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르포-삼성물산-대우건설 ‘무늬만’ 나눔경영 논란
현장르포-삼성물산-대우건설 ‘무늬만’ 나눔경영 논란
  • 류세나 기자
  • 입력 2009-11-24 10:57
  • 승인 2009.11.24 10:57
  • 호수 813
  • 22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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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비타트 사업으로‘생색’ , 철거민에겐 찬바람 ‘쌩쌩~’
지난 16일 오후 서울 마포구 아현3구역 재개발 현장에서 막바지 철거작업이 한창 이뤄지고 있다.(위) 재개발지역으로 선정된 아현3구역에서 7년째 거주하고 있는 세입자 한모(40)씨의 집에 지난 3일 원인 모를 화재가 발생했다. 불탄 집 외에 가족들이 머물 곳이 없다고 말하는 한씨는 화재에도 여전히 재개발 지역 내에서 생활하고 있다. 사진은 화마의 흔적을 비닐과 테이프로 가리고 생활하고 있다고 설명하는 한씨의 모습.

나눔경영을 주창해 온 삼성물산(이상대 부회장)과 대우건설(서종욱 사장)이 겉 다르고 속 다른 경영행보로 구설수에 올랐다. 이 두 기업이 공동시공사로 참여한 아현뉴타운 3구역에서 하청 철거업체 소행으로 의심되는 화재사건이 발생한 가운데 원청의 암묵적인 명령에 의해 하청업체가 방화를 저질렀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는 것. 뿐만 아니라 하청업체 소속직원들과 용역들은 아직 철거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가구들의 보일러를 끊고, 외부에 있는 화장실을 철거하는 등 기본적인 생활조차 이어나갈 수 없게끔 해 원청 시공사의 이 부회장과 서 사장에 대한 지역민들의 불만은 날로 높아지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이 두 업체들은 그간 기업대표를 포함한 임직원들이 사랑의 집짓기 등 소외계층을 위한 봉사활동에 앞장서 왔던 터라 지역민들은 더욱 충격에 휩싸여 있다.

“대우건설이 실천하고 있는 크고 작은 사회공헌활동에 임직원 모두의 사랑과 정성을 쏟아 소외된 이웃에게 보다 더 많은 사랑을 나누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대우건설 한 관계자)

“사랑의 집짓기를 비롯해 지역 주민들과 따뜻한 공감을 나눌 수 있는 사회공헌활동을 늘려나갈 계획입니다”
(이상대 삼성물산 부회장)

“봉사활동도 많이 하는 대기업이 왜 우리 같이 없는 사람들 목을 조르는지 모르겠어요. 여기(철거지역) 아니면 갈 곳도 없는데 이 추운 겨울에 우리 아이들하고 도대체 어디로 가라는 말입니까” (아현뉴타운 3구역 지역민 한모씨)


사회공헌사업 확대하는 진짜 까닭은

나눔경영을 바탕으로 한 기업들의 사회공헌 활동은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 조건으로 떠오르고 있다. 기업은 이윤추구를 위해 존립하지만 공동체를 통해 얻은 이윤을 어떻게 사회에 환원 하느냐도 그 기업을 평가하는 중요요건으로 부각되고 있는 것.

대우건설은 지난 2005년 1월 창설된 사회봉사단을 중심으로 매달 노인생활시설, 보육시설, 장애인 생활시설 등 사회복지시설을 직접 방문해 시설 개보수 및 봉사를 실시, 우리사회의 소외된 이웃들에게 사랑을 실천하고 있다.

삼성물산은 올해로 10년째를 맞는 ‘사랑의 집짓기-해비타트’ 사업를 통해 저소득층에게 보금자리를 마련해주고 있다. 2003년부터는 국내뿐 아니라 해외로까지 사랑의 손길을 뻗치고 있다.

이상대 삼성물산 부회장은 지난달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해비타트 사업을 거론하며 “건설업을 하는 회사의 특성을 가장 잘 살릴 수 있는 공헌활동이야말로 사회에 실질적으로 보탬이 되고, 임직원들의 진심을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수단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런데 정작 이 두 건설사가 시공을 맡은 재개발지역 세입자들의 입장은 이 부회장의 의견과 사뭇 다르다. 과연 진정한 의미의 봉사를 알고 있냐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아현뉴타운 3구역에 7년째 거주하고 있는 한모(40)씨는 “철거가 시작된 후로도 이주할 곳이 없어 철거더미 사이에서 살고 있는 처지를 뻔히 알면서도 시공사 하청업체 직원들은 보일러를 끊고 화장실도 없앤 것도 모자라 이번엔 집에 불까지 질렀다”며 “보여주기식이 아닌 진심으로 소외계층을 생각하는 사회사업을 하고 있는 기업이라면 이렇게까지 모질게 굴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수사당국, 화재원인 선뜻 못 밝혀

지난 3일 오전 10시반께 아현동 634-118번지, 한씨가 고1, 중2 두 딸과 초등학교 5학년 아들과 함께 생활해오던 반지하 집에서 검은 불길이 솟아올랐다.

