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인명사전 침묵하는 이유 있다

민족문제연구소 편찬위원회는 지난 8일 ‘친일인명사전’발간 대회를 개최했다. 편찬위원회가 출범해 본격적으로 편찬사업에 착수한지 8년만 이다. 배포는 12월로 알려진다. 그런데 사회적으로 작은 이슈가 되고 있는 '친일인명사전'이 유독 재계에서는 조용하다. 침묵에 가깝다는 평이 나돌 정도다. 해당기업의 관계자들도 “창업주의 이야기다보니…”라며 뒷말을 흐리기 일쑤다. 이는 아무리 오너의 선조라 하더라도 친일 관련 논란에 휘말리면 친일기업으로 불리는 것이 우리 정서상 좋지 못하고, 기업 태생에 대한 정통성 논쟁이 부각되면 일부 이미지 타격도 우려되기 때문. 〈일요서울〉은 친일인명사전에 나온 일부 기업 창업주의 친일행적에 대해 알아본다.
대한민국에서 반일감정은 팽배하다. 한일 경기가 열리는 스포츠 경기를 보면 더욱 민감한 반응들을 쉽게 접할 수 있다.
모 기업의 경우 창업주가 일본인이라고 알려지면서, 기업에 대한 불신이 정통성 논란으로 번진 일화는 호사가들 사이에서 유명세를 탔을 정도다. 그 파급효과 또한 대단했고, 여전히 그 기업에 대한 불신은 남아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이는 우리나라 정서상 정통성을 중시하고, 기업 재건의 노력을 다한다고 해도 근본을 찾는 풍토 때문이다.
일부 창업주 친일행각 알려져
최근 발간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에는 재계 인물이 적지 않게 등장한다. 하지만 이에 대한 보도는 이어지지 않는다. 그동안 기업 정통성을 위해 창업주 및 오너의 가족을 ‘근대화 경영인’이라고 칭하던 것과는 사뭇 다른 행보다.
해당기업들은 그동안 애국 기업으로 유명했던 기업들로 알려지면서 그 파장 또한 대단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 대표적인 기업이 삼양사 이다.
삼양사의 창업주인 故 김연수 씨는 1922년 형인 김성수가 운영하던 경성직뉴 주식회사 전무이사로 실업계로 첫발을 들였다. 1922년부터 1934년까지 경성방직 주식회사 이사로 회사를 실질적으로 경영하다가 1935년 사장에 취임했다.
1924년 집안 소유의 여러 농장을 관리하기위해 삼수사(삼양사의 전신)를 설립했다. 1934년 삼양양사를 합자회사로 변경하여 사장에 취임하며, 재계의 기틀을 마련한 인물이다.
그러나 일본에 유학 중이던 1920년 7월 재일 조선인 유학생들로 조직된 학우회의 순회강연에 참여하면서 친일행적을 시작했다.
조선총독부에서 간척사업을 권유받고 전라북도 함평군 손불면 일대와 고창군 심원명, 해리면 일대에서 간척사업을 진행해 손불 농장과 해리 농장을 설립했다.
일제의 만주침략과 만주국 수립으로 시장이 확대되면서 만주로 수출이 급증하자 1934년 9월 경성방직 만주 펑톈 출장소를 설치했다.
1936년 10월에는 조선총독부 조선산업경제조사회 위원에 위촉됐다.
이 조사회의 목적은 조선의 산업경제정책을 기존의 식량공급에서 일본에 필요한 지하자원과 동력, 노동력을 공급하는 공업지대로 제한하는 것이었다.
또한 1936년부터 1942년까지 군수용 석유의 안정적 확보를 위해 일본 거대 자본들이 중심이 되어 설립한 조선석유주식회사 이사로 활동했다.
1937년 6월 조선실업구락부 감사, 8월 경기도 산업조사회 위원을 지냈다. 같은 해 7월 경성부에 국방헌금 1만5000원, 황군위문금 5000원을 헌납했다.
이로 인해 1939년 4월 조선총독부 조선중앙임금위원회 위원에 위촉됐다. 1939년 6월 에는 경주주재 만주국 명예총영사로 임명되기도 했다.
이후에도 그의 친일 행적은 끊임없다. 1939년 10월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 사업자금으로 3만원 헌납해 1940년 9월 일본정부가 주는 감수포장 수여했다.
1939년 12월에는 조선총독부 시정 25주년 기념박물관 건설비로 1만원 기부해 1942년 3월 감수포장을 수여했고, 1941년 5월 조선총독의 자문기구인 중추원의 칙임관 대우 참의에 임명, 한 차례 연임하면서 해방때까지 매년 1800~2400원의 수당을 받았다.
1941년 10월 ‘황국신민으로서 황도정신을 선양하는 사상의 통일, 전시체제에서 국민생황의 쇄신, 국방사상의 보급’ 등을 강령으로 내건 조선임전보국단이 결정되자 상무이사로 활동했다. 일본의 대동아공영권 결성에 협력하기 위해 조직된 조선동아구락부의 참여로 활동하면서 매일신보사가 전선의 일본군들에게 히노라무(일장기) 부채를 보내는 운동을 벌이자 부채 2000개를 기부하기도 했다.
#친일인명사전 발간, 다수 국민 ‘긍정적’ 평가
여론조사, 잘한 일 59% > 잘못한 일 32%
친일인사들의 행적을 정리한 친일인명사전 발간에 대해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다수 국민은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2일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위클리오피니언 53호를 통해 발표한 친일인명사전에 대한 일반 국민의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나간 역사를 바로잡아 교훈을 얻기 위한 것으로 잘한 일이다’는 의견이 58.6%로 ‘역사를 무리하게 들춰내 갈등을 야기하는 것으로 잘못한 일이다’라는 의견 31.8%보다 더 우세했다. ‘잘 모르겠다’는 응답은 9.6%.
‘잘한 일’이라는 평가는 충청과 호남지역, 20~30대의 젊은 층에서 높았다. 반면 ‘잘못한 일’이라는 평가는 인천·경기와 대구경북 지역, 50세 이상의 고연령층에서 상대적으로 높았다.
또 민주당과 민주노동당 지지층에서 ‘잘한 일’이라는 평가가 월등히 높았으나, 한나라당과 친박연대 지지층에서는 양쪽 평가가 팽팽했다.
[이범희 기자] skycros@dailysun.co.kr
이범희 기자 skycros@da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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