완료했다. 사업에 쫓기다 보니 자녀들의 교육에 크게 관심을 기울 일 수가 없었다. 때문에 정주영 회장의 밥상머리 교육은 철저하고 어김없이 이어졌다. 정주영 회장의 밥상머리 교육 키워드는 ‘근면’과 ‘성실’. 정주영 회장 자신도 몸소 실천했던 것이 근면과 성실이다. 일례로 2001년 정주영 회장이 타계했을 때 문상객들은 청운동의 검소함에 놀랐다. 철제 샤시는 오래되어 삐거덕 소리가 연신 났으며 텔레비전도 곳곳에 빛이 바랜 흑백텔레비전이었다. 한국경제를 주름잡던 재계 총수의 집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었던 탓에 놀라움은 더 컸다.

손자들 가운데 가장 먼저 정주영 회장에게 밥상머리 교육을 받은 이는 정의선 기아차 부회장이다.

“밥상머리 교육은 이 할아버지도 아버지에게서 받은 거야. 같이 아침을 먹으면서 남을 배려하는 마음과 감사하는 마음, 자신을 낮추면서 남을 높이는 사람이 될 수 있는 기본예절을 배웠지.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생각나는 대로 말하곤 한단다”

할아버지의 이런 말을 의선 씨는 어릴 적부터 항상 귀담아왔다고 한다. 의선 씨는 결혼 후에도 청운동에 와서 정주영 회장과 같이 아침식사를 했다.


자녀에게 행동으로 모범을 보여라

소위 ‘왕 회장’으로 불리던 정 회장은 가난한 농군의 아들로 태어나 부두 막노동꾼으로 시작, 대기업 총수로 성공하면서 ‘현장 경험을 통한 학습’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겼다. 정주영 회장은 슬하에 9남매(8남1녀)를 두었다.

정 회장은 “부모가 가난하건 부유하건 물질이 자녀교육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거나 큰 조건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이는 기능적인 교육보다는 사람 됨됨이를 만들어가는 인성교육에 있어서 부의 크고 작음이 중요치 않다고 본 것. 그래서 부모는 자녀 앞에서 말을 앞세울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모범을 보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이 원칙은 정주영 회장이 평생을 지킨 원칙이다.

정주영 회장은 자녀들을 가르치면서 특별한 원칙을 내세우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오히려 큰 줄기만 잡아놓은 채 알아서 크도록 하는 자유방임형에 더 가까웠다. 하지만 이런 정 회장도 영어공부만큼은 고집스럽게 강조했다. 지금이야 ‘영어는 필수’라는 인식이 보편적이지만 당시만 해도 그렇지 못했다. 정 회장은 이처럼 사업 현장을 통해 미래의 필요한 자격 요건을 파악한 후 자녀들에게 전수하는 식으로 자녀들을 교육했다.


아버지는 ‘벤치마킹’의 대상이자 ‘라이벌’이다

정몽구 현대·기아차 그룹 회장은 스스로 자신의 경영 교본은 ‘선친의 어록’이라고 할 정도로 아버지로서 뿐만 아니라 경영의 스승으로서 정주영 회장을 따랐다. 실제로 한 때 그룹 내에선 정몽구 회장의 경영 행보를 알려면 ‘정주영 회장 어록’을 보라고 할 정도였다. 듬직한 체구, 굵직한 경영스타일 등 부친을 쏙 빼닮은 정몽구 회장이 경영 현안에서도 아버지의 가르침을 그대로 따르고 있기 때문.

특히 사업과 관련하여 故 정주영 회장은 누누이 “기업인이 새로운 일을 만들 때 꼭 짚어야 하는 것이 첫째 원료 조달이 어렵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는데 정몽구 회장도 이를 매우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 과거 현대차가 포스코와 핫코일 분쟁을 벌인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현대차를 인수한 정몽구 회장은 자동차의 골격과 외형에 들어가는 광관제조회사인 계열사 현대하이스코에 자동차용 강판 생산을 지시했다. 종전에는 포스코와 해외에서 주로 조달해왔지만 이제 계열사에서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해서다.

이 때문에 정몽구 회장은 부친이 강조했던 “원료조달이 어렵지 않아야 한다”는 가르침을 머릿속에 담고 수년간 고로제철소 사업을 추진해왔다. 결국 정몽구 회장은 2005년 한보철강 인수를 통해 다시 한 번 고로제철소 사업의 밑그림을 그렸고 2006년 1월 충남도로부터 지방산업단지 지정 승인을 통해 30년 숙원사업이던 고로사업에 진출하게 됐다.

그래서인지 오늘날 정 회장의 스타일은 그의 아버지와 흡사하다. 외모는 물론 선이 굵으면서도 세밀하고 의리와 인정을 중시하는 것까지 닮았다. 솥뚜껑만한 손에다 ‘삼국지’를 애독하는 것도 비슷하다.

이처럼 아들은 아버지의 행보를 벤치마킹하면서 ‘아버지를 라이벌로 설정하고 더 나은 모습을 보이겠다’는 의지도 함께 키웠다. 수많은 삼촌과 형제 사이에서 정 회장은 아버지로부터 인정받기 위해 물불을 안 가리고 뛰었다.

정몽구 회장은 아버지를 닮은 통 큰 스타일로 유명하지만 정작 자신에게는 검소한 생활이 몸에 배어있다. 이는 아버지의 검소한 모습을 그대로 이어받은 것이다. 정몽구 회장의 검소함을 알 수 있는 사례는 많다. 일례로 정 회장의 손목에는 현대차가 홍보용으로 주문 제작한 개당 2만 원짜리 시계가 채워져 있다. 벌써 몇 년 째다.

[정리=이범희 기자] skycros@dailysun.co.kr
[자료제공:밀리언 하우스]

정리=이범희 기자 skycros@da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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