불행 중 다행으로 집 안에는 아무도 없었지만 세간살이는 몽땅 불길에 잃었다. 남은 건 휘발유 냄새가 물씬 나는 앨범 하나였다. 집에서 휘발유를 사용해오지 않았던 터라 순간 ‘아, 누가 고의로 불을 질렀구나’라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는 한씨. 한씨는 용의자로 시공사의 하청으로 철거를 담당하고 있는 ○○건설 직원 및 용역들을 지목했다. 이주를 종용하기 위한 방법 중 하나였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아현동 외에도 신림동, 왕십리 등 재개발지역에서는 유달리 화재가 잦다. 그런데 이들 지역민들도 한씨와 마찬가지로 목소리로 방화를 의심한다. 조속한 합의를 이끌어낼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에 시공사 등이 부리는 꼼수라는 것. 그런데 수사당국의 조사에도 불구하고 화재원인이 방화인지 실수로 발생한 것인지조차 알 수 없거나, 밝혀지는데 상당한 시일이 소요된다.

지난 3일 발생한 아현3구역 화재의 경우도 그렇다. 화재가 발생한 지 보름여가 지난 17일 현재까지 수사당국은 정확한 화재원인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했다.

마포경찰서 한 관계자는 “현재 수사중에 있다”며 “재개발 지역에서 발생하는 사건들은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기 때문에 ‘추정된다’고 말하는 것 조차 쉽게 입에 올리기 어려운 면이 있다”고 말을 아꼈다.

이와 관련 ○○건설 현장관계자는 “화재가 발생한 곳에 거주하고 있는 세입자가 우리 직원들의 소행으로 화재가 발생했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괜한 오해를 사고 싶지 않아서 화재진압을 할 때 조차 현장근처에 가지 않았다”고 방화설을 일축했다.


“철거업체 뒤 대형시공사가 더 무서워”

아현3구역은 이달 안으로 철거를 마무리 짓고 내달 착공에 들어간다는 계획이다. 현재 이곳에는 한씨의 가족 외에 한 집 건너에 살고 있는 또 다른 가구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이들에게 남겨진 시간은 약 열흘 안팎이지만 주거이전비 1천여만원으로 이사할 곳을 찾기란 어렵다. 철거가 시작된 이후로도 이들이 철거더미 사이에서 살고 있는 이유다.

한씨는 “집에 불이 난 뒤로도 이곳(화재가 났던 집)말고는 갈 곳이 없어 화재로 그을린 천장과 벽을 비닐로 가리고 살고 있다”며 “또 무슨 일이 벌어질까 두려워 잠자는 시간도 줄이고 최대한 깨어 있으려고 노력한다. 무섭긴 하지만 우리 가족은 더 이상 물러날 곳도 없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16일 저녁, 기자가 찾아간 한씨의 집은 화재가 발생한 지 보름여가 지났지만 반지하 열평 남짓한 공간은 온통 탄 냄새로 가득했다. 차가운 날씨도 날씨지만 집이 철거지역 내에 자리 잡고 있는 탓에 환기는 꿈도 꾸지 못한다.

집안의 절반은 노란색 비닐봉투와 테이프로 덮여져 있었는데 한씨는 화재로 그을린 벽과 천장 등을 가리기 위해 붙였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그나마도 날씨 탓에 테이프 사이로 습기가 차 온전하게 붙어 있지 못했다. 맺혔던 물이 테이프 사이를 뚫고 방바닥으로 뚝뚝 떨어졌다.

한씨는 “좋은 일 많이 하는 대기업들이 우리가 재개발 조합하고 얘기가 잘 돼서 아이들하고 들어갈 집이 생긴 후까지 기다려주면 얼마나 좋겠냐”라며 “그런데 대기업들은 온정의 손길을 베푸는 곳에만 베푸는지 동정심조차 기대하기 어렵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어 “우리 집에 불을 지른 철거업체 뒤에 그런 큰 기업들이 버티고 있다고 생각하니 없는 사람 입장에서 더욱 서럽기만 하다”고 덧붙였다.


삼성-대우 “방화배후설 경찰조사서 밝혀질 것”

이와 관련 아현3구역 공동시공사인 대우건설 한 관계자는 “화재가 발생한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며 “하청업체에서 방화를 저지른 사실이 있다면 경찰조사에서 밝혀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대우건설이 동네 구멍가게 수준의 기업도 아닌데 회사 이미지에 먹칠하는 일들을 벌이겠느냐”며 배후설을 일축했다.

삼성물산 관계자 역시 “방화사건은 우리와 무관한 일”이라며 “경찰조사가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하청업체가 방화를 저질러 철거민들을 거리로 내몰고 있다’는 추측은 억지성이 있다”고 말했다.

한편 지난 1월 용산 철거민 참사가 발생한 것을 계기로 당시 ‘겨울철 강제 철거’에 대한 비판여론이 터져 나왔다. 이와 관련 서울시와 인권위는 각각 지난해 11월과 지난 3월 겨울철 철거를 금지하는 내용의 ‘세입자 종합보호대책’과 ‘철거5대원칙’을 제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를 어겨도 처벌조항이 없다는 점에서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류세나 기자] cream53@dailysun.co.kr

류세나 기자 cream53@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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