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욱 농심회장 퇴진내막
손욱 농심회장 퇴진내막
  • 류세나 기자
  • 입력 2009-11-24 10:51
  • 승인 2009.11.24 10:51
  • 호수 813
  • 21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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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춘호 회장과 불화설…결제라인 배제설” 진실은 뭘까
손욱 농심 회장(좌) 신춘호 농심그룹 회장

삼성맨 출신으로 농심을 이끌어 오던 손욱 농심회장이 취임 1년8개월여 만에 사퇴의사를 표명해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 18일 농심은 손 회장이 지난달 중순 신춘호 그룹 회장에게 직접 사의를 표했다고 공식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업계 일각에서는 기업 내부에서의 사퇴 압력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손 회장이 경영활동을 펼친 짧은 기간 동안 농심에 많은 일들이 발생했던 것이 그 원인. 새우깡에 ‘쥐머리’가 들어간 사건이 있었는가하면, 촛불집회 당시 조선일보에 광고를 게재해 소비자 불매운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이외에도 제조과정에서의 이물질 혼입 의혹이 수차례 불거진 바 있다. 때문에 이러한 일련의 사건사고의 책임을 물어 사퇴압력이 있었을 것이라고 추정되고 있다. 그러나 업계 일각에서는 이보다 더 결정적인 사안이 사퇴의 주된 원인이 됐을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지난달부터 손 회장이 결제라인에서 배제되면서 자연스럽게 2진으로 후퇴, 스스로 용퇴를 결정내릴 수 있게 했다는 것. 세인들의 추측들이 난무한 가운데 손 회장의 사퇴 배경의 진실이 무엇인지 알아본다.

손욱 농심 회장이 올 연말을 끝으로 회장직에서 물러난다.

18일 농심관계자는 “지난 10월 중순, 손 회장이 신 회장에게 직접 사의를 표명했다”며 “신 회장이 사퇴를 만류했지만 손 회장이 평소 컨설팅 사업 등 꿈꿔왔던 일을 하고 싶다며 완곡히 고사해 결국 이를 받아들이게 됐다”고 밝혔다.

평소 외부 강연을 비롯한 대외 활동에 적극적이었던 손 회장은 사의 표명 후 외부 활동만 전념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대외적으로는 손 회장이 사내 혁신 작업을 마무리 한 후 후학양성을 위해 사퇴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회사 안팎에서는 저조한 경영 실적 때문에 압박을 받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기대 못 미친 성적표 남기고 쓸쓸히 퇴장

손 회장과 농심의 인연은 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삼성전관(현 삼성SDI) 사장 출신으로 국내 기술 혁신을 견인해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던 손 회장이 2006년 농심 고문으로 영입되면서 처음 인연을 맺게 된 것.

당시 농심은 40년 넘게 지속해오던 과거의 시스템에서 탈피,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한 변화와 혁신에 의지에 불타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삼성출신 ‘혁신맨’으로 통하던 손 회장의 등장은 가뭄의 단비와도 같았다. 이후 신 회장은 그룹 경영에 대해 손 회장(당시 고문)에게 다각도로 자문을 구했고, 손 회장의 경영리더십은 기업을 혁신시키는데 견인차 역할을 해왔다. 이 같은 까닭에 신 회장이 고문직을 맡고 있던 손 회장에게 회사 경영을 맡기로 결정, 지난해 3월 회장직에 취임하게 된 것. 하지만 손 회장이 경영을 맡고 난 뒤 농심은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했다.

경영실적이 오르긴 했지만, 이는 손 회장의 리더십 덕분이 아니라 외부적인 요인 때문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라면의 경우 불황기에 특수를 누리는 측면이 있는데다 최근 원재료 가격 하락으로 인해 반사이익이 발생했다는 것.

또 손 회장은 취임 직후 이른바 ‘새우깡 이물질 파동’을 견디며 나름 회사 내 개혁을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저조한 경영 실적을 메우기에는 다소 부족했던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무엇보다 신 회장은 대내활동에 주력하는데 반해, 손 회장은 외부활동이 활발한 편이었다. 이처럼 확연히 다른 경영 스타일도 사퇴를 앞당겼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신춘호 회장과 손욱 회장은 경영 스타일에서 차이를 갖고 있어 종종 이로 인한 마찰을 빚어왔다. 신 회장이 외부활동이 거의 없는 은둔형 스타일인 반면 손 회장은 외부활동이 활발한 편”이라며 “신 회장은 대외활동이 빈번한 손 회장에게 몇 차례 불편한 심기를 표출하기도 했다. 농심개혁과 성장에 기대를 걸고 있었는데 대외활동에만 주력하며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한 것을 못마땅해 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차이점은 삼성과 농심의 기업문화가 다르다는 데서 비롯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삼성은 대외활동을 지원한 반면, 농심은 대외활동보다 내실을 다지는 문화를 갖고 있다. 이런 문화적 차이가 결국 손 회장의 사퇴를 이끌어냈다는 것.


삼성맨서 농심맨 변신 힘들어

손 회장의 농심맨 변신은 어려운 과정을 거쳤다.

손 회장은 취임한지 두 달 만에 농심의 대표적 스낵인 새우깡에서 쥐머리가 발견돼 호된 신고식을 치렀다. 또 같은 해 여름, 미국산 쇠고기 수입문제로 촉발됐던 촛불집회 당시 조선일보에 광고를 게재하면서 네티즌들의 불매운동까지 겪었다. 당시 농심의 판매실적은 그야말로 저점을 찍었다. 지난 9월에는 식품의약품안전청이 발표한 ‘소비자 이물신고 현황’에서 이물질 신고 최다 업체로 선정되는 불명예를 안기도 했다.

이처럼 기업이미지를 실추시키는 사건이 연이으면서 손 회장에게 큰 기대를 걸었던 신 회장의 실망이 컸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손 회장의 농심혁신은 이런저런 사건들로 묻혔다. 도요타와 노키아처럼, 그리고 삼성처럼 변화와 혁신을 통해 세계적인 식품회사로 키우고자 혁신을 꿈꿨다. 하지만 기업이미지를 실추시키는 사건들로 물거품이 됐다.

업계 일각에서 손 회장 퇴임에 대해 또 다른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손 회장이 사퇴를 결정전부터 결제라인에서 배제됐다는 것. 이 때문에 자진사퇴가 아닌 사퇴압박이 있지 않았나하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이와 관련 농심관계자는 “항간에 떠도는 소문들은 그저 소문일 뿐”이라며 “결재라인에서 빠졌다는 이야기는 사실이 아니다. 연말까지는 회장의 권한을 계속 행사할 것”이라고 더 이상의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이 관계자는 또 “신춘호 그룹회장과의 불화설도 그렇다”며 “그룹을 이끌어나가는데 있어 경영스타일이 모두 똑같을 수는 없지 않겠는가. 불화로 인한 사퇴는 절대 아니다. 손 회장 개인적인 활동을 위해 경영을 그만둔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농심은 손 회장의 후임 전문경영인을 물색 중에 있다. 내년 초에 있을 이사회에서 새 경영진을 선임한다는 계획이다.

[류세나 기자] cream53@dailysun.co.kr

류세나 기자 skycros@da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